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 쌓인 국제행사... 청와대 수석이 "기도하겠다"고 한 이유 [문재인의 말과 글]

최우규 2023. 11. 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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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말과 글] 리더십의 중요성 일깨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최우규 기자]

 2017년 6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북 무주군 태권도원 T1경기장에서 열린 '2017 무주 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축사하는 동안 장웅 북한 IOC위원 등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10년간 싸운 이웃이 있다. 줄리엣양의 집안 캐풀렛, 로미오군의 몬터규 가문처럼 사이가 나쁘다. 오랜만에 잔치를 연다. 상대를 꼭 초대해야 한다. 계속 초청했지만, 콧방귀도 안 뀐다. 어떻게 해야 하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야기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국제 경기는 국민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국정 농단으로 입은 국민 상처에 몰약(沒藥)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을 국제사회로 불러내는 계기로 쓸 수 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남북 대화와 동아시아 평화 체제 구축의 지렛대가 될 것이다. 스포츠 행사여서 당사자나 주변국에도 부담이 덜했다. 성사된다면 남한 분위기 쇄신을 훌쩍 뛰어넘는 가치가 있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측에 올림픽 참가를 요청했다. 말할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호소했다.

2017년 6월 24일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 때다. 북한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리용선 국제 태권도 연맹 총재도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한다면 인류 화합과 세계 평화 증진이라는 올림픽 가치를 실현하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고 생각한다"라며 "함께하고 계신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장웅 위원님의 많은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2017년 7월 6일 문 대통령은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 응했다. 이렇게 호소했다.

"스포츠에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힘이 있습니다. 남과 북, 그리고 세계 선수들이 땀 흘리며 경쟁하고 쓰러진 선수를 일으켜 부둥켜안을 때 세계는 올림픽을 통해 평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세계 정상들이 함께 박수를 보내면서,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두 달 뒤 9월 21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했다. 각국 정상을 향한 하소연은 이랬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고작 100㎞를 달리면 한반도 분단과 대결의 상징인 휴전선과 만나는 도시 평창에 평화와 스포츠를 사랑하는 세계인이 모입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우의와 화합의 인사를 나눌 것입니다. 그 속에서 개회식장에 입장하는 북한 선수단, 뜨겁게 환영하는 남북 공동 응원단, 세계인의 환한 얼굴을 상상하면 나는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결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닙니다."

북측은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북한 장웅 IOC 위원은 오히려 한 인터뷰에서 "정치를 체육으로써 푼다는 건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다"라고까지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반년 넘게 부단히 초대 편지를 보냈다. 연말이 됐다. 북측이 반응할 것 같다는 관측이 나왔다. 2018년 1월 1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 신년사를 주목했다. 모두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조선중앙TV로 김정은 위원장 육성 연설이 나왔다. 미국을 맹비난하는 대목은 여전했다. 연설 막바지에 이르렀다.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 대회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입니다."

악재가 쌓여 있던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
 
 2018년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 '나라답게 정의롭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 시각을 기해 모두 바빠졌다. 문 대통령은 1월 2일 신년사에서 "정부는 북한 참가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 남북 평화 구축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로 연결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협력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누구의 일도 아니다(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 서로 떠넘기다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속담이다. 학창 시절 조별 과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사람이 못돼서가 아니라 그저 본성이 아닐까.

국제행사, 협력 과제가 그렇다. 여러 부처와 조직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권한과 책임을 되는대로 나눠주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많은 경우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다. 아니면 아무도 떠맡지 않아 폐선되거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정부가 바뀐 지 9개월 만에 치르는 행사다. 국정 정상화의 상징 같은 이벤트다. 단, 잘 치러야 한다. 이게 관건이다. 절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올림픽 준비 태세를 꼼꼼하게 챙겼다.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실이 점검했다. 좋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나빴다. 아주.

악재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국정 농단 사태 직격탄이 덮쳤다. 올림픽 주무 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다. 폭풍이 지나간 바닷가 마을 같았다. 장·차관은 국정 농단 사태에 연루된 의혹을 받아 바뀌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까지 덮쳤다. 실·국장도 수사를 받고 인사가 났다. 직원들은 손을 놓고 지시만 기다렸다. 부처가 헛돌았다.

