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태원 프리덤'을 위하여
[용산FM 기자]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태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에게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기록이 또 다른 이야기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경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태원 참사 1주기가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태원에서 슬퍼하고 분노한 지도 1년이 되었다. 아직도 믿기 힘든 그 날이다. 지난 1년 동안 이태원 참사가 다뤄지는 과정을 보면서 마냥 슬퍼할 수는 없다는 것을 체감했다. 참사를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면 건강한 문화를 가진 지역 공동체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이태원이란 무엇일까?' 그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태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로 이태원이라는 공간과 참사에 대해 듣고 싶었다.
이태원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그들이 형성하는 다양한 문화는 이태원의 정체성 중 큰 축을 이룬다. 따라서 이태원의 외국인 역시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외국인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은 굉장히 어렵고 막연했다. 이태원에 거주하거나 노동해야 했고, 어느 정도 한국어로 소통 가능해야 했으며,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말하고 싶어해야 했다.
몇 개월의 수소문 끝에 모로코에서 온 모하메드씨와 연이 닿았고, 그가 바라본 이태원이라는 공간과 참사에 대해 기록할 수 있었다.
▲ 질문에 답하는 모하메드 옐 타예드씨의 모습 |
ⓒ 용산FM |
- 이태원에 온 배경이 궁금하다.
"한국에 온 지는 9년이 되었다. 지금은 경리단길에서 4년째 살고 있다. 경리단길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느슨하게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살기 좋다고 생각하여 이사를 왔다. 또, 서울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동이 편하기도 하다."
- 이태원만의 매력이 있다면? 기억에 남은 경험도 듣고 싶다.
"이태원은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이태원에는 특별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다양하고 이국적인 경험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태원에서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이태원 지구촌 축제 참여이다.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서 여러 국가의 문화를 느끼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본 것이 가장 좋은 기억이다. 이태원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러 나라의 음식을 다루는 식당이 많은 것이다. 사람들이 이태원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여러 음식만큼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태원은 자유롭고, 다양하고, 국제적이다."
영화에서만 보았던 핼러윈, 깜짝 카메라 같았던 참사
-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참여한 적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는 핼러윈 축제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처음 경험했다. 한국 온 지 2~3년 후에 처음 봤다. 그 전에는 영화에서만 봤는데, 직접 체험해 보니 즐거웠다. 첫 참여 이후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에 자주 갔고, 홍대의 핼러윈 축제를 참여하러 가기도 했다. 홍대의 핼러윈 축제와 가장 큰 차이점은 참여자의 연령대라고 생각한다. 홍대 핼러윈 축제는 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이태원 핼러윈 축제 참여자의 연령대는 더 다양하다."
- 참사 당일 어디에 있었나?
"그 날 나는 친구랑 해방촌에 있었다. 그때 친구랑 핼러윈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태원 쪽으로 가려고 했다. 친구랑 이태원을 갈까 말까 생각하다가, 이태원에는 사람이 많을테니 안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여 가지 않았다. 이태원과 다르게 경리단, 해방촌 쪽은 핸드폰이 잘 터졌다. 그래서 이태원 참사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깜짝 카메라 같은 장난인 줄 알았다. 참사 관련 소식을 접하고 바로 이 상황이 실제라고 믿은 친구들도 있었다. 소식을 들은 당시에 나는 사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핼러윈에는 그런 장난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난안전문자를 받은 순간부터 이 상황이 모두 사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있다가 다친 친구가 한 명 있다. 참사로 인해 친구가 많이 다쳤는데 병원에 계속 다녀서 지금은 좀 괜찮아졌다. 심리 상담까지는 받지 않았지만, 다른 의료 지원을 잘 받았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참사와 관련하여 직접적인 어려움은 크게 없었고 생각이 안 난다. 다만, 재난안전문자와 같은 비상시 긴급 알림은 한국어로 안내가 되기 때문에 외국인은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난처하다. 재난안전문자가 영어로도 제공이 된다면 좋겠다."
▲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사흘 앞둔 26일 서울 이태원역 인근 현장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 공개됐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표지석을 어루만지며 슬픔에 잠겨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나? 자신과 이태원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참사 이후) 나는 이전에도 이태원에 많이 갔고, 참사 당일에도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무거웠고 동시에 무서움도 느꼈다. 나와 친구들도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갔으면 참사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 주변 친구들 중 이태원 축제에 간 친구들이 있었는지, 간 친구들이 있다면 괜찮은지 많이 걱정했다. 참사로 인해 죽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미안하다. 너무 젊은 사람들인데 그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조성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추모 조형물을 살펴보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 어떤 방식으로 추모했나? 혹은 다른 추모 방식을 제안한다면?
"참사 일주일 쯤 후 이태원 지하철 분향소와 녹사평역 부근 광장의 분향소 두 곳에 방문했다. 분향소에 방문했을 때는 굉장히 힘들었고, 영정 사진까지 보니까 더 마음이 힘들었다. 분향소에서 마음 속으로 잊지 않겠다고 말했고, 앞으로도 잊지 않으리라 말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할 수 있는 '추모관'과 같은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 이태원 참사 현장, 바로 그 골목에 추모 공간이 생기길 바란다. 추모 시설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길 바란다. 추모 공간에서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사람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안전에 대한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물리적 공간뿐만이 아니라 추모 행사가 자주 있어 사람들이 참사와 추모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 앞으로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핼러윈 축제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해에 있을 핼러윈 축제에서는 무조건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면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불안전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고 스스로 주변 상황을 더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축제와 안전 교육을 같이 이어가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핼러윈 행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훨씬 깊이 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태원의 외국인은 저마다 다른 정체성을 지녔다. 그 다양한 문화를 이해해야 참사와 추모에 대한 이야기도 더욱 잘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나의 경우, 미리 조사한 정보가 인터뷰이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아 인터뷰 도중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편, 충분히 형성된 상호 신뢰감은 인터뷰에 대한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한국어로 진행된 인터뷰였던 만큼 사전 인터뷰를 통해 보다 세심히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고 성찰한다.
이태원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듣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인은 단일하지 않다. 그 다양성에 대한 무지는 타자화로 이어질 수 있다. 모하메드씨가 느낀 자유는 이태원의 지역성이자 정체성이다. 이번 인터뷰는 그런 '이태원 프리덤'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을 누군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올해 10월 29일은 어떤 모습일까. 매년 핼러윈 행사를 기획하던 놀이공원에서는 그 대신 가을, 땡스기빙 등 다른 테마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중이다. 또한 미국의 한 채널은 이태원 참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공개할 예정이다. 유가족들은, 경험자들은, 지역민들은 그리고 이태원 참사에 애도를 표했던 수많은 이들은 그날을 어떻게 맞이할까.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는 이태원의 지역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그 자생적인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 당장 올해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가 열릴지, 열린다면 어떤 모습일지, 동시에 참사는 어떻게 기억될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다. 다가오는 일주기를 상상해 본다면, 사실 긍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아무도 찾지 않을까 봐, 경직될까 봐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핼러윈 축제가 위축되지 않기를 강하게 바란다. 그런 소망이 생겼다.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그리고 이왕이면 더 잘 놀자 이태원. 지난 날 잃은 것을 잊지 말고, 그 기억을 안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핼러윈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모두가 '이태원 프리덤'을 외칠 수 있도록 혐오는 빼고 해방과 다양성은 더하는 공간이 되길, 이곳에서 겪은 아픔을 서로에 대한 수용으로 승화하길, 사랑이 앞선 이태원이 되길 바란다.
- 인터뷰어 : 윤보영 / 인터뷰이 : 모하메드 옐 타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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