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원불교 교도' 이유로 이재용 사건 수사심의위원 배제 사건 '각하'

최석진 2023. 11.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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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행사 주체로 볼 수 없어"
종교의 자유·평등권 침해 여부 판단 안 해

원불교 교도라는 이유로 2021년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가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과 관련해 열린 수사심의위 현안위원을 배제한 것은 기본권 침해행위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이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됐다.

헌재는 수사심의위가 대검찰청의 내부기관에 불과해 독자적인 공권력행사의 주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원불교 측은 종교적 이유로 차별 취급이 이뤄진 명백한 기본권 침해 공권력행사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원불교 교도 정모씨와 재단법인 원불교가 수사심의위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기 위해 대검찰청에 설치된 기구로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중 선정된 위원들이 수사 계속 여부, 기소 여부,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을 의결해 검찰에 권고한다.

현안위원 선정됐다 주임검사 기피 신청으로 배제돼… "이재용 가족이 원불교 지원" 이유

1981년 원불교에 입교한 정씨는 2018년 1월 임기 2년의 수사심의위 위원으로 위촉된 뒤 2020년 1월 연임돼 계속 위원직을 수행했다. 정씨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2021년 3월 26일 이 당시 부회장의 프로포폴 투약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기소의 적절성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수사심의위 현안위원으로 선정돼 수사심의위로부터 출석 요청을 받았다.

현안위원회 당일 정씨는 전북 전주에서 상경해 회의에 참석했지만, 회의 시작 직후 주임검사가 정씨에 대한 기피를 신청했다. '이 부회장의 가족이 원불교에 상당한 재정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심의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양창수 당시 수사심의위원장은 정씨에게 회의장 밖에서 대기하라고 명령한 뒤 15명의 현안위원 중 정씨를 제외한 나머지 현안위원들을 대상으로 정씨의 기피 여부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그리고 약 10분 뒤 양 위원장은 정씨에게 "주임검사의 기피신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됐으므로 현안위원회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고 구두로 통지했다. 정씨를 제외한 나머지 14명의 현안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회의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을 의결했다.

정씨는 당시 자신이 현안위원에서 기피 결정을 당한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고, 나중에 언론 보도를 통해 이 부회장의 부모가 원불교 교도이고, 삼성그룹이 원불교 재단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왔는데 자신이 원불교 교도이기 때문에 심의에서 배제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원불교 반발, '종교 차별' 논란 커져… 검찰 사과 입장 전달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당시 원불교 측은 성명을 통해 "수사심의위의 운영지침에도 어긋나고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에도 반하는 심히 부당한 조치"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원불교 측은 "기피 신청된 현안위원은 이 부회장과 친분 및 어떤 이해관계도 없다"라며 "해당 위원이 심의의 공정성을 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이냐"고 검찰에 따져 물었다. 또 "심의 대상자가 비교적 종교인구가 많은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라면 수사심의위원들은 개신교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 중에서만 선정해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다면 이번 결정은 해당 위원의 종교인 원불교에 대한 차별 행위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종교 차별 논란이 커지자 결국 검찰은 며칠 뒤 대검 소속 검사를 원불교 서울교당이 있는 서울 동작구 소태산기념관으로 보내 사과 입장을 전달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당시 검찰은 공문을 통해 원불교 측에 "특정 교단을 차별한 것이 아니지만 원불교에서 지적한 것처럼 합리적 근거 없이 처리했다고 보일 여지가 있으며 향후 이런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념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원불교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시 동작구 현충로에 건립한 소태산기념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심각한 명예훼손·종교적 차별행위" vs "내부적 조직 행위·공권력행사 주체 아냐"

