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사는데, 이건 도저히 적응이 안 됩니다

장소영 2023. 10. 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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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미국의 쓰레기 처리 방식... 정책과 시민의식 모두 발전시켜야

[장소영 기자]

주문한 커피를 찾으러 커피숍에 갔을 때였다. 갑자기 매장 측면의 직원 전용 문이 열리더니 커다랗고 까만 업소용 쓰레기 봉지들이 후두둑 길가에 쏟아졌다. 커피 전문점이라 쓰레기 봉지들이 무겁지는 않은지 한 직원이 여러 개를 순식간에 던져 쌓아 올렸는데, 이런 모습은 뉴욕에서 워낙 흔해 놀랍지도 않았다.

놀란 건 그다음이었다. 근처 작은 덤불 나무 속에서 뭔가가 툭 튀어나오더니, 친구를 부르는 듯 덤불 쪽을 돌아보고 소리를 냈다. 그러자 또 한 마리가 덤불 속에서 뛰쳐나와 쓰레기 봉지를 헤집기 시작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드라이브스루에 늘어선 차량도 무서워하지 않는 동물, 쥐였다. 

커피 맛이 싸악 사라졌지만, 일단 직원에게 알리고 쓰레기를 얼른 컨테이너에 넣는 게 좋겠다고 일러주었다. 직원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알려줘서 고맙다고 할 뿐, 누구 하나 나가서 정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쓰레기를 넣는 큰 컨테이너 자체가 근방에 없었다. 

뉴욕의 쥐는 악명이 높다. 뉴욕의 거리나 지하철에 출몰한 쥐를 찍은 영상도 소셜미디어에 종종 올라온다. 줄리어드 음대에는 쥐 떼를 홀려 허드슨강에 빠뜨릴 '피리 전공' 졸업자도 없냐고 농담을 하곤 했었는데, 지난 4월에 드디어 뉴욕시에 쥐 처리 담당자가 채용되었다. 피리 전공은 아니지만 말이다.
 
▲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있는 뉴욕의 쥐 근처 덤불 숲을 들락거리던 쥐 두마리가 마치 쓰레기 버리는 시간을 알고 있다는 듯 잠시 숨어 있더니, 쓰레기 봉지가 무더기로 버려지자 재빨리 나와 헤집기 시작했다. 유명한 커피 매장이다.
ⓒ 장소영
 
다소 늦은 뉴욕의 쓰레기 정책들

뉴욕 주와 뉴욕시가 쓰레기 문제에 적극적으로 움직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쥐도 문제지만 현실적으로는 쓰레기 매립지 문제가 컸다. 맨해튼 인근 스태튼 아일랜드의 세계 최대 쓰레기 매립지가 포화 상태로 폐쇄되었고(2001년), 중국마저 더 이상의 쓰레기 수입을 거부했다(2018년).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체되어 있던 재활용 정책도 최근에서야 하나씩 시행되기 시작했다. 뉴욕 주는 쇼핑용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하고(2020년) 장바구니를 이용하거나 5센트 정도의 종이 봉지를 현장에서 구입토록 했다. 빈병 수거를 확대하고 보증금(Bottle Bill)을 올리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올해 들어 환경 보호에 관한 법안들이 주의회와 시의회에서 계속 승인되거나 발의 중이다. 

맨해튼과 인접한 브루클린에 공공시설과 주거지에서 나오는 재활용품 처리 시설(선셋 MRF)도 들어섰다(2013년). 늦은 감은 있지만 한다면 뭐든 최고로 하는 뉴욕답게 이 재활용 시설은 북미 최대 처리량은 물론 첨단 설비 시스템 덕에 재활용품 원료의 순도가 높다(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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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사이클 수거 기계와 환불 안내 라벨 최근에는 리사이클룸이 설치된 대형마트들이 부쩍 늘었다. 병이나 캔을 넣으면 현금으로 바꿔준다. 병에 붙은 라벨에는 얼마를 현금화할 수 있는지 안내되어 있다. 이 물병은 코네티컷(CT), 뉴욕(NY), 메인(ME) 주에서 빈병을 5센트로 교환 가능하다.
ⓒ 장소영
 
거주자가 느끼는 쓰레기 처리 상태

정책과 시설은 그렇다 치고, 뉴욕 시민과 뉴욕 주민들은 어떻게 쓰레기를 버리고 있을까. 뉴욕시와 주변 군(county)에는 복잡하고 좁은 거리가 많다. 건물 가까이 커다란 컨테이너를 두고 거기다 쓰레기 봉지를 던져 넣기도 하고, 장소가 협소한 빌딩 숲이나 주택 지역에서는 초등학생 키 크기만 한 통(bin)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뉴욕시의 전통적인 수거 방식은 길거리에 던져놓아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봉지를 수거차가 실어 가는 것이다. 쥐 문제가 심각해지자, 뉴욕시는 최근 쓰레기 봉지 내놓는 시간을 조정했다. 오후 4시면 쓰레기 봉지를 내놓을 수 있었는데 이를 오후 8시 이후로 늦췄다. 1차로 자정에 수거하고, 자정 이후의 쓰레기는 이른 새벽에 2차로 수거해 길에 쓰레기 더미 방치 시간을 최장 14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인 것이다. 쓰레기 더미가 사라지자 미관상 거리도 깨끗해지고 통행도 한결 수월해졌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가정마다 음식물 쓰레기를 갈아서 하수구에 흘러가게 하는 분쇄기(garbage disposal)를 사용한다. 설거지 개수대 아래 설치된 분쇄기로 손쉽게 음식물 찌꺼기를 갈아 버릴 수 있지만, 뉴욕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도 일반 쓰레기와 함께 비닐봉지에 마구잡이로 한데 넣어 지정된 요일에 내놓으면 그만이다. 