올림픽은 정부 예산과 입장권, 광고 판매 수익만으로 못 치른다. 큰 기업이 후원해야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업 후원은 2015년 초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인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대기업들은 8000억 원 이상 후원금을 내기로 했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다. 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후원한 게 문제가 됐다. 기업들은 몸을 사렸다. 후원금 집행을 미뤘다. 추가 후원도 하지 않았다.

국민 관심은 바닥을 기다시피 했다. 전임자 탓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자신의 무능을 자백하는 일에 불과했다.

2017년 늦가을 평창 동계올림픽 주 경기장을 둘러봤다. 수석과 비서관, 실무자들이 평창행 버스에 올랐다. 골조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경기장 지붕이 없었다. 강원도 한겨울 추위가 어떤지 한국 사람은 다 안다. 이유를 물었다. "예산을 아끼느라 지붕 없는 경기장으로 설계했다."

동계올림픽이니 추울 수 있다. 관중도 불만이 있겠지만, 이해한다. 그러나 개·폐막식 때 기온이 영하 20~30도로 떨어지고 칼바람이 불면? 폭설이 내린다면?

설계 변경은 불가능했다. 원래 구조에 지붕을 씌우면 무게를 버틸지 의문이었다. 허물고 다시 짓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대책이 뭐냐고 물었다. 핫팩과 장갑, 무릎담요, 모자를 나눠준단다.

시설을 돌아보고 모두 '큰일 났다'라고 입을 모았다. 비상이 걸렸다. 올림픽조직위원회, 문체부, 강원도 등 따로 도는 조직을 하나로 꿸 리더십이 필요했다. 김수현 사회수석이 문 대통령 앞으로 달려갔다. 청와대에서 담당 수석이 그다.

김 수석은 "어떻게든 사회수석실 차원에서 해보려고 했지만, 안 될 것 같다"라며 "여러 수석실에 걸친 문제가 있다. 태스크포스(TF)가 필요하다"라고 보고했다. 문 대통령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TF 구성안을 재가했다. 또 "내가 해줄 일이 있으면 뭐든 말하라"라고 했다.

국내 언론을 홀대하지 않았다

올림픽과 연관된 비서관실이 맡은 분야의 아이디어를 모두 짜냈다. 홍보에서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대통령을 동원하자. 마침 문 대통령도 "올림픽 홍보에 필요한 일은 뭐라도 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기획조정 회의를 했다. 대통령이 참석할 행사를 선정하고 아이디어를 모은다.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를 위한 대통령 참석 행사를 발제했다.

마침 수도권에서 동해안에 닿는 경강선이 개통될 예정이었다. 해외 관람객을 평창으로 실어 나를 노선이다. 이에 맞춰 대통령 전용 열차, 소위 '1호 기차'의 시민 탑승 행사가 결정됐다.

열차 내부 공개, 시민 탑승 모두 처음이었다. 시민 20명을 뽑았다. 평창 홍보사이트 '헬로우 평창'에 입장권 인증 사진을 올린 이들 중에서 추첨했다. 2017년 12월 19일 서울역에서 대통령 전용 열차를 탔다. 시민들은 문 대통령과 함께 1호 기차를 타고 강릉으로 향했다.

앞서 문 대통령이 시민과 점심을 함께 먹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메뉴는 그냥 진수성찬이 아니다. 강원도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강원도 나물밥이었다. 강원을 알릴 음식이다.
 
 2017년 12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서울-강릉간 운행될 KTX 경강선 열차 내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입장권 인증샷 등 '헬로우 평창' 이벤트 당첨자들과 오찬을 하며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 대통령 인사말이다.

"헬로우 평창 이벤트에 참가하면서 대통령과 식사에 당첨됐을 때 아마 청와대로 초청돼서 아주 근사한 식사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 같은데, 혹시 실망스럽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오히려 이 자리가 더 뜻깊은 것 같아요. 이 열차가 공식 개통되기 전에 대통령과 함께 탑승한 1호 승객, 굉장하지 않습니까? 대통령과 KTX 기차 안에서 함께 식사하는 이런 기회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전무(全無), 그전까지는 한 번도 없었을 것 같고, 앞으로도 영 없다는 법은 없겠지만 좀처럼 깨지지 않을 기록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청와대에서 아주 큰 밥상을 받는 것보다 더 귀하고 값진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를 착실히 잘하고 있고, KTX 경강선이 22일에 개통되는 등 교통 인프라도 올해 안으로 완비가 될 계획이거든요. 준비 사항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이제부터는 홍보와 붐업(boom-up)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중요한 홍보와 붐업에 동참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은 온 국민이 함께하는 축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대통령 시간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경쟁이 치열하다. 확보하면 알차게 써야 한다. 열차 안에서만 행사 세 건을 치렀다. 시민과 오찬, 언론사 스포츠 부장단 간담회, 외신 인터뷰다.

