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속 기암절벽 위 하늘에 등불 밝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들어 알만한 천등산은 4개 정도다. 충북 제천의 천등산(807m)이 가장 높고, 전남 고흥 천등산(550m)이 가장 낮다. 경북 안동 천등산(574m)은 국보 15호 봉정사 극락전에 힘입어 이름을 알렸다.
전북 완주에도 있다. 높이 707m로 운주면 산북리와 장선리에 걸쳐 큰 덩치의 골산(骨山)으로 이뤄져 있다. 인근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대둔산의 명성에 가려 덜 알려져 있지만, 계곡과 계곡 사이 절벽과 그 바위 사이를 수놓은 단풍이 아름다워 최근 등산객들에게 가을철 산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괴목동천(옥계천)과 나란히 운주면에서 산북리와 배티재를 넘어 금산으로 빠지는 17번 국도를 가운데 두고 북쪽이 대둔산, 남쪽이 천등산(天燈山)이다.
견훤(867~936)이 후백제를 세우려고 천등산 기슭에 산성을 쌓고 적군과 대치 중 한밤중 기습을 받았는데, 대둔산 용굴의 용이 닭 우는 소리를 내고 천등산 신이 환한 빛을 내비쳐서 승리한 뒤부터 하늘 천(天), 등불 등(燈)을 썼다는 전설이 있다. 산성은 ‘용(龍)이 흉내 낸 닭(鷄)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해 용계산성(龍鷄山城)으로 불린다. 천등산 주변에는 용계산성뿐 아니라 신복산성과 700고지 등 3개 산성이 있다.
천등산은 대둔산의 ‘작은집’ 정도로 여겨지지만 지질학적으로 보면 천등산이 대둔산의 까마득한 조상이다. 화강암이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화산(火山)이다. 천등산 아래 충남 금산군 진산면이 고향인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호가 화산이다.
대둔산 못지않은 기암절벽을 자랑하는 천등산은 짙은 숲이 어우러진 돔형의 암릉으로 이뤄져 천연의 요새를 연상시킨다. 암벽에는 노송들이 수석의 분재처럼 뿌리를 박고 있어 산수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가을철 단풍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천등산 북쪽 면에 ‘어느 등반가의 꿈’이라는 암벽 루트가 있다. 1998년 인도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 중 숨진 대전 출신 클라이머 고(故) 신상만 씨를 기리기 위해 대전클라이밍동호회가 2002년 개척한 루트다. 총 6피치의 루트는 상급자 코스다. 바로 우측은 ‘채송화 향기’다. 예쁜 이름과 달리 ‘악’ 소리가 나는 루트다.
동상면 대아저수지와 동상저수지는 단풍이 물들 무렵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다. 고산면 소재지에서 동상면까지 이어지는 732번 지방도는 대아호와 동상호를 바짝 끼고 돌며 가을의 정취를 풀어놓는다.
대아저수지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운암산(雲岩山)에 올라보자. 해발 605m 정도로 비교적 낮지만 ‘구름 위에 솟은 바위산’으로 인정받는다. 구름도 단풍도 아름답지만 거친 바위에 뿌리내리고 비바람을 견뎌내며 자라는 생명력 넘치는 ‘명품 소나무’가 안겨주는 풍경은 어느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절경이다. 백척간두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모습이지만 키를 키우는 대신 아래부터 가지를 뻗고 중심을 잡아 안정감이 있다. 자태가 고결하고 기품이 있다.
산 정상에는 가로 세로 10여m에 높이 4m가량 되는 봉화대가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오는 다급한 상황을 한양에 알렸으나 지금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허물어져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풍광은 구이면 경각산에서도 볼 수 있다. 한자로 고래 경(鯨), 뿔각(角)을 쓴다. 산 아래 광곡마을에서 바라보면 모악산 방향으로 머리를 향한 고래의 모습이다. 정상에 있는 두 개의 바위가 고래의 등에 솟아난 뿔처럼 보인다.
경각산 패러글라이딩 이륙장까지 차로 쉽게 올라갈 수 있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주말이면 창공으로 활공하는 패러글라이더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도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탔다. 바로 아래 드넓은 구이저수지가 펼쳐져 있다.
저수지 건너편 우뚝한 산은 모악산(母岳山)이다.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이름을 얻었다. 해발고도 793m로, 전북 완주·전주·김제에 걸쳐 있다. 완주 쪽 모악산은 입구부터 넘실대는 빨간 단풍으로 레드카펫을 깔았다. 대원사 주변 단풍나무는 빛깔이 곱기로 이름나 있다.
평촌·고산 출발 천등산 산행 인기
대아저수지 주변 민물 요리 맛집
완주 천등산 암벽 루트는 운주면 소재지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대둔산 방향으로 가다 대둔산터널을 빠져나간 지점에서 800m쯤 가면 만난다. 오른쪽에 옛길 합류점이 있다. 이곳에서 보이는 거대한 암벽에 있다.
천등산 산행은 3~4개 코스로 분류된다. 7~10㎞짜리 코스로 3시간~4시간 30분 소요된다. 평촌·고산촌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인기다. 옥계천 주변에 펜션과 민박, 음식점 등이 즐비하다.
운암산은 대아정에서 출발해 명품 소나무를 지나 정상에 이른 뒤 되돌아와 운암상회로 내려서거나 그 역방향으로 산행하는 코스가 인기다. 저수지 주변에 송어와 메기, 쏘가리를 주재료로 민물매운탕과 찜 요리를 파는 식당이 몇몇 있다.
모악산 입구에 완주군이 조성한 대규모 주차장과 공원, 상가 등 편익시설이 풍부하다.
완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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