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제사 때 마음고생한 크리스천 다음엔 이렇게 풀어보자

유영대 2023. 10.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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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은 제사 어떻게 해야 하나’
목회자 100명에게 해법을 묻다
이 땅에 기독교 복음이 전해진 지 130여년이 됐지만 아직도 조상숭배나 제사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크리스천이 적지 않다. 사진은 한 기독교인 가정이 묘소에서 추모예배를 드리는 모습. 국민일보DB


“저는 조상제사에 안 갑니다. 십계명을 어기는 우상숭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 김모(50·자영업)씨는 지난 추석 집안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제사에 참석하면 조상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듣기 일쑤기 때문이다. 수년째 그렇게 행동하다 보니 일가친척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 생일잔치나 경조사에도 빠지는 일이 잦다.

제사음식을 만들어 먹고 제례 예식을 두고 갈등이 쌓이는 크리스천도 많다. ‘효도한다고 생각하면 절하고 제사음식 먹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라고 하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교회 권사인 이모(55·가정주부)씨는 지난 추석에 “저는 크리스천이라 절을 할 수 없다. 기도만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절을 하고 제사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시댁 어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뿐 아니라 형제간 다툼이 생기고, 무엇보다 믿음 없는 시댁 식구들을 전도하고 싶은 이유가 컸다.

여전한 조상제사 갈등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0여년이 흘렀다. 하지만 가정 현장에선 이처럼 조상제사 문제로 힘들어하는 크리스천들이 여전히 많다. 양가 부모가 모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집안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양가 부모의 가정 가운데, 그리고 일가친척 중 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불신자들이 많다면, 제사상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을 하는 행위는 기독교인에게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선교 초기부터 제사 문제는 큰 걸림돌이었다. 유교 전통이 강했던 당시엔 조상제사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고 효를 멀리하고 배격하는 종교라고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는 예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은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부모 공경을 실천할 수 있을까.

지난 1일부터 27일까지 목회자 100명에게 문자와 이메일 등을 통해 ‘조상숭배와 크리스천’ ‘바람직한 추모예배’ 등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 절반 이상의 목회자들은 “제사에는 어쩔 수 없이 참여하더라도 절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명진 수원중앙침례교회 목사는 “제사는 부모의 은덕을 기리고 감사하는 의미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조상을 신으로 생각하며 축문을 하고 지방을 태우는 행위, 신(조상신)을 청하는 행위, 숭배하며 절하고 소원을 비는 행위 등은 반(反)성경적이다. 절대 불가하다”고 말했다.

논쟁 대신 섬김과 사랑으로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잇따랐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기독교인이라면 가족들 앞에서 자기주장만 강요하지 말고 먼저 양보하며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부모 공경을 확실히 하고 덕을 쌓아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또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교리만 강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충북 증평 표순열 새벽교회 목사는 “일반적으로 제삿날이 되면 가족이 모인다.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가족공동체를 외면하거나 따돌림을 받을 필요가 없다며 “기독교인은 오히려 이날을 선용할 필요가 있다. 제사 행위 외에는 모든 면에서 ‘예수 믿는 크리스천이 최고’라는 말을 듣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모예배에 그 답이 있다는 박노철 더사랑교회 목사는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것과 남긴 말씀을 잘 준비해 서로 나누며 자녀에게 도전을 줄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추모예식이 끝난 후 온 식구가 식사 교제를 함께 나눈다면 그 어떤 제사보다 더 은혜롭고 마음과 정성이 들어간 신앙적 예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기독교인 가운데는 제사음식에 대해 우상에게 바친 음식이라 생각하고 부정하게 여기고 이를 먹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 8:4)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믿음으로 (제사음식을) 먹으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충남 아산 임헌준 예은교회 목사는 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 가운데 어느 것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제사음식을 통해 시험에 들거나,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는 것”이라며 “제사음식을 먹음으로 시험에 들거나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든다면 피해야 할 것(고전 8:9~13)”이라고 했다.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총장 심만섭 목사는 명절에 음식을 차리는 것은 기독교인에게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는 기독교인도 똑같이 제사상을 차리자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화합하고 교제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심 목사는 “불신자들이 제사상을 차리는 것은 죽은 조상이 와서 음복한다는 생각 때문”이라며 “그러나 성경에 보면 죽은 자가 살아있는 곳을 찾아올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제사상을 차리는 데 동참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떤 성도는 제사상은 차리지만 제사의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동조하는 것이다. 오히려 가족과 진지하게 논의해 빠지되, 대신 평소에 가족 간 유대관계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음 전할 기회로 여겨야

1인 가구 증가 등 핵가족 현상이 심화하고 조부모 이상은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현실에서 제사 관련 갈등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목사님도 모르는 교회 안에 무속 신앙’의 저자 서재생 목사는 “근래에는 절하는 문제로 극단적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강도는 약해졌지만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서 목사는 “최근엔 지방자치단체들이 관광 사업의 하나로 사라져가는 무속신앙을 붙잡고 있다. 신년 시무식 고사, 풍어제 및 안전기원제 등 무속적 행사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연구 논문 ‘조상숭배: 현대적 관점으로부터’에서 한국적 상황에서는 조상숭배가 활성화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기울어져 가는 유교, 전통적 세계관의 세속화, 전통적 가정과 사회 구조의 해체, 종교의식에 따른 소외감, 기독교가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그 요인으로 들었다.

제사음식 준비는 불신자의 마음을 열게 하고 전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우리가꿈꾸는교회 조기연 목사는 “일반적으로 불신자들도 제삿날 음식을 만들고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오히려 기독교인이 미리 가서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는 것은 감동을 끼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전도했다”고 말했다.

이중호씨는 목원대 석사 학위 논문 ‘선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조상숭배에 관한 연구’에서 “한국적 상황에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만남의 장이 바로 관혼상제 의식이라는 것을 한국교회는 명심해야 한다. 이를 등한시하면 많은 선교적 장애가 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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