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공급 확대” 야 “갭투기 조장”…실거주 의무 폐지안 9개월째 평행선
여 “사회초년생 분양 제약 철폐”
야 “전세사기·깡통주택 우려 커”
주거이전 자유 논쟁까지 불거져
분양가 상한제·전매제한과 얽혀
‘규제 완화’ 접점 찾기 만만찮아
윤석열 정부가 전매제한을 완화하면서 거래가 반짝 살아났던 분양권 시장이 최근 주춤해졌다. 전매제한과 패키지 격인 ‘실거주 의무’ 규제가 계속 살아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전매제한 완화로 분양권 매물이 시중에 쏟아졌지만 최고 5년 거주해야 하는 실거주 규제 때문에 쉽게 투자에 나서기는 힘들다.
■ 실거주 의무 여부에 분양권 시장 출렁
실거주 의무 규제는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2021년 2월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다. 공공택지 내 모든 지역, 민간택지는 분양가상한제(분상제) 적용 지역에 입주 시점부터 최소 2년에서 5년까지 의무거주 규제가 적용된다. 정부에 따르면 2021년 2월 이후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해 실거주 의무 규제를 받게 된 단지는 전국 66개, 4만3786호다. 공공택지 분양 58단지(3만4572호)와 민간택지에 분양된 8단지(9214호) 등이다.
실거주 의무 규제는 도입 직후 분양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2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실거주 규제가 도입되기 직전 해인 2020년 한 해 서울의 분양·입주권 거래는 993건이었는데, 도입 직후인 2021년 297건으로 고꾸라졌다.
이는 전매제한은 완화됐지만 실거주 의무 규제가 지난 1월 정부 발표 후 9개월이 지나도록 국회 첫 관문인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전매제한 완화는 법 개정 없이 시행령 개정으로 즉각 적용할 수 있지만 실거주 의무 규제는 국회에서 법 개정으로만 폐지될 수 있다.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과 성북구 장위자이레디언트도 전매제한이 완화되면서 오는 12월 분양권이 시중에 풀리지만 거래가 활성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주거사다리 회복” vs “갭투기 위험”
실거주 의무 규제 폐지 법안은 지난 2월 발의됐는데 8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 5월30일 열린 소위원회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실거주 의무 폐지와 관련한 입법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야는 거주이동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부터 갭투기 우려 대 주거사다리 복원 등 다양한 쟁점을 두고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여러 쟁점을 경향신문이 확보한 국토교통부 작성 ‘실거주 의무 참고자료’와 국회 법안심사소위 속기록을 바탕으로 짚어봤다.
‘실거주 의무 참고자료’는 국토부가 지난 5월30일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제출한 것으로 실거주 의무 폐지에 대한 정부 입장이 상세히 담겼다. 먼저, 국토부는 실거주 의무 규제는 당장 현금이 있는 부자만 분양을 받게 하는 제도라고 본다. “사회초년생, 서민 무주택자들은 거주할 주택을 분양받아도 목돈이 부족해 우선 임대하고 나중에 입주할 수밖에 없는데 실거주 규제로 최초 입주부터 거주해야 해 주거상향이 제약된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반면 야권은 ‘갭투기를 조장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토부가 언급한 목돈 없는 분양권 수요자를 가리켜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 사겠다는 이야기”라며 “(전세사기 때는) 사적자치 영역이라며 (국가재정을 투입해 피해자를 돕는) 개입을 할 수 없다던 정부 논리와 안 맞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실거주 의무 폐지가 다음번 전세사기, 깡통주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 “주거이전 자유” vs “실거주자 우선”
정부는 현실적으로 규제 자체가 작동이 불가능한 3가지 사례도 제시했다. 기존 임대차계약 기간이 만료되지 않아 실거주 의무 시점에 주거이전이 어려운 경우, 거주지 및 직장 때문에 실거주할 수 없는 경우, 자녀 교육 문제로 실거주를 못하는 경우다. 이 문제는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 논쟁으로 번졌다.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과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두번 다시 주택 정책에 거주이전의 의무를 들고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은 이미 정부가 마련해놓은 예외 규정에 직장, 자녀 학업 문제로 인한 실거주 불가 사례가 다 포함된다고 반박했다. 심 의원은 “거주이전의 자유보다 주거권 자유가 더 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공공택지에는) 공적자원이 들어간 만큼 실제 거주하려는 국민에게 (분양이) 돌아가게 하는 게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존재 이유”라고도 반박했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은 ‘실거주 의무’라는 명칭 자체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환매 의무’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분양주택에 바로 입주하지 않고 임대를 놓아 돈을 버는 경우엔 정부가 그 임대소득을 환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공공재원이나 국가의 재원을 통해 개인이 과도한 이익을 얻게 되는 구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분양가 상한제 둘러싸고 공방도
야권은 분상제와 실거주 의무 규제를 한 세트로 보고 있다. 분상제로 분양가가 낮아지는 혜택을 얻었기 때문에 그만큼 실거주 규제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모든 분상제 아파트가 시세보다 싸게 분양되는 것은 아니라며 분상제와 실거주 의무가 꼭 같이 갈 필요가 없다고 봤다.
국토부는 분양 시점, 평당 분양가가 동일한 서울 성북 장위자이 아파트와 서울 중랑 리버센SK뷰를 구체적 예로 제시했다. 두 단지는 불과 1.7㎞ 떨어져 있는데 장위자이는 분상제 적용 단지로 실거주 2년 규제를 받는 반면 리버센SK뷰는 제한 없이 분양권을 살 수 있다.
여야가 실거주 의무 폐지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실거주 규제를 일부에 대해서만 풀거나, 시행령으로 예외 대상을 넓히는 절충안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허종식 민주당 의원은 “공공택지의 공공분양, 또는 투기과열지구 등에 공급되는 주택으로 (실거주 의무 대상을) 한정하는 게 합리적으로 맞다”며 현재 최대 5년인 실거주 의무에 대해서도 “경기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원칙적으로 법안을 통한 폐지가 맞다는 입장이다. 연간 4만호 물량의 실거주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과정에서 드는 막대한 행정 비용도 일부 규제 완화로는 해결하지 못한다고 본다. 국토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실거주 규제가 주거상향을 제한하는 문제 등은 예외 사유를 넓히는 시행령 개정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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