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벌써 -1.2도" 잊혀진 가을?…그래도 겨울 일찍 안 온다

천권필, 정은혜 2023. 10.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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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 대부분 지역 아침 기온이 5도 내외로 내려가며 쌀쌀한 날씨를 보인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이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뉴스1

가을은 ‘잊혀진 계절’이 되는 걸까. 일부 지역의 기온이 0도 아래로 떨어지면서 가을을 그리워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늘고 있다. 직장인 정성원(35)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소매를 입었고 가을옷들을 꺼낸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며 “어젯밤부터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서 급하게 겨울 코트를 꺼내서 입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17일 서울의 아침 기온은 평년보다 2.7도 낮은 7.5도까지 떨어졌다.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5.9도였다. 서울 광화문 앞 도로에는 패딩을 입거나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날 서울 북한산에는 첫 단풍이 관측됐다. 보통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면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강원 강릉(왕산)과 대관령은 기온이 각각 -1.2도, -1.7도까지 떨어졌다.


가을 스치고 바로 겨울?…가을 없는 것 같은 이유


김영희 디자이너
가을이 스치듯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지난달까지 이어졌던 이상고온 추세가 이달 들어 갑자기 꺾인 게 큰 이유다. 초가을이었던 지난달 서울의 평균 기온은 23.7도로 평년(21.6도)보다 2도 이상 높았다. 1907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운 9월로 기록됐다. 그만큼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이 늦게 시작된 셈이다. 기상청의 가을 시작일 기준(일 평균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에 따르면, 올해 서울의 가을은 지난달 30일부터다.

10월부터는 시베리아 고기압에서 떨어져 나온 찬 공기가 주기적으로 한반도에 유입되면서 기온을 크게 낮췄다. 1일부터 16일까지 평균 기온은 16.7도로 평년(16.8도)보다 오히려 낮았다. 이렇게 9월과 10월의 기온 변화가 이례적으로 큰 게 가을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9월까지는 남쪽으로부터 따뜻한 공기가 유입돼 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기온이 높게 나타났다”며 “이달부터는 시베리아 고기압에서 마치 수제비가 떨어져 나오듯이 찬 성질을 가진 공기가 한반도로 내려오고 있고, 그 차이로 인해 기온차가 크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핫팩 등 방한 용품을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

패션 플랫폼 W컨셉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3일까지 패딩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가량 늘었다. 세탁 기업 크린토피아는 옷장에서 겨울옷을 꺼내서 입을 수 있도록 23일부터 겨울옷 세탁비를 15% 세일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리에 우박까지…가을 실종은 농가에 치명타


지난 14일 오후 5시쯤 경상북도 예천군에 쏟아진 우박의 모습. 사진 최효열 과수전문상담사
급변하는 가을은 농가에는 치명적이다. 찬 공기의 영향으로 갑자기 서리가 내려 농작물 관리에 비상이 걸렸고, 14일엔 남부 지역 곳곳에 강한 비와 함께 손톱만 한 크기의 우박이 쏟아졌다. 우박은 대기 상층의 찬 공기와 하층의 따뜻한 공기가 위아래로 대류 현상을 일으키면서 발생한다.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최효열(64) 과수전문상담사는 “30년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10월에 이렇게 우박이 쏟아진 건 처음 본다”며 “수확을 2주 앞둔 농가로선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박으로 상한 사과는 정상가의 35% 수준에 팔 수밖에 없게 된다”며 한숨지었다.
지난 14일 오후 5시쯤 경상북도 예천군에 쏟아진 우박으로 이 지역 최효열(64) 과수전문상담사가 재배한 사과(시라노골드 품종)가 멍든 모습. 사진 최효열 과수전문상담사


2010년대 이후 가을 10일 이상 짧아져


김영희 디자이너
2000년대 이후부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가을이 상대적으로 늦게 오고 짧아지는 추세를 보인다는 게 기상학자들의 분석이다. 기상청이 10년 단위로 계절 길이를 분석한 결과, 서울의 가을은 2000년대에는 66일이었고 2010년대에는 55일로 11일 줄었다. 가을이 두 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여름은 121일에서 128일로 일주일 늘었다.

주말 서울 4도…“올겨울은 일찍 안 온다” 왜?


가을이 짧아지는 추세이지만, 기상학자들은 올겨울이 예년보다 일찍 찾아올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하고 있다. 일평균 기온이 5도 미만으로 내려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으면 겨울이 시작됐다고 본다. 강력한 엘니뇨 현상이 지속되면서 여름철부터 이어졌던 고온 추세가 올겨울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쪽에서 강한 한기가 내려오면서 일시적으로 매서운 추위가 찾아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주말인 21~22일에도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서울의 아침 기온이 4도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가을이지만, 가을이 실종된 듯한 날씨가 이어질 거란 얘기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북극 해빙이 많이 녹은 상황에서 제트 기류가 약해지면서 북쪽의 한기가 내려와 한 번씩 한파가 나타날 수 있다. 이번 주말에도 한기가 강하게 내려오고 바람도 강하게 불기 때문에 패딩을 꺼내 입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권필·정은혜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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