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부르는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 [OTT 내비게이션⑧]

홍종선 2023. 11. 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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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봐야 하나 고민 끝 영화 ‘로켓맨’에서 실마리 발견
실화 범죄 ‘다큐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 ⓒ넷플릭스

2022년 2월 2일, 넷플릭스에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 한 편이 공개됐다. 제목은 ‘THE TINDER SWINDLER’(틴더 스윈들러, 틴더 사기꾼).

데이트 상대를 이어주는 데이팅 앱 틴더를 매개체로, 전용기에 호화 파티에 명품 패션 등 럭셔리부호 행세를 무기로, 유럽 각국 다수의 여성들에게 무려 1000만 달러를 착취한 사기꾼에 관한 다큐다.

사이몬이라는 이름의 남성이 여자들에게 어떻게 환심을 사고, 어떻게 돈을 뜯어냈는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피해 여성 중 3명이 직접 출연한 것은 물론이고 가해 남성의 얼굴과 음성도 모두 공개하고 있다.

웬만한 드라마보다 극적으로 전개돼서 어느 순간 다큐임을 잊고 실화 바탕 영화로 착각할 만큼 사이몬이라는 남성의 사기 수법과 그에 걸려든 여성들의 사연에 현실감이 없다.

여러 개의 가명을 쓰는 틴더 사기꾼, 가해자 사이몬의 모습이 영화에 그대로 공개돼 있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dance8090

오늘 이 다큐를 소개하느니 이유는 데이팅 앱의 위험성을 얘기하려는 것도, 사기 수법을 똑똑히 알아둬서 우리는 당하지 말자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공개된 제목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감독 펠리시티 모리스)가 본의 아니게 나의 가치관들에 직면하는 계기가 되는 영화여서다. 그것도 다같이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확률이 높은, 논쟁 가능한 쟁점들이 내포돼 있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는 이유 중에는 재미도 분명 있지만.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나만의 기준들을 작품 내 캐릭터나 주제 의식에 투영해 점검하기도 하고 새로이 형성하게 되는 미덕이 있어서다.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어떤 것을 중시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우리지만 끊임없이 진짜 그러한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기존의 생각을 강화하기도 하고 변경하기도 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뇌와 마음이 작동한다.

솔직히 말하면,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는 불편한 영화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속물이었나 놀랄 수도 있고, 내가 이렇게 외모를 중시했나 의아할 수도 있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쪽에서 사기 사건의 원인을 찾는 우리를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위험한 영화기도 하다. ‘결국,부자 남자 만나서 신데렐라 되고 싶었던 거 아니냐’, ‘아니 어떻게, 생기기까지 잘생긴 남자가 평범한 당신을 좋아하리라 믿었지? 자신을 너무 모르는 거 아니야’. 2차 가해의 막말이 흔하다.

생각해 보자. 정말 사랑이라는 스파크가 튀는 데 외모가 필수인가. 자기객관화도 중요하지만 자존감도 중요하지 않은가.

사기로 포장된 외양이지만 그 정도 재력에 그 정도 미남자의 눈에 들자면 딴 건 몰라도 예쁘긴 해야 하고. 피해 여성들이 예쁘면 ‘속을 만했네’ 동정을 사고, 평범한 외모면 ‘'당해도 싸다’ 비난을 받아야 할까. 혹시 나도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어도 피해 여성들의 외모를 속으로 품평하자 않았을까. 사기 사건의 본질, 그 시작부터 끝까지의 원인은 다른 사람을 등쳐서 먹고 사는 가해자에게 있는데 말이다.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나 홀로 ‘100분 토론’의 시간이 더 길다. 영화 결말을 놓고도 그렇다.

다큐 내에 언급된 피해자만 해도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여성이 당했고, 그 피해 규모가 150억 원에 육박하는데. 가해자는 5개월 만에 자유인이 되어, 다시 온라인 세상과 SNS 셀럽이 되어 호의호식하고 피해자들은 남자에게 뜯긴 돈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허덕이며 살고 있다는 기막힌 결말보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을 추구하고 데이팅 앱에 접속한다는 피해 여성의 발언에 더욱 주목하고 ‘정신 못 차렸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게 타당한 건지 자꾸만 생각한다. 있는 거 날리다 못 해 빚까지 남은 사람은, 남자한테 사랑과 결혼을 빙자한 사기를 당한 사람은 이제 인생에서 사랑을 지워야 하나. 여전히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고,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할까.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사랑이라는 기적을 믿었던 대가가 너무 크다. 그렇더라도, 누구나 지독한 이별 후에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듯, 피해자들의 인생도 계속 흐른다. 아니 흘러야 한다. 피해의 그때에 인생의 시계가 멈춰 있어선 안 된다. 그 누구보다 사랑이라는 명약이 필요한 순간이다.

옥신각신, 아웅다웅, 머릿속 마음속 전쟁 끝에 몽글몽글 가치관 안으로 수렴이 이뤄지니 평화가 온다. 이제 명쾌하게, 용기 내 경찰과 언론에 가해자를 고발하고 세상에 틴더 사기꾼의 존재를 알린 그들의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응원한다!

다음은 영화 ‘로켓맨’에서 남자주인공 레지 드와이트(장차 전설적 가수가 되는 엘튼 존의 어린 시절 본명)가 10대 초반의 소년일 때 가족이 번갈아가며 함께 부르는 노래의 가사다. 영화 ‘데이트 앱 사기: 당신을 노린다’가 불러온 내면의 분쟁을 끝내고 평화를 길어올리는 마중물을 다른 영화에서 만났다.

난 사랑을 원하지만 가질 수 없지

저런 남자는 너무도 무책임해

저런 남자에겐 감정이라곤 없지

다른 남자들은 해방감을 느끼는데

난 사랑을 못 해

이 구멍난 심장으론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해

차가운 마음뿐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해

오래된 상처뿐

심장엔 굳은 살만 박이네

난 사랑을 원해, 내 방식대로의 사랑

수많은 실수 뒤에

무거운 짐이 나를 짓누르네

아, 너무도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함했네

그래도 사랑을 원해

지금과는 다른 사랑

난 사랑을 원해

나를 무너뜨리지 않고

상처 주거나 가두지 않을 사랑

의미 있는 사랑

난 사랑을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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