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만에 신대원 졸업 가능? … 실상은 120만원짜리 학위 장사

최기영 2023. 10.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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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난립·무인가 신학교 백태] ① 속성 목사 안수의 진실
국내 최저 비용으로 신학 공부가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있는 한 사이버신학교의 ‘기독교와 역사’ 수업자료 화면. 인터넷 화면 캡처


한국교회를 향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시각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여러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목회자의 신뢰도 추락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지난 2월 발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목회자의 말과 행동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10명 중 2명(20.8%)에 그쳤다.

기독교 전문가들은 한국교회 성장과 맞물려 난립한 무인가 신학교와 목회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목회자 양산을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검증되지 않은 신학 교육 과정으로 인해 교회와 성도, 사회가 시름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국민일보는 종교개혁일(31일)을 앞두고 무인가 신학교의 운영 실태와 교단 난립 현실, 그 영향과 과제를 연속 기획으로 짚어본다.

예비 목회자로의 결단, 이렇게 꺾였다

이인옥(가명·46)씨는 지난해 10월 생애 처음 신학대학원 입학에 도전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난 19일 국민일보와 만난 그는 “나이 마흔이 넘어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고 수년간 고민과 기도 끝에 목회자로서의 길을 결심했는데 남은 건 ‘이런 게 한국교회 민낯인가’라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이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학생 두 딸을 양육하며 신학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수해야 할 커리큘럼 부담이 과중하지 않고 여성 목사 안수까지 받을 수 있는 신학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경기도의 한 신학원에 입학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교회와 신학원이 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곳이었는데 교회 담임목사가 학장을 겸임하고 있었어요. 신대원 2년 과정(4학기)을 1년이면 마칠 수 있는데 수업 과제로 리포트만 잘 제출하면 목사 안수받는 건 문제없다고 하더군요.”(이씨)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무용 수업을 필수로 수강해야 하고, 학기에 최소 1회는 발표회 무대에 서야 했다. 별도로 선발된 학생은 각종 기독교 집회에 동원되기도 했다. 이씨는 “상담을 받으러 간 날도 교회 예배당에서 한 무리의 여성이 드레스를 입고 무용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광화문 집회에서만 다섯 번을 공연했다’며 자랑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는 목사 안수를 포기했다. 그는 “이런 교육 과정이라면 목사가 된다 해도 성도들 앞에 서기 부끄러울 것 같았다”고 했다.

무인가 신학교는 목회자 패스트트랙?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며 일상화된 온라인 비대면 강의가 무인가 사이버신학교의 난립과 신학 교육의 질적 저하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국민일보는 국내 최저 비용으로 신학 공부가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있는 한 사이버신학교에 입학과 교육 과정을 직접 문의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기자는 별도의 신학 학부 교육과정 없이 바로 신대원 입학이 가능했다. 1년에 6학기를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이 짜여진 신대원 과정은 계절학기를 활용하면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목사 안수를 받고 최대한 빨리 목회를 시작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이 학교 학장은 “매년 8월과 2월 학위 수여식이 있는데 본인이 열심히만 하면 내년 2월 신대원을 졸업할 수 있다”고 했다.

수강은 학교 홈페이지에 등록된 수업 자료(문서, 동영상)를 보고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수업 자료 게시판엔 학기별로 10~20개의 자료가 등록돼 있었다. ‘기독교와 역사’ ‘실천신학’ ‘목회상담학’ 등 신학대 커리큘럼에 등장하는 익숙한 교과목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용은 턱없이 부실했다.

대부분 A4용지 5~10장 분량의 발제문이나 설교문을 짜깁기한 내용이었다. 강의나 논문 자료에 필수적으로 기입돼 있어야 할 각주나 인용 문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몇몇 과목은 온라인 리포트, 시험 자료 거래 사이트인 '해피 캠퍼스'에서 1000~2000원에 거래되고 있는 20년 전 자료도 있었다.

온라인 리포트 자료 거래 사이트인 '해피 캠퍼스'에 2000년 9월 등록된 동일 자료가 판매되고 있는 모습. 인터넷 화면 캡처


입학 원서만 제출해도 입학이 완료되는 이 학교엔 등록금 학비 교재비가 모두 없다. 대신 학기당 20만원의 선교 후원금을 내야 한다. 사실상 120만원(6학기)짜리 초단기 신대원 졸업장 발급 과정인 셈이다.

소양 갖춘 목회자 양성 과정 필요

여전히 많은 이들이 무인가 신학교를 찾는 이유는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목사' 타이틀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총회장 김의식 목사) 사무총장을 지낸 변창배 목사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목회자 양성은 지적 소양보다 중요한 영적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과정"이라며 "교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신학생 양성은 필수적이지만 소위 '신학교 장사' 하듯 학교를 운영하는 곳들이 많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적 소양을 갖춘 목회자를 양성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교단에서 학교를 운영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교육부의 인가를 받지 못한 경우도 많다"며 "교육부 인가를 받았는지 아닌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격을 갖춘 목회자를 양성할 토대가 마련돼 있는지"라고 말했다.

라영환 총신대(조직신학) 교수는 "목회자는 기술자가 아니며 지식으로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단기간 속성으로 목회적 소양을 갖추려는 욕망을 갖는 것부터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온·오프라인을 떠나 신학 교육과정은 학생과 교수진의 긴밀한 영적 상호작용을 토대로 이뤄져야만 바른 교육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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