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위고비 신드롬’ 부른 당뇨 치료 명가 [케이스스터디]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10. 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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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0주년 맞은 노보노디스크

덴마크 하면 떠오르는 기업이 어디인지. 아마 ‘레고(Lego)’라고 답한 독자가 적지 않을 듯싶다. 맞다. 1932년 설립된 레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난감 회사 중 하나다.

하지만 2023년 10월 현시점에서 뚜렷하게 덴마크를 대표하는 기업이 있다.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다. 1923년 설립된 이 회사는 ‘당뇨병 치료제’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당뇨병 치료제가 비만에 효과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치료제를 내놓은 뒤 전 세계에 비만 치료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덴마크 현지에서 노보노디스크는 국민 기업으로 통한다. 노보노디스크가 없었더라면 경제가 위태로웠을 것이라는 평가도 흔히 나온다. 덴마크 경제부는 지난 9월 31일(현지 시각) “많은 이웃 국가들이 경기 침체, 심지어 퇴보를 경험하고 덴마크 경제도 둔화 국면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노보노디스크가 이끄는 제약 산업 성장으로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6%에서 1.2%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위고비(Wegovy)라는 약 하나가 국가 경제 전망까지 바꿔놓은 셈이다.

일론 머스크 다이어트로 소문

비싸도 못 구해…15% 감량 효과

‘글로벌 셀럽’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들어 날씬해진 몸으로 화제가 됐다. 1년 만에 13㎏이나 감량했다. 그는 다이어트 비결로 간헐적 단식과 운동을 꼽았다. 동시에 ‘약’의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머스크의 체중 감량에 기여한 약이 노보노디스크 ‘위고비’다.

위고비는 현재 시판 비만 치료제 중 가장 효과가 좋다고 평가받는다. 68주를 투약해 15㎏까지 감량한 사례가 있다. 감량 효과는 체중의 15% 수준이다.

한 달 치 주사제 가격이 1349달러(약 190만원)로 꽤 비싸다. 그래도 없어서 못 판다. 노보노디스크는 위고비에 앞서 ‘삭센다’를 내놓은 바 있다. 이 제품도 인기였다. 다만 체중 감량 효과가 8%대 정도였다. 가격 대비 체중 감량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삭센다에 이어 나온 위고비는 2021년 미국에 이어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영국 등에서 판매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았다. 업계에서는 내년 한국에서도 위고비 처방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위고비 신드롬과 함께 노보노디스크 매출은 급격히 뛰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120억8100만덴마크크로네(약 2조3500억원)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4.7배가량 급증했다. 위고비는 단숨에 노보노디스크의 매출 기여도 2위까지 올랐다. 수년 전만 해도 글로벌 10위권 제약사였던 노보노디스크는 이제 존슨앤드존슨, 화이자 등을 제치고 일라이릴리에 이은 2위 제약사가 됐다.

주가는 더 놀랍다. 지난 10월 17일(현지 시간) 기준 노보노디스크 주가는 101.16달러다. 1년 전 대비 100% 뛰었다. 게다가 연일 최고점을 경신하는 중이다. 시가총액은 6877억달러(약 928조원)에 달한다. 지난 9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 내 시가총액 1위로 올라섰다. 시가총액은 덴마크 국내총생산보다 많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전자(420조원, 10월 18일 기준)와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덴마크 노보노디스크 본사. (EPA)
혈당 낮추는 GLP-1 호르몬

“배부르다” 신호 보내 식욕 조절

위고비는 100년간 당뇨 치료제 한 우물을 판 노보노디스크가 우연히 얻은 행운에 가깝다. 노보노디스크의 2형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 사용자 사이에서 탁월한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나자, 아예 같은 성분으로 용량만 바꿔 위고비 이름을 달았다. 심장 치료제로 개발되던 화이자의 비아그라가 획기적인 발기부전 치료제가 된 것과 비슷하다. 뉴욕타임스는 “위고비 성공으로 다이어트와 성인 건강식품 산업 판도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했다.

위고비 성분은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호르몬과 비슷하다. GLP-1 호르몬은 음식을 먹으면 췌장에 인슐린 분비를 늘려 혈당을 낮춘다. 당뇨병 치료 효과를 내는 원리다. 뇌에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내보내 음식물 통과를 지연시켜 식욕을 조절한다. 체중 감량 효과는 여기서 나온다. 위고비의 경우 세마글루티드가 GLP-1과 유사하게 작동한다.

최근 오젬픽이 신장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며 더욱 주목받는다. 임상 결과가 알려지자 신장 질환 관련 투석 서비스 업체와 약품 제조사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노보노디스크의 파워를 보여주는 제목이다.

