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청조에 속았다는 남현희…현직검사도 깜빡 넘어간 사기 수법

2023. 11. 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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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작권자 ⓒ 2023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전청조 사건으로 본 사기 백태


사정당국에 적발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의 증거품. [연합뉴스]
파라다이스그룹 회장의 혼외자이자 성(性)전환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의 펜싱 대결. 장안의 화제로 떠오른 이른바 ‘전청조 사건’에서 사기 전과자 전청조(27)씨가 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 남현희(42)씨와 결혼하기 위해 한 것으로 알려진 거짓말이다. 전씨가 경호원을 대동하고 51조원의 통장 잔액이 찍힌 가짜 애플리케이션(앱)을 보여줬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씨는 결국 사기 등 혐의로 지난달 31일 경찰에 체포됐다. 남씨 외에도 전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대중의 시선은 엘리트 체육인 등이 어떻게 저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수 있는지에 쏠리고 있다. 51조원은 현재 코스피 시가총액 4위 종목(삼성바이오로직스)보다 많은 액수다. 상식적으로 국내 어떤 재벌도 통장에 이만한 현금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기의 세계에 ‘절대’란 없으므로 방심은 금물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전씨가 감쪽같은 가짜 앱을 쓴 것처럼 각종 기술의 발전으로 사기 수법도 진화하면서 고학력·고소득자마저 사기꾼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112 전화 걸면 보이스피싱 조직 연결

테라·루나 코인 피해자들은 권도형 대표를 경찰에 고소했다. [연합뉴스]

1일 충남경찰청에 따르면 현직 서울대 교수 A씨는 검사와 금융감독원 직원 등으로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 전화에 속아 10억원을 뜯겼다. 자신의 은행 계좌가 범죄 조직의 자금 세탁에 이용돼 공범으로 곧 구속될 것이라는 말에 A씨는 처음엔 신빙성을 의심, 112에 신고했다. 그런데 112를 통해 연결된 서울중앙지검에선 해당 내용이 사실이라며 A씨를 현혹시켰다.

알고 보니 A씨 휴대전화에 이미 악성 앱이 깔려서 A씨의 112 전화가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연결되는 구조였던 것이다. 검거된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런 수법 등으로 5년간 1891명을 상대로 총 1500억원가량을 뜯어냈고, 피해자 상당수는 A씨 외에도 의사나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직원 등 고학력·고소득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암호화폐 열풍 속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기술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역시 고학력·고소득자 대상의 사기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광주지검에 따르면 B씨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수익과 원금 보장을 약속, 13명한테서 미술품과 연계된 NFT 관련 투자금 등 명목으로 약 28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블록체인 전문 곽상빈 변호사는 “NFT는 복제가 불가능하지만 발행은 자유롭다는 점을 사기꾼들이 악용하기 쉬운 분야”라며 “국내에서 NFT 투자 설명회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 수개월간 수익금을 지급하면서 이들을 안심시킨 다음에 추가 투자자 모집이 어려워지면 잠적하는 식의 투자 사기가 급증해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전청조씨처럼 거짓된 애정 관계를 형성한 뒤 돈을 뜯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로맨스스캠(Romance Scam)도 기술 발전으로 날개를 단 사기 유형이다. 인천서부경찰서에 따르면 C씨는 지난해 채팅 앱에서 만나 연인 행세를 한 사기꾼의 말을 듣고 한 사이트에 유료로 가입했다. 사기꾼이 속한 조직이 연루된 사이트였다. 이후 사이트에서 환전 아이템 구입 등의 각종 비용을 요구했고, C씨가 수천만원을 입금했을 때 사기꾼과 해당 사이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처럼 신기술과 함께 천태만상으로 진화한 사기 수법들이지만 그 기본 바탕엔 사람 심리의 취약한 부분에 대한 겨냥이 있다. 자신이 어렵게 이룬 사회적 지위 등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A씨의 사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B씨에게 투자한 13명의 사례), 외로움(C씨의 사례) 등이다. 배상훈 프로파일러(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는 “대부분의 사기는 수법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판단이 흐려져 발생한다”며 “사기꾼은 교묘한 언행으로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현직 검사도 비슷한 원리로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검사 D씨는 유아용 카시트를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판매자를 찾았고, 그가 자신의 신분증과 함께 교회 부목사라며 교회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줘서 믿었는데 사기꾼이었다(『여자 사람 검사』(서아람·박민희·김은수)).

