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의 시작

이마루 2023. 10.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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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니 데스크 코리아는 K팝이 주도하는 지금의 음악 씬에 어떤 변화를 선사할 수 있을까

미국의 KBS FM, 미국을 대표하는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 뮤직은 ‘타이니 데스크’의 모태다. NPR 뮤직 홈페이지 속 ‘타이니 데스크 콘서츠(Tiny Desk Concerts)’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밥 보일런의 책상에서 실황으로 녹화되는 친밀한 공연 영상(Intimate Video Performances, Recorded Live At the Desk of Bob Boilen)’.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000팀이 넘는 아티스트가 참여했고, 27억 뷰가 훌쩍 넘는 누적 조회 수를 자랑하는 타이니 데스크의 여정은 2008년에 시작됐다. 그리고 이 출발에 얽힌 에피소드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귀여운 구석이 있다. 역시나 2008년, 텍사스의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에 참석한 NPR 뮤직의 두 사람, 밥 보일런과 스티브 톰슨은 공연 장소와 관객의 소음 때문에 잔뜩 기대했던 로라 깁슨의 무대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어 침울한 상태였다. “이럴 거면 로라를 그냥 밥의 사무실로 부르는 게 낫겠어요”라는 스티븐의 푸념 같은 농담을 밥은 흘려듣지 않았다. “스티븐의 아이디어는 뮤직비디오 쇼를 제작하고 오디오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내 상상력에 불을 붙였어요. 몇 달 뒤 비디오카메라 몇 대와 마이크 한 대를 챙겼고, 직원 몇 명이 나를 도왔죠. 그리고 로라 깁슨은 내 책상 뒤 의자에 앉아 조용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밥 보일런은 첫 녹화를 이렇게 회상한다. 어쩌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라이브를 집중해서 감상하고 싶었던 ‘찐’ 음악 마니아들의 마음이 위대한 출발이 된 셈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 15년간 타이니 데스크가 세운 기록은 결코 ‘타이니’하지 않다. 테일러 스위프트, 아델, 알리시아 키스, 스팅, 콜드 플레이, 티 페인, 어셔, 포스트 말론, 에드 시런, 저스틴 비버, 빌리 아이리시, 해리 스타일스,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 시대 불문 팝스타가 기꺼이 출연했으며 그중 두아 리파와 맥 밀러, 앤더슨 팩의 공연은 1억 뷰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한층 다채로운 뮤지션들을 알리기 위해 자체적으로 경연을 개최하고 장르를 존중하는 특별한 기획을 선보이는 등 공영방송 역할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그런 ‘타이니 데스크’의 대중적 인지도가 한국에서 증폭한 기점은 아마도 BTS가 출연했던 2020년일 것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에 공연 영상은 밥 보일런의 책상이 아닌, 서울에서 녹화됐지만 늘 화려한 무대 효과, 퍼포먼스와 함께했던 일곱 명의 멤버가 의자에 앉아 라이브 밴드와 함께 ‘Dynamite’를 부르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이 영상은 역대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의 영상 중 다섯 번째로 높은 5720만 조회 수를 자랑한다).

지난 8월,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가 대대적인 상륙 소식을 알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궁금증은 이거였다. ‘왜 한국이지?’. 물론 타이니 데스크는 한국 음악 신에 대한 ‘샤라웃’을 꾸준히 보여왔다. 지난해에는 BTS의 RM이 출연했고, J-PARK(박재범), pH-1부터 악단광칠(ADG7), 프로젝트 팀이었던 '씽씽'도 출연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NPR 뮤직은 지금까지 타이니 데스크의 어떤 라이선스도 허가한 적 없다. ‘K팝’이라는 초월적인 키워드가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걸까? 1차 라인업이 공개되고, NPR 뮤직 유튜브 채널에 ‘Tiny Desk Korea’ 카테고리가 생겨났을 때 호기심은 한층 커졌다.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며, 한국으로 온 타이니 데스크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말이다.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정도, NPR 측과 라이선스 확보에 대한 실질적인 시도를 했던 건 1년 반 전인 2022년 초반이에요. 워싱턴의 NPR 방송국에 미팅 갔던 날짜가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나요. 그때도 이 프로젝트가 성사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어요. 타이니 데스크의 IP만 빌려 새로운 쇼를 만들거나 K팝 아이돌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지향점을 최대한 존중하고 따르겠다고 어필했죠. 밥 보일런은 거의 2시간에 걸쳐 타이니 데스크의 철학에 관해 말했고요. 타이니 데스크의 본질은 이겁니다. 음악 외의 다른 것은 덜어내는 것.” LG 유플러스 사옥에서 만난 STUDIO X +U 이길효 IP 사업 2팀 팀장은 회상한다. 수 년간 공연 관련 업무를 꾸준히 해온 그는 오랜 음악 애호가다. “몇 년 전 이 팀을 꾸리기 위한 사내 공모가 있었어요. 그때 모집 문구가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거예요. 음악과 공연을 사랑하는 힙스터를 찾습니다(웃음).”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팀을 이끄는 이상진 상무는 하이브(HYBE) 트랜스미디어 IP 사업 팀에 근무했고, 음악 방송 PD, 음원 유통사의 콘텐츠 기획자 등 외부 인사와 사내 공모로 꾸려진 여섯 명이 지금의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를 구성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음악과 공연을 한결 같이 사랑해 왔다는 것. 프로듀서와 저널리스트 두 명의 음악 마니아로부터 시작한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의 태생과도 일치하는 셈이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의 주체가 LG 유플러스 산하 STUDIO X+U라는 콘텐츠 전문 스튜디오라는 사실은 든든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른 척할 수 없으므로.