라스 프루어가르드 예르겐센 노보노디스크 CEO
노벨상 수상자 설립…올해 100주년

당뇨병 획기적 치료…공공재단 운영

노보노디스크는 올해로 꼭 100주년을 맞았다. 1920년 모세혈관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덴마크 의사 아우구스트 크로그는 1922년 아내 마리와 함께 미국 동부 순회 강연을 떠났다. 남편만큼 유명한 의사였지만 당뇨병 환자였던 마리는 여행 중 크로그에게 “인슐린을 처음으로 추출해낸 캐나다 토론토대의 프레더릭 밴팅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세 사람의 만남은 다음 해인 1923년 덴마크 ‘노디스크 인슐린 연구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밴팅은 ‘당뇨 환자를 구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인슐린 특허권을 단돈 1달러50센트에 토론토대에 넘겼다. 크로그 부부에게도 돈을 받는 대신 다른 조건을 내걸었다. “인류 공공의 선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노디스크 연구소는 이후 제약 업체 ‘노보테라퓨틱스’와 합병해 노보노디스크가 됐다. 1978년 유전자 재조합으로 사람 인슐린을 세계 최초로 생산했다. 1985년에는 세계 최초 펜 형태 인슐린 주사를 내놨다. 기대수명이 15개월밖에 안 되는 당뇨병 치료의 새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세계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 노보노디스크 점유율은 32%에 이른다.

특정한 소유주가 없는 공공 재단인 노보노디스크 재단은 노보노디스크 주식 2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순자산은 2020년 기준 1202억달러(약 160조3000억원)다. 대표 자선 재단인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자산 규모(502억달러)를 두 배 이상 앞선다. 과학계에서는 창업자 부부 연구가 인류에게 미친 기여, 부부의 딸과 사위까지 모두 저명 과학자였다는 점에서 크로그 가문을 ‘덴마크의 퀴리 가문’이라고 부른다. 창립자 크로그 부부는 인류에 기여해야 한다는 밴팅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이들은 ‘아우구스트 앤드 마리 크로그 재단(현 노보노디스크 재단)’을 설립해 의료 연구 등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희소병 치료, 생명과학 발전, 병원 건립 등에 매년 수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덴마크 국민주다. 덴마크 개인 투자자 가운데 20% 이상이 노보노디스크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간 당뇨에만 집중해 ‘위고비’ 열풍이 불기 전까지는 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비만 치료제로 탄력 받은 노보노디스크는 연구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 8월 비만 바이오텍 2곳을 인수했고, 심장·신장 질환 파이프라인 확보에 나섰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 10월 16일 KBP바이오사이언스와 심혈관·신장 질환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고혈압 치료제 오세두레논(ocedurenone· KBP-5074)을 최대 13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KBP바이오사이언스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생명공학 기업이다. 중증 심혈관·감염성 질환 치료를 위한 혁신적인 저분자 치료제를 발굴해 개발한다. 마틴 홀스트 랑게 노보노디스크 부사장 겸 개발책임자는 “고혈압은 심혈관 질환과 심부전, 만성 콩팥병, 조기 사망의 주요 위험 요인”이라며 “오세두레논은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치료의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 잠재력을 갖고 있고, 심혈관 질환과 만성 콩팥병 환자의 주요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노보노디스크가 덴마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크다 보니 덴마크에서는 노보노디스크를 경제 상황 분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옌스 네르빅 페데르센 덴마크 단스케은행 경제학자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덴마크에서 단일 기업이 이렇게 큰 역할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제약 산업이 없었다면 경제가 거의 성장하지 않은 수준이라 별도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만 치료제 개발 열풍
일라이릴리 마운자로 강력한 경쟁자
위고비 흥행은 글로벌 제약 시장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경쟁사들도 비슷한 원리를 이용한 치료제를 속속 내놓고 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리스는 지난 4월 2033년까지 시장 규모가 1000억달러(약 136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출시가 임박한 일라이릴리 ‘마운자로’는 위고비의 강력한 경쟁 상대다. 티르제파티드라는 성분을 활용한 마운자로는 임상 3상에서 72주 만에 비만 환자 체중이 22.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위고비 최대 감량 효과 15~17%보다 강력한 결과다. 마운자로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시판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2형 당뇨병 치료제로만 사용할 수 있다. 미국에서 먼저 올해 안에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비만 치료제 허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임상 2상까지 마친 품목 가운데 체중 감량 효과가 빠르고 압도적인 것은 일라이릴리의 또 다른 비만약 ‘레타트루티드’다. 투약 48주 만에 임상 시험에 참여한 비만 환자 체중을 24.2% 줄였다. 마운자로가 20%대 감량 효과를 내기 위해 72주간 투약을 해야 하는 것과 비교해 시간은 3분의 2로 단축되고 효과는 더 향상됐다. 아직 임상 3상 중이라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비만 치료제는 효과가 뛰어나지만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구토, 설사, 변비, 복통 등 위장 장애와 두통, 피로 등이다. 최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진이 GLP-1이 췌장염 위험도를 4.6배 정도 높인다는 연구를 내놨다. 장기간 사용하지 않고 중간에 투약을 중단하면 체중이 다시 돌아가는 ‘요요 현상’도 겪을 수 있다.

주사제 타입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감안한 먹는(경구용) 비만 치료제 연구도 활발하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도 경구형 치료제를 연구 중이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등도 비만 치료제 개발에 한창이다.

비만약이 난리지만, 투자에는 주의해야 한다. 월가는 노보노디스크 주가가 단기에 급등했다는 점에서 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분위기다. 노보노디스크에 대해 투자의견을 제시한 월가 전문가 28명 중 17명이 매수 의견을 냈다. 이들이 제시한 12개월 목표가 평균치는 95.74달러로 최근 시세보다 낮다. 다만 씨티그룹은 코펜하겐 증시에도 상장된 노보노디스크 목표가를 기존 600덴마크크로네에서 745덴마크크로네로 대폭 높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1호 (2023.10.25~2023.10.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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