사달이 났다. 문 대통령은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 미국 NBC와 인터뷰를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미국 주관방송사다.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올림픽 기간에 합동 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미국 측에 그렇게 제안했고, 미국 측에서도 (연기를) 지금 검토하고 있다"라고 했다.

한미 연례 군사훈련 키리졸브(KR)와 독수리 훈련(FE)은 매년 3월 초부터 한 달여 실시한다. 패럴림픽(3월 9∼18일)과 겹칠 가능성이 있다. 군사훈련 연기의 여파는 한미는 물론 일본이나 중국 등 관련국을 넘어선다. 국제뉴스로서 큰 특종이다. 인터뷰 내용을 국내 언론에도 배포했다. 항의가 들어왔다. '중요한 뉴스를 외신에 먼저 주느냐'. 오전 언론사 체육 부장단 간담회에서 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행사 다음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미국 NBC와 인터뷰에서 독수리 훈련 연기 요청 이야기를 했다"라며 "국내 언론은 외신에 이를 먼저 말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평창에 갈 때 국내 언론과 인터뷰했다. 그 중요한 질문을 하면 (답변을) 피할 생각이 없었는데 (국내 언론사들은 질문을) 안 했다"라며 "NBC 기자는 초반부에 질문했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언론을 홀대하지 않았다는 해명이다. 그는 태도와 관련된 시비나 오해는 꼭 짚고 넘어갔다.

추위 속에서 터진 남북 교류 물꼬

TF가 체크하는 항목은 점점 늘어갔다. 올림픽처럼 큰 행사를 치르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행사 자체도 중요하지만, 별건도 주의해야 한다. 식중독이나 전염병은 물론 교통체증, 성희롱, 갑질 등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날씨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TF 단장인 김수현 사회수석은 가장 추운 날을 골라 3시간을 벌벌 떨었다. 그는 다음 날 아침 회의에서 "어, 생환했어" 하며 걱정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2018년 2월 3일 밤 8시 개회식 드레스 리허설이 열렸다. 개회식과 똑같은 내용, 순서로 진행했다. 청와대 TF도 참관했다. 영하 13도, 체감 온도 영하 22도. 간이 방석, 모자, 판초 우의, 핫팩을 받았다. 그래도 추웠다. 경기장 관람석 곳곳에 야외용 가스난로가 설치됐다. 난로로 가서 몸을 녹였다. 관람객들에게 보온에 유의해달라는 메시지를 수시로 보냈다.

다음날 청와대 현안 점검 회의에 보고됐다. TF 단장인 김수현 수석은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폐막식 때까지 술도 안 마시며 기도하겠다. 덜 춥도록"이라고 말했다. 농담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했다.

동장군이 그의 기도를 들었나 보다. 2월9일 개회식 당일 날씨가 풀렸다. 낮에는 0도였다. 개막식이 열릴 때 영하 5~8도였다. 맹추위까지는 아니었다. 한시름 놓았다.
 
 2018년 2월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KOREA' 피켓과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 선수들이 공동입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하나된 열정(Passion Connected)'. 대회 슬로건이다. 입장식 맨 마지막에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함께 행진했다. 남북 교류 물꼬가 추위 속에서 터지는 상징적 장면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당시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최다인 92개국 선수 2925명이 참가했다. 총 15개 종목, 102개 세부 종목에서 선수들이 겨뤘다. 이 또한 역대 최다였다입장권 판매율은 판매 목표 대비 100.9%였다. 관람객 수도 138만 7475명이었다.

준비 안 된, 무능의 상징이 될 뻔한 행사였다. 한반도 불안을 이유로 개막식 불참을 검토한 해외 정상도 있었을 정도였다. 민관이 함께 달라붙어 성공을 일궈냈다. 무엇보다 올림픽 이후 남북 관계가 급진전했다. 멈췄던 바퀴가 한번 구르면 힘을 받았다. 다음 한 바퀴, 그다음 한 바퀴는 굴리기 쉽고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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