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무당 ‘은월’ 김혜옥 “처음이라 무녀 찾아가 공부…연기의 기본 다시 생각” [‘이연불’ 종영 인터뷰]

홍종선 2023. 10. 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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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차 배우 김혜옥, 롱런의 비결…‘이 연애는 불가항력’으로 연기 변신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서 영적 메신저, 무녀 ‘은월’ 역을 연기한 배우 김혜옥 ⓒ 드라마 홈페이지 내 영상 화면 갈무리

20세기에 데뷔해 21세기에도 연출 감독과 제작자의 부름을 받고 시청자의 인정을 받는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배우 김혜옥이 해내고 있다.

김혜옥은 지난 1980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모든 배우가 43년을 살아남지 못한다. 설사 재능을 인정받았다 해도 세월의 흐름 속에, 나이 듦 속에 사라지고 잊힌다. 김혜옥은 마치 역주행 신화를 쓰는 배우처럼 연기 경력의 햇수가 쌓일수록 지명도를 높이고 있다. 배우 김혜옥에게 있어 전성기는 바로 오늘이다.

처음 뇌리에 강하게 남은 건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2004)에서 영주(박예진 분)의 엄마로 등장했을 때다. 저렇게 서구적 외모에 우아한 배우가 있었나, 놀랐다.

대중이 김혜옥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연기력을 인정하기 시작한 건 코믹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2004~2005)에서 본인 이름과 같은 김혜옥으로 분했을 때다. 코미디연기는 연기 잘한다 하는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영역인데, 너무 천연덕스럽게 잘했다. 눈을 찡긋하며 독특한 말투를 쓰는데, 의뭉스러운 성격인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드라마의 인기는 동명의 영화 개봉(2006)으로 이어졌다. 코미디영화 ‘욱혈포 강도단’(2010)의 공신자 역할도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연장선에 있다. 막내에 섹시미, 엉뚱한 매력을 동시에 발산한다는 측면에선 코미디영화 ‘마파도’(2005)에서 배우 김형자가 표현한 마산댁 캐릭터와 궤를 같이 한다. 김혜옥은 코미디연기를 참 맛깔나게 잘한다. 본인은 웃지 않으면서 상대를 웃기는, 코미디연기의 정석을 구현한다. 출연작을 떠올리다 보니 시트콤 ‘몽땅 내 사랑’에서도 본인 이름과 같은 캐릭터로 큰 웃음을 선사했다.

김혜옥은 숱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누구의 엄마 역을 했다. 비슷한 듯 같지 않게 맛있게 연기했다. 그래도 영화 ‘멋진 하루’(2008)의 한 여사나 드라마 ‘연애의 발견’(2014)의 신윤희 역처럼 독립된 캐릭터로 등장할 대 더 빛난다. 드라마 ‘프로듀사’(2015)에서 백승찬(김수현 분)의 엄마로 나왔지만, 엄연히 이후남이라는 캐릭터 명이 있으니, 더 톡 쏘는 말투와 귀여움이 더 돋보였다.

물론, 김혜옥의 배우로서 위상이 커지면서 누구의 엄마 역이어도 캐릭터 명이 주어지는 오늘이 된 것도 사실이다. 최신작들을 보면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익는 자들’(2022)의 박영신, ‘현재는 아름다워’(2022)의 한경애, ‘진짜가 나타났다!’(2023)의 강봉님, ‘이 연애는 불가항력’(2023)의 은월, 누구의 엄마가 아니다.

오랜 배우 생활에도 연기의 기본과 열정의 근간을 생각하는 배우 김혜옥 ⓒ산타클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44년 차 배우 김혜옥에게 롱런의 비결을 물었다.

“특별히 비결은 없고, 그때그때 노력하는 편입니다. 즐기면서 하는 작업이 최고라 생각하는데 아직 그 경지까지는 아득하기만 합니다.”

담백하면서도 겸손함이 전해지는 답변, 답은 명료했다. 노력이었다. 60편 이상의 드라마와 영화 30편, 쉼 없는 캐스팅에도 어떻게 캐릭터들을 구축하기에 대중의 피로도가 없는지 궁금했다.

“감사하신 말씀이시지만, 제 자신의 연기에 회의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주어지는 비슷한 역할 안에서 변신해 보려 노력하지만 가진 재료의 한계, 절망, 희망을 반복하곤 합니다. 그러함에도 주어진 역할에 대해 ‘진심’을 다하며 끝까지 가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도 연기에 대한 열정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배우라는 생태계에서 살아남아온 능력자가 노력 끝에 직면하는 것이 높은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이고, 그 속에서 절망과 희망을 반복하다니! 열심과 노력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손에 쥐지 못해 낙담하고 포기하는 많은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이다. 진심, 그리고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열정의 바탕삼아 오늘도 노력하는 60대 배우의 모습이 자못 감동적이다.

지난 12일 종영한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서 배우 김혜옥은 50년 무당으로 살아온 은월 역을 맡았다. 보랏빛이 감도는 은발, 보라색 니트 가디건, 외양부터 못 보던 모습이다. 연기 톤도 다르다. 조금의 섹시미, 조금의 앙증미도 배제했다. 그런데 결과는 반전, 묘하게 섹시하고 매력적인 무녀로 완성됐다. 장신유(로운 분)의 할머니로 나오는데, 할머니 느낌은 없고 어딘가 신비하고 영적이다.

“은월은 처음 맡아본 분야의 역할이라 의외였고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그 분야에 계신 분(무녀)도 찾아가보고 인터넷이나 유튜브 다양하게 조사도 하며 은월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했지만 결과는…, 연기란 무엇인가 근원적 생각을 다시 해보게 만든 작품인 것 같습니다. 은월의 분장은 작가님, 감독님과 많은 연구 후 분장팀이 혼신의 실력을 발휘해 주어 너무나 흡족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시청자들께서도 좀 다르게 보셨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아야 한다던가. 많지 않은 말 속에 본인의 뜻과 마음을 담아내는 담백한 말씨가 인상적이다. 끝으로 많은 작품을 통해 만난 배우들 가운데 특별히 응원하는 후배가 있는지 물었다.

“실력이 출중하지만 아직 빛을 못 보는 후배들이 많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후배 연기자들을 응원합니다. 그 중에서도 최근에 인연을 맺은 후배들이 있습니다. ‘진짜가 나타났다!’에서 함께한 백진희 배우와 안재현 배우,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서 함께한 조보아 배우, 로운 배우의 승승장구 기원합니다!”

지난해와 올해를 보면 배우 김혜옥은 1년에 두 편의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를 찾았다. 새해엔 또 어떤 작품들로 안방을 찾을지 궁금하다. 스크린에서 만나는 기회도 허락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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