바야흐로 유튜브 시대. ‘온스테이지’ ‘잇츠 라이브’ ‘딩고 라이브’는 물론이고 아티스트가 호스트가 돼 상대 아티스트와 특별한 교감을 나누는 ‘아이유의 팔레트’ ‘리무진 서비스’ 등. 라이브 클립은 한국에도 이미 많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의 영상은 지금 음악시장에서 어떤 차별성과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K팝은 우리 음악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하지만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는 장르의 한계가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에요. 저희도 클래식, 재즈, 국악, 트로트, 인디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을 고려하거나 이미 접촉하고 있어요. 음악과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디지털 플랫폼에 최적화된 지금, 음악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튜브인데 NPR과의 파트너십은 훌륭한 관문이 돼 줄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같이 글로벌한 시점에는 각자 취향을 찾아가면 될 것 같지만, 사실 어떤 가이드가 일정 부분 필요하거든요” 이상진 상무의 말이다. 이길효 팀장도 거든다. “공연 관련 업무를 하며 느꼈던 건 뮤지션들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제한적이라는 사실이었어요. K팝 그룹이나 인기 연예인의 프로모션이나 활동은 나날이 정교화되고 체계화돼 가는 한편 이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팀들도 분명 있거든요. 팬데믹이 어느 정도 종식된 이후에는 페스티벌도 늘어났고, 공연 성격도 세분화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큰 호응을 얻어내는 헤드라이너 급 아티스트들조차 출연할 수 있는 방송이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화요일 〈더 쇼〉로 시작해 일요일에 방영되는 〈인기가요〉까지 한 주 내내 장식하는 음악 방송, 각종 음악을 접목한 예능 프로그램부터 연말연시 시상식까지. 출연자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면 이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계에 서 있는 뮤지션들의 얼굴이 무궁무진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첫 회는 김창완 밴드가 끊었다. 이들이 고른 첫 번째 곡은 2012년에 발표했던 ‘아리랑’. 출연 팀 하나 하나가 모두 소중하겠지만 시작은 항상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길효 팀장도 가장 공들인 부분 중 하나로 김창완 밴드 섭외를 꼽는다. 음악을 진심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있다면 어디든지 나오고 싶다는 밴드의 의지가 명확했기에 성사될 수 있었다. 뮤지션이 3~5곡 정도를 선보이는 15~30분 남짓한 ‘미드 폼’ 형식으로 진행되는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의 세트 리스트를 결정하는 것은 아티스트의 몫이지만, 자신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원칙은 있다. 원테이크로 진행되는 녹화는 목소리를 모니터할 수 있는 인이어도, 추가적인 사운드 효과나 믹싱 등 후반작업이 허락되지 않는다. 아티스트가 부담스러워 할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그 어느 때보다 음악에 몰입한 뮤지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타이니 데스크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니까.

“아티스트들도 도전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있지만 실제로 촬영이 시작되면 다들 즐거워해요. 대규모 관객을 경험한 아티스트조차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될 것 같다고 할 정도죠.” 박으뜸 선임의 말이다. 김창완 밴드 다음에 바통을 이어받은 선우정아는 지난해 발표한 ‘블랙 커피(Black Coffee)’를 첫 곡으로 선택해 보컬리스트로서 한껏 기량을 드러냈다. 그 뒤를 이은 세 번째 주인공이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비롯한 공연 현장에서 인지도를 쌓아온 윤석철 트리오라는 것은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가 항해하려는 방향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저희 팀에 윤석철 트리오의 ‘찐팬’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타이니 데스크스럽다고 생각한 영상이기도 해요.” 박으뜸 선임은 덧붙인다.

1억, 수천만 같은 어마어마한 수치만 언급했지만 워낙 넓은 장르를 포용하는 만큼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의 조회 수는 진폭이 크다. 평균 50~70만 뷰는 너끈하지만 1~2만 뷰를 기록한 영상도 많은 것. 한편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 채널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2만 명을 갓 넘겼다.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예고하며 네 번째 주자로 출격한 뷔(V)의 영상이 조회 수를 크게 견인하며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의 상륙 소식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란 예측은 가능하지만 말이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것(Tiny but not so tiny)’. 타이니 데스크의 슬로건을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김창완 밴드의 인터뷰 영상에 저희가 지향하는 게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소규모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우리가 아름다움을 담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죠.” 이길효 팀장은 말한다. 이상진 상무는 잠재력을 본다. “크나큰 성공을 거두겠다,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이 프로젝트에 뛰어든 첫 번째 이유는 아니에요. 이상적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뮤지션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직접적인 통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을 때, 이곳이 그렇게 작지만은 않겠죠.”

첫 출발에서 1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밥 보일런의 사무실은 그동안 그의 책상을 찾았던 뮤지션들이 두고 간 갖가지 소품과 사인으로 빼곡하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의 공연은 사내 서재에서 진행된다. 사진 촬영을 위해 찾은 이곳 책상에는 다섯 번째 출연자인 권진아가 두고 간 악보가 올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공간 또한 곧 채워질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애정을 갖고 기꺼이, 진심으로 노래할 이들의 얼굴을 우리는 이미 잔뜩 알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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