"김대중 모르는 20대 스태프들이 작업하며 눈물"
[이선필, 이정민 기자]
▲ '길위에 김대중' 명필름 이은 대표-시네마 6411 최낙용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을 제작한 명필름 이은 대표와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피규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이정민 |
정치인 김대중 하면 떠오르는 건 분명 투사 이미지다. 전도유망했던 사업가는 정치에 뜻을 품은 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세 번의 대선 낙선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거리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그는 1997년 최초의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낸 대통령이자,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대한민국 정치사의 거인이다.
2024년 1월 6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제작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은 정치에 뜻을 품게 되는 청년 김대중, 그리고 수많은 역경을 겪으며 이뤄낸 그의 내적 성장에 집중한다. <노회찬 6411> 등을 연출한 민환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노무현입니다>, <노회찬6411>을 제작한 최낙용 대표와 <파업전야>부터 <건축학개론>, 최근 <싱글 인 서울> 등 숱한 대중영화를 선보여 온 명필름이 협업했다.
16일 오후 서울 서교동 인근에서 명필름 이은 대표와 시네마6411 최낙용 대표를 만났다.
"삶 자체가 한국 정치사이자 현대사"
<노회찬 6411>을 제작하며 이미 관계를 이어온 명필름 이은 대표와 최낙용 대표는 2018년 무렵 남북관계 호전을 계기로 남북 탁구 단일팀을 소재로 한 작품을 준비 중이었다. 이와 별개로 지난 2013년부터 김대중 대통령 다큐를 준비 중이던 김대중추모사업회가 탄생 100주년 개봉을 목표로 명필름에 다큐 제작을 제안했고, 자연스럽게 당시 제작진들이 의기투합하게 됐다.
영화는 김대중이란 자연인과 더불어 미국 망명 이후 1987년 6·29선언으로 자유를 얻은 뒤 광주로 향하는 그와 본격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든 이후로 나뉜 두 편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을 제작한 명필름 이은 대표와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 |
ⓒ 이정민 |
"김대중은 정치인으로서 상당한 의회주의자다. 사람들은 거리의 투사로 알고 있지만, 독재 정권의 감시와 압력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신 거다. 특히 인간적으로 보면 영성과 종교성이 깊은 분이었더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거의 종교인 수준이 되신 거지. 좋은 정치가이면서도 깊은 사람이었다." (최낙용 대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지라는 말씀을 하셨고, 민중보다 반걸음만 앞서 가야한다는 말씀도 하셨잖나. 진보적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고, 딱 진보성을 지키면서 민중들과 함께 가려는 모습들이 굉장히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자세로 평생 전력을 다해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에 헌신하셨다. 그리고 정말 세상이 바뀌었다. 그분 표현대로면 반걸음 정도 현실을 변화시키면서 진정한 가치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다. 미국 망명 시절에도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해서 설득했다. 우리도 당신들이 만든 민주주의를 스스로 만들어낼테니까, 독재자를 지지하지만 말아달라고.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싫은 소리를 전혀 안 하면서도 미국 보수주의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다니셨다." (이은 대표)
그간 방송이나 해외 영화인을 통해 조명된 김대중과 달리 <길위에 김대중>은 본인이 직접 채록한 기록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상과 육성 자료 상당 부분이 반영됐다. 이은 대표는 "그분의 1924년부터 1987년까지 전반기 삶을 다루다 보니 전두환-박정희-노태우 등을 쭉 훑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더 분명하게 그분의 정체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 |
ⓒ 이정민 |
그렇게 그분은 끊임없이 '온고지신'하셨던 거다. 과거 문물로 현재를 이해하고, 깨부수는 식이었던 것 같다. 요즘 청년층에게도 충분히 다가갈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아마 그 시대에 가장 젊게 살았던 분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최낙용 대표)
최 대표는 이번 제작 과정에 참여한 스태프들 중 20대 비중이 높다는 사실을 전하며 "김대중이란 존재를 잘 몰랐던 스태프도 있었는데 작업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청년의 감각이 분명하게 전달된 게 증명된 셈이다.
영화는 물론 김대중이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하지만, 그를 지지하고 키워낸 이름 없는 조력자들의 존재도 언급된다. 외교부 공무원 출신의 미국 사업가 이근팔씨는 아무 조건과 대가 없이 김대중 대통령을 도왔다.
▲ 명필름 이은 대표. |
ⓒ 이정민 |
"훌륭한 상인이 현실을 본 거지. 많은 사람이 행복하려면 정치가 답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정치인 중 이런 동기를 가진 분이 거의 없다. 청년 입장에서 이 사회가 나아지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한 거잖나. 참여의식에다가 자기 삶의 변화를 위해 양심을 잃지 않고 실천하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말씀하셨지 않나. 포기하지 말고 현실 정치에 참여하라는 뜻이다. 요즘 시대가 (사람들이) 많이 좌절하고 각자도생 분위기인데, 이 영화로 각성하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은 대표)
"정치를 외면하고 냉소하는 게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됐다. 근데 단 하나의 법안만 만들어져도 내일의 내 삶이 달라지는데, 그게 아무것도 아닌 양 취급하는 건 올바른 태도는 아니지 않나. 평생 자기 에너지를 그 영역에 바친 분을 보면서 정치의 효능감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최낙용 대표)
▲ '길위에 김대중' 명필름 이은 대표-시네마 6411 최낙용 대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을 제작한 명필름 이은 대표와 최낙용 시네마 6411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피규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이정민 |
이를 위해 전국 광역시 및 군소 자치 단위 기준 13개 지역에 상영위원회를 구성했고, 미국·일본·독일 및 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 등 21개국 주요 도시 교민 사회와도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김대중 대통령 탄생 백주년 기념영화 상영위원회'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오는 30일까지 텀블벅 펀딩(tumblbug.com/dj_road)도 진행 중이다.
"이게 <파업전야>(1990) 때 제가 전국을 돌며 했던 방식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탄생한 온라인 미팅 등 모든 방법이 망라된 전략이다. 엄청난 부담을 안고 지난 여름부터 이곳저곳 다니며 사람들을 만났다. 독립예술영화는 주로 텀블벅 후원을 기반으로 한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 하면 영화가 그 이상의 성과는 내지 못할 것 같아서 두 번에 걸쳐 상영관을 잡고, 개봉관을 확대하기로 했다. <수라>라는 작품이 그렇게 했더라. 차이가 있다면 <수라>는 서울이 중심이었고, 우리 영화는 전국이 무대라는 점이다." (이은 대표)
"얼마 전 해외 교민분들과 소통했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세아니아, 미국 등 시차가 제각각이잖나. 어디는 새벽 2시, 어디는 아침 7시, 우린 밤 10시였다. 근데 그 시간에 다 접속해서 말씀을 나누는데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브라질의 경우는 이미 교민 신문에 기사가 나갔더라. 사실 교민 사회가 보수적인 면이 강한데, 이렇게 의지를 가진 분들 덕에 큰 감동을 받고 있다. 일단 연말까지 시사회로 10만 명 정도가 본다면, 개봉 때 100만 명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30년 뒤, 아니 100년 뒤에 봐도 부끄럽지 않을 영화를 준비 중이다." (최낙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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