검찰의 사과는 있었지만 원불교 측은 수사심의위의 당시 결정이 정씨와 원불교 재단의 종교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기본권 침해행위임을 명확하게 확인받고 유사 사태의 발생을 막기 위해 2021년 6월 헌재에 '수사심의위 기피결정이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원불교 측은 헌법소원을 청구하며 "피청구인(수사심의위)은 수사대상자의 가족이 원불교에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검사의 막연한 주장을 근거로 원불교도인 청구인이 현안 심의위원으로 공정한 심의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이를 근거로 기피결정을 내렸다"라며 "피청구인의 이러한 기피결정은 '원불교 교도들은 동일한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동일한 원불교 교도)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사적인 감정에 치우쳐 부당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심각한 사실 왜곡과 판단을 전제로 한 것으로 원불교 및 원불교 교도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과 종교적 차별 행위에 해당하고, 청구인과 청구인 재단법인 원불교는 피청구인의 위와 같은 종교적 차별행위로 인해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 종교의 지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라고 주장했다.

법리적으로는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헌법 제37조 2항의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법률의 위임도 없이 행정규칙인 '수사심의위 운영지침'을 근거로 기본권을 제한한 이번 사안은 엄격하게 합헌성을 심사해야 한다"라며 "지침이 기피 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은 '종교적인 배경'을 지침 제11조 1항 3호가 규정한 기피 사유인 '기타 심의에 참여하는 것이 부적절한 사람'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해 기피 결정을 한 것은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위임의 범위를 넘어서는 법률의 근거가 없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정씨에 대한 수사심의위의 기피결정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행사'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기본권 침해 여부에 대한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각하 결정했다.

헌재는 "운영지침은 대검 예규로서 행정규칙에 해당하고, 상위법령의 직접적 근거 또는 위임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피청구인(수사심의위)이 심의·의결한 후 심의 의견서를 작성해 심의 대상 사건의 주임검사나 검찰총장에게 송부하더라도 심의의견에 기속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피청구인은 대외적으로 구속력 있는 의사표시를 하는 독립된 행정관청이 아니라, 검찰의 수사·기소 절차에 참여하는 대검의 내부기관에 불과하고, 독자적인 공권력 행사의 주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기피결정은 피청구인의 심의·의결을 위해 그 심의 절차에 참여할 현안위원을 확정하는 내부적 조직 행위에 불과할 뿐, 대외적으로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직접적인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원불교 측 "종교를 검찰에 불리한 위원 기피 수단 삼아"… "수사심의위 설립 목적 훼손 위험"

이 같은 헌재 결정에 대해 원불교 측은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번 사건에서 원불교 측을 대리한 조성호 법무법인 강남 변호사는 "헌재는 그동안 '기본권의 침해가능성'을 기준으로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해왔다"라며 "나아가, 헌재는 국가인권위원회 등 각종 행정위원회의 결정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로 판단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수사심의위는 검찰 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대검에 설치된 위원회로서 운영지침에 따라 검찰총장이 위원과 위원장을 위촉하고, 위원회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대검 정책기획과장을 간사로 두고, 기타 담당직원을 두도록 했다"라며 "이와 같은 피청구인의 설립 목적이나 역할, 위원 및 위원장 위촉권자(검찰총장), 피청구인의 운영에 관한 대검의 지원 등에 비춰, 독립적인 공적기관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 변호사는 "이 사건 기피결정 당시 주임검사는 청구인 정씨가 이 부회장의 부모와 종교가 같으므로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나 기소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하에 기피 신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는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하고자 하는 검찰의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원을 기피함으로써 검찰의 입장에 찬성할 것이 예상되는 위원들로만 위원회를 구성하고, 의결을 받기 위함이었다. 즉, 검찰은 합리적 이유 없이 종교를, '검찰의 입장에 반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원을 기피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와 같은 기피결정의 위헌성이 헌재를 통해 해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은 다른 사건에서도 현안위원이 개인적으로 신앙하는 종교를 검찰에게 불리한 위원을 기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이를 악용할 수 있게 될 것인데, 이는 검찰의 기소권 및 수사권에 대한 견제를 통한 검찰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 도모, 국민의 신뢰 제고라는 수사심의위의 설립 목적을 훼손시킬 위험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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