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앵무새 키우기

2023. 11. 1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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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참 좋아했다.

처음 키운 동물은 초등학교 때 사 온 100원짜리 병아리였는데 3일 만에 쥐에 물려 죽었다.

야외에 나가서 창공을 마음껏 날게 하고 내가 휘파람을 불면 다시 휘리릭 날아와서 내 어깨에 착 앉는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우리 집 앵무새가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창 자라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관계가 맺어지는 시기에 앵무새에 대한 설렘이 오래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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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남(서울아산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


나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참 좋아했다. 처음 키운 동물은 초등학교 때 사 온 100원짜리 병아리였는데 3일 만에 쥐에 물려 죽었다. 동네 곳곳에 ‘쥐를 잡자’ 포스터가 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이후 어머니가 귀여운 강아지를 분양받아 오셨는데 며칠 아프더니 1주일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우울해하는 아들을 위해 이번에는 사랑스러운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오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변을 못 가리는 고양이를 감당하지 못하시고 ‘개엄마’에게 줘 버렸다. ‘개엄마’는 개를 열 마리쯤 키우시던 이웃 아줌마 별명이었다. 그 많은 강아지 사이에서 아기 고양이는 행복하게 살아남았을까?

강아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와이프에게 슬쩍 얘기를 꺼내 봤지만 와이프는 새 가족이 생기는 게 영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아내가 얘기한다. “친구가 강아지를 입양했는데 걔가 무슨 백혈병이라네. 맨날 그 강아지 껴안고 울고 있어.” “다른 친구 강아지는 심장병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백 드나 봐.” 세상에 아픈 강아지가 참 많구나.

지원군이 생겼다. 중학생 첫째 아들이 강아지 얘기를 꺼낸다. 내 말에는 전혀 흔들리지 않던 아내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강아지는 안 된다는 엄마의 말에 순둥이 첫째가 쉽게 포기하고 ‘그럼, 앵무새 키우면 안 돼?’라고 타협을 한다. 아, 조금만 더 졸랐으면 되는데. 그렇게 우리 집에 앵무새가 왔다. 우리 집 앵무새의 이름은 ‘초록’이다. 아름다운 오렌지색과 초록색 깃털, 맑은 눈, 한 손에 잡히는 아담한 몸매가 사랑스러운 아이다. 품종은 모란앵무, 영어로는 ‘러브버드’라고 한다. 암수의 사이가 좋아서 붙은 이름이다. ‘앵아지’ ‘앵냥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람을 좋아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강아지만큼 충성도가 높지는 않다. 새장에서 풀어주면 항상 나에게 날아오길래 매일 밥 주고 물 갈아주는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웬걸, 며칠 여행 가느라 새를 맡기러 앵무새 카페에 갔더니 손님들에게 훌쩍 날아가 버린다. 배신자. 개들은 주인을 찾아 몇백 킬로를 달려가고 쓰러진 주인 옆에서 구조를 요청하기도 한다는데, 이 녀석은 같이 외출했다가 내가 쓰러지면 암컷을 찾아 날아가 버릴 것이다. 야외에 나가서 창공을 마음껏 날게 하고 내가 휘파람을 불면 다시 휘리릭 날아와서 내 어깨에 착 앉는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우리 집 앵무새가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혼자 어디론가 날아가서 잘 살면 좋겠지만 집에서 키우던 앵무새는 야생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숙명처럼 이 새는 나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아갈 것이다.

첫째 아들은 이전만큼 앵무새에 흥미가 없다. 한창 자라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관계가 맺어지는 시기에 앵무새에 대한 설렘이 오래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나는 매일 병원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친밀하고 사적인 인간관계가 더 넓어지지는 않는다. 이제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점점 덜 만나게 될 것이고 곁에 있는 사람과 새가 인생에서 더욱 소중해지리라는 것을 안다.

물론 앵무새와 사람의 관계는 개와 사람의 관계처럼 대칭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도 내가 준 만큼 돌아오지 않는 관계가 많다.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상대방에게 뭔가를 줄 때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때로는 비대칭적인 관계가 더욱 소중하다. 내가 새에게 준 음식과 물과 애정을 새가 기억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앵무새가 나와 함께 있어 준 시간, 내 어깨에 내려앉아서 목덜미에 깃털을 부비부비하던 기억들, 내 귓불을 앙증맞게 깨물며 간지럽히던 순간들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다. 사랑해, 초록아.

고경남(서울아산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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