찰스 폰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기 수법 중 하나로 지금껏 이어지는 ‘폰지 사기’도 이를 입증하는 사례다. 1920년대 미국에서 활동한 사기꾼 찰스 폰지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용어는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사기를 가리킨다. 폰지는 당시 해외에 있던 국제우편 쿠폰을 대량 매입한 뒤 미국에서 유통시키면 환차익을 거둘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그러면서 투자한 지 45일 후 원금의 50%, 90일 후 100%에 달하는 수익을 지급할 것을 약속해 수개월 만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금을 모았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당대 수많은 엘리트의 욕망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당시 미국에선 그렇게 많은 쿠폰을 유통할 수 없었고, 쿠폰 환전에만 45일이 넘게 걸렸다. 폰지의 사업은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들의 돈으로 간신히 버티다가 결국 순식간에 몰락했다.

처벌 약해 감옥 갔다 나와서 또 사기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후 폰지 사기는 지난해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등이 연루된 암호화폐 테라·루나 사태(가격 99% 이상 폭락) 같은 모습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투자자 다수는 테라·루나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글로벌 암호화폐 투자 업계의 거물 중 한 명인 마이크 노보그라츠 갤럭시디지털 CEO는 팔에 루나 관련 문신까지 했다가 해당 사태 직후 “나의 문신은 투자에서 겸손을 요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할 것”이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살면서 이룬 성취를 통해 스스로의 판단을 과신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고학력·고소득자들이 부풀어 오른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쉽게 사기 피해에 노출될 수 있는지가 드러난 또 하나의 사례라 할 만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사기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유행할 만큼 사기 범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23만1489건이던 국내 사기죄 발생 건수는 지난해 32만5848건으로 5년 사이 40%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검거 건수는 18만3974건에서 19만1900건으로 약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사기 수법이 지능·고도화하면서 피해 급증과 동시에 검거율은 수직 하락 중이라는 얘기다. 전체 범죄 대비 사기죄의 비중도 2017년 13.9%에서 2021년 20.6%로 높아졌다. 일본은 2019년 4.3%에 불과했던 것과 대조된다.

동종 재범이 많은 것도 눈에 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 재범은 3만3063건으로 음주운전 등의 교통 재범(4만8949건) 다음으로 많았다. 낮은 양형 기준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현행법상 1억원 미만 일반 사기는 기본 6개월에서 1년 6개월의 징역, 수법이 불량하거나 동종 재범인 경우도 2년 6개월의 징역에 그친다. 1조원대 사모펀드 사기를 저지른 김재현 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의 징역 40년이 가중 처벌 요소를 포함한 역대 최고 형량이다. 이와 달리 미국에선 1990년대에 보험 회사를 상대로 4억5000만 달러(약 6070억원)어치 사기를 친 숄람 와이스에게 징역 845년, 1970년대 초부터 2008년까지 세계 136개국 투자자들을 상대로 175억 달러(약 23조원)어치 폰지 사기를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징역 150년 등 사실상 종신형까지 선고할 만큼 사기죄에 대한 엄벌주의를 고수한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금전적 처벌도 약해서 2021년 기준 사기죄 피해액의 45.6%만 회수되고 있다. 일각에서 “사기 쳐서 목돈부터 챙긴 뒤 감옥살이 좀 하다가 나와도 이득”이란 얘기마저 나오는 이유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기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사기죄 발생과 사기 재범 급증 등 악순환을 낳고 있다”며 “처벌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외에도 최근 연령대별로 피해를 입기 쉬운 사기 유형에 대한 국민들의 숙지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예컨대 청소년층의 경우 보험 사기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기꾼이 자동차 사고 보험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청소년을 모집, 아르바이트인 것처럼 모르고 참여하게 한다”며 “결과적으로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나누는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고 전했다. 중·장년층은 분양권을 미끼로 가계약금을 가로채는 등의 분양권 사기, 노년층은 신용카드로 세금을 대신 납부해주면 그 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 유인한 뒤 결제액을 가로채는 등의 카드대납 사기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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