빌딩형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각 층마다 혹은 지정된 장소에 붙박이형 쓰레기 구멍(Trash Chute Room)이 있다. 지하 쓰레기 컨테이너로 수직 연결된 통로가 있어서, 벽에 붙은 뚜껑을 열고 쓰레기를 집어넣으면 끝이다.
 
▲ 쓰레기 채집용 컨테이너와 쓰레기 빈(Bin) 따로 분류되거나 용량에 제한받지 않고 봉지에 담아 그대로 버려지는 쓰레기들. 음식물 쓰레기나 일회용품도 섞여서 배출된다.
ⓒ 장소영
 
재활용품을 따로 수거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관리나 제약이 없다 보니 엉성하기 그지없다.

우리 동네의 경우, 신문,  깡통, 1번과 2번이 찍힌 플라스틱 제품, 재생용지로 만든 종이 박스 정도가 수거 대상이다. 우유나 주스 병은 깨끗이 씻어 스티커를 떼고, 뚜껑은 따로 일반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여러 번 안내를 받지만 많은 주민들이 지키지 않는다. 일주일에 하루 수거 차량이 오는데 따로 세심히 검열하지 않고 그저 싣고 가기 바쁘다. 주택단지이다 보니 낙엽이나 잔디 깎은 쓰레기는 따로 지정된 요일에 가져간다.  

그런데, 공지대로 잘 따르는 품목도 있다. 침대 매트리스이다. 수거일을 예약하고 매트리스용 대형 비닐을 씌워 집 앞에 내놓아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아예 가져가지 않는다. 제도와 주민 의식이 함께 해야 제대로 된 분리수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 재활용품 수거 수거차량 뒤를 보니 분류칸이 두 종류 정도이다. 재활용품 처리 시설에서 분류가 이뤄지겠지만 한국에 비하면 허술하다. 통상 통(bin)에는 우유병을 비롯한 제품군을, 상자에는 종이군을 넣지만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재활용을 위한 통은 각지역 행정부에서 무료로 준다. 스티커와 병뚜껑을 떼고 잘 씻을 것, 종이쇼핑백의 고리를 떼라는 공지를 받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 장소영
  
아마 미국에 한두 주라도 머물다 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미국은 선진국이니 뭔가 더 높은 수준으로 잘 하고 있을 줄 착각했다가 충격을 받았었다. 일회용품의 천국이라더니 종이는 물론 플라스틱 일회용품도 거리끼지 않고 무더기로 쓰고 버리는 데 기겁을 했다. 쓰레기 넣는 컨테이너는 한주에 두어 번 가져가야 할 정도로 큰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었는데, 작은 재활용 통(bin)은 한 주가 지나도 채워지는 법이 없었다.

미국의 자신감은 선진 시민의식이 아니라 큰 땅덩어리였던 것일까. 묻어버리면 그뿐이니 말이다.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양심에 걸리다 못해 죄책감이 들곤 했다. 분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단독 주택 지구로 이사를 했지만 같은 구역 내에 우리 집만 유독 재활용 쓰레기가 차고 넘쳤다. 분리 수거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살림용품이나 쿠폰으로 돌려받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나도 점차 무뎌져 대충 하게 되었다. 

'쓰레기 후진국' 오명을 벗으려면 

지난 6월, 뉴욕타임스는 뉴욕시가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법안을 가결했다고 알리면서 한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다양한 반찬과 국, 찌개가 한 상에 올라와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와 재활용에 대한 국가 주도의 정책과 시민들의 노력이 어떤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전면 기사로 다루었다(6월 15일자). 

어린 시절에는 일본 주부들의 사례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자주 들었었는데, 이제는 미국이 일본이 아닌 한국을 벤치마킹하려 한다니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곧, 그저 큰 비닐봉지에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버려온 이웃들이 떠올랐다.

이들에게 쓰레기봉투 종량제를 실시하거나 국가가 주도하는 쓰레기 처리 정책을 강압하면 과연 따를 수 있을까? 마스크 하나 씌우는 데도 저항을 받는데 말이다. 

스태튼 아일랜드에 '노스팍'이라는 친환경 생태공원이 개장했다. 폐쇄되었던 세계 최대 규모 쓰레기 매립지를 재개발해 일부를 먼저 일반에 공개한 첫 번째 친환경 생태공원이다. 이를 시작으로 계속 부지 개발을 해가면 뉴욕시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공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재개발도, 정책도, 주민들의 협조도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쓰레기 후진국의 오명을 하루속히 벗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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