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서고 쪼개진 장로교단… 신학 노선차·교권 다툼에 무한분열

양민경,이현성 2023. 10.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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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난립·무인가 신학교 백태] ② 장로교단만 300여개
한국교회는 1950년대 장로교에서 신학적 차이로 분열했으며 이후엔 군소교단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사진은 1959년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회 총회 모습.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제공


한국교회는 해방 이전까지 장로교·감리교 등 각 교파별로 ‘통합된 교회’였다. 하지만 일제 과거 청산을 기점으로 분열하기 시작했고 모두 신학교의 분열을 수반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해방 후 이어진 교단의 무한 분열은 수백개 교단과 산하 무인가 신학교 난립이란 결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8년 발표한 ‘한국의 종교 현황’에 따르면 개신교 교단 수는 374개다. 이 가운데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로 시작하는 교단은 총 289개이다. 하지만 실제는 300개가 넘을 것이라는 게 교계의 중론이다. 교단 이름 뒤에 ‘ABCDE’ 등을 붙인 곳도 여럿이다. ‘합동’이란 이름이 포함된 교단도 99개나 됐다.

문체부 종무실 관계자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374개 교단 중 확인 되는 교단은 126개이고 248개는 이름만 파악이 가능하다”며 “홈페이지나 신자 수, 교직자 수는커녕 소재지조차 파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파악이 어려운 교단 대부분 재교육 기관을 운영한다. 단기간 내 목사 안수를 주는데 경쟁률이 낮고 교육 기간도 짧아 부도덕한 사람도 얼마든지 목회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한국교회연합(한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회원 교단은 현재 각각 36개 45개 60개 9개로 총 150개다. 연합기관이 회원 교단의 지원과 협력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만큼 이 수치가 현재 한국 사회에 실재하는 개신교단 규모와 같을 가능성이 크다.

50년대, 신학·교리 차이로 분열

교단 분열은 한국교회의 70~80%를 차지하는 장로교 위주로 이뤄졌다(표).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도 분열을 했으나 일부는 통합됐고 분열된 교단 수도 장로교보다 현저히 적다. 장로교단에 유독 분열이 많은 것은 ‘신학적 순수성 수호’가 주된 이유다. 하지만 배후엔 교권과 이권 다툼이 적잖다. 한교총 대표회장을 지낸 류영모 한소망교회 목사는 “분열 요인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다. 초기엔 신학과 교리 차이의 비중이 높았다면 그 이후엔 신학과 상관없는 요인이 많다”고 말했다.

장로교의 1~3차 분열의 주요 쟁점은 신학이었다. 신사참배를 반대한 목회자들은 조선신학교의 신학 노선이 개방적이라며 1946년 고려신학교를 세웠다. 하지만 고려신학교의 정통성을 두고 갈등이 심화하면서 52년 ‘고신파’가 분립한다. 1차 분열로 예장고신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듬해 일어난 2차 분열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가 출범했다. 조선신학교가 있음에도 48년 장로회신학교를 세운 게 발단이다. 53년 조선신학교 측이 교단 명칭을 기장으로 변경하며 분립했다. 3차 분열은 59년 통합과 합동의 분열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여부가 주원인이었지만 신학교 용지 문제, 노회 총대 선발 등 여러 원인이 얽혀 있었다. 미국 등 해외 4개 선교부도 적극 나섰지만 국면 전환엔 실패했다.


70년대 이후엔 교권 다툼이 원인

4개 교단으로 분열된 장로교는 이합집산을 반복했다. 특히 한국교회가 성장 가도를 달린 60~90년대가 심했다. 대표적 분열 사례로는 80년 합동신학교(현 합동신학대학원대) 설립을 들 수 있다. 이후 예장합신이 탄생했다. 이후부터는 현재의 주류 교단이 자리를 잡았지만 분열은 거듭됐다. 교권 싸움에서 밀려난 장로교 비주류가 세를 규합하면서 계보조차 불분명한 신생 교단과 신학교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는 “한국교회는 교단 분열에 죄의식이 없다. 신학적 순수성만 지키면 (분열을) 정당하다고 봤다”며 “80년대 이후부터는 주로 군소교단들 사이에서 분열을 거듭하며 지금의 상태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맹렬한 분열세는 한국교회 성장이 둔화하면서 주춤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교단과 신학교 분열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이 교수는 “팬데믹 기간 부실 신학교와 교단이 문을 닫으면서 신학교 정비가 이뤄졌다”며 “외부 환경 변화가 교단 분열과 신학교 난립을 막은 셈”이라고 평했다.

양민경 이현성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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