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보세'의 재발견, 백화점이 모셔간다…1000억 매출도 눈앞 [비크닉]

유지연 2023. 10. 1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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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패션 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K-브랜드’의 위상입니다. 대형·수입 브랜드에만 집중되던 관심이 ‘K-컨템포러리(contemporary·동시대의)’로 분류되는 신생 브랜드로 넓게 퍼지고 있거든요.

지난달 k-패션 브랜드를 중심으로 '뉴 스트리트' 특화관을 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사진 신세계백화점

특히 이런 흥행이 과거와 달리 ‘산업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도메스틱(국내) 브랜드는 연 매출 1000억원을 넘기기 어렵다’는 업계의 불문율을 깨고, 패션 브랜드 ‘마뗑킴’이 올해 매출 목표인 980억원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대기업 브랜드도 아닌, 온라인에서 시작한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로서는 이례적 성과죠.

‘K-패션의 전성기’라는 말까지 조심스레 나오는 요즘. 오늘 비크닉은 K-패션의 현재를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해외 시장에서의 주목은 물론, 국내 주요 패션 소비자들인 MZ세대의 소비 트렌드까지도 연결되는 이 ‘이례적 현상’의 배경도요.


캐리어 끌고 와 줄 선다, 외국인이 사랑한 ‘K’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골목의 ‘이미스(EMIS)’ 쇼룸 앞에는 늘 캐리어 끈 외국인들이 출몰합니다. 이들은 30~40분 대기 끝에 쇼룸에 입성, 이곳 ‘인기템’인 볼캡(모자) 등을 담아 가죠.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마뗑킴 매장은 지난 7월 매출 12억원으로 영패션 브랜드 백화점 단일 매장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브랜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중 6억~7억원이 외국인 매출이라고 합니다.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2층 마뗑킴 매장 전경. 사진 현대백화점

외국인뿐만 아니라 국내 2030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K-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기업 혹은 글로벌 브랜드가 아닌, 소규모 국내 브랜드를 일명 ‘보세’라는 말로 낮추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요. 최근에는 잘 만든 국내 브랜드를 찾아다니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어요.

‘포터리’는 최근 남성복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브랜드입니다. 지난해 140억원에 이어 올해 25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죠. 포터리합정 매장은 이삼십대 남성들 중 이른바 ‘패션 잘 알(패션을 잘 아는)’들의 참새 방앗간으로 통합니다. 오피스룩으로도, 일상복으로도 제격인 단정한 분위기의 셔츠로 유명하죠.

현대사회에 적합한 유니폼을 지향하는 포터리. 사진 포터리 공식 인스타그램

온라인 시작, 오프라인 확장


마뗑킴은 2015년, 이미스와 포터리는 2017년 론칭한 신규 브랜드입니다. 모두 블로그마켓·인스타그램 채널·무신사 등 온라인 플랫폼을 타고 성장, 점차 오프라인 쇼룸·백화점 입점 등으로 확장했다는 공통점이 있죠.

온라인 패션 브랜드의 경우 연 매출 100억원은 브랜드의 성패를 가르는 ‘벽’으로 통합니다. 100억원 매출을 올리면 오프라인으로 나가도 된다는 신호라고 하죠.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벽을 통과하는 한국 브랜드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여성복 ‘시에’가 지난해 272억원, 가방 브랜드 ‘드파운드’가 133억원의 매출을 올렸죠.

마르디 메크르디는 해외 사업을 본격 확장, 3년 내 기업 공개(IPO)를 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사진 마르 메크르디

투자 업계에서도 ‘K-패션’의 가능성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2018년 시작된 패션 브랜드 ‘마르디 메크르디’의 모회사 피스피스 스튜디오는 지난달 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전면에 커다란 ‘초록색 꽃’이 그려진 이 브랜드의 티셔츠는 요즘 길거리에서 꼭 한번은 마주치는 공전의 ‘히트템’입니다. 피스피스 스튜디오는 지난해 회계기준 매출 400억원을 기록, 올해는 800억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명품 찾던 백화점도 k-브랜드 모시기


지난해까지 ‘팝업’ 형태로 K-브랜드를 실험해왔던 백화점도 본격적으로 K-브랜드 상설 매장을 내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2월 부산 센텀시티점에 영패션 전문관 ‘하이퍼그라운드’를 내고 ‘이미스’ ‘포터리’를, 지난달 강남점 8층에 스트리트 패션 전문관 ‘뉴 스트리트’를 열고 ‘인스턴트 펑크’ ‘마르디 메크르디’ 등 K-브랜드를 대거 입점시켰습니다. 롯데백화점은 잠실 월드몰에 ‘아더에러’ ‘마르디 메크르디’를, 현대백화점은 판교점에 ‘시에’ ‘마뗑킴’ 등을 유치했습니다.

지난 6월 서울 잠실 롯데 월드타워몰에 입점한 '아더에러' 플러그 매장. 오픈 당시 전날 오후부터 300여명의 고객들이 밤새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사진 롯데백화점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K-컨템포러리 위주의 백화점 영패션 부문 매출은 올해 상반기 기준 백화점 3사 평균 약 20%의 성장률을 보였다고 합니다. 한풀 꺾인 명품 매출이 같은 기간 10% 이하 성장률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K-패션, 지금 되는 이유


그동안 국내 패션 시장은 패션 대기업에서 만든 브랜드와 일부 하이패션 디자이너 브랜드 위주로 돌아갔습니다. 대부분 ‘탑다운(TOP DOWN)’ 방식으로 기존 거대 유통과 미디어가 흐름을 만들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흘러갔죠.

2010년대 중후반 ‘무신사’ ‘29CM’ ‘W컨셉’ 등 대형 패션 플랫폼들이 성장하면서 이런 구조가 흔들립니다.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은 수백 개의 브랜드도 수용할 수 있는 광활함에 있습니다. 백화점 영패션관 한 층에 입점하는 브랜드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수십 개 이상을 넘지 않는다는 것에 비하면 압도적 노출 수죠.

무신사는 지난달 올가을 여성 패션 트렌드를 조명하는 '스포트라이트'를 공개하고, '그로브' '마르디 메크르디' '락피쉬 웨더웨어' 등의 브랜드를 제안했다. 사진 무신사


과거에는 옷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백화점 등 거대 유통망에 진입하지 못하면 소비자들의 눈도장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지금은 하다못해 블로그로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브랜드를 시작해도 되는 시대죠. 1000억원 매출을 목전에 둔 ‘마뗑킴’이 그랬듯이요.

오프라인 매장이 없어도 팬들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은 좋은 브랜드의 싹을 키우는 토양이 됐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장한 중소규모 패션 브랜드가 많아지고, 경쟁도 심화하면서 전체적으로 디자인과 품질, 감도의 향상이 이뤄졌고요.


‘신(新) 명품’ 쫓던 MZ, 국내 브랜드에 눈 돌려


‘수입VS국내’로 양분화했던 소비자들의 브랜드 인식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수입 브랜드는 훌륭하고, 국내 브랜드는 그에 못 미친다는 ‘패션 사대주의’도 과거의 얘기가 됐죠.

온라인을 통해 모든 정보가 공개되면서 국내에도 주류 패션 시장의 흐름을 트렌디하게 소화하는 패션 창작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감도 높은 제품들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지난 1월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아더에러와 컨버스가 협업한 신발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다. 사진 뉴스1


이는 남들이 다 알아보는 브랜드가 아닌, 나만 아는 브랜드를 선호하면서 나타난 현상인 ‘신(新) 명품’ 트렌드와 연결됩니다. 합리적 가격에 좋은 품질, 희소한 감각을 지닌 신명품이 구명품 대비 인기를 얻었듯이, K-브랜드도 적당한 가격과 트렌디한 감각, 합리적 품질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한정판 제품으로 마니아들을 끌어모으는 ‘떠그클럽’ ‘언더마이카’ 등 인디 K-스트리트 브랜드도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개성적 스타일을 추구하며 온라인에서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는 ‘찐’ 패션 소비자들을 공략, K-패션의 저변을 넓히고 있죠.

지난 1월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서 열린 '떠그클럽' 팝업 스토어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사진 갤러리아 백화점

한국 왔으니 기념품?...‘규모’ 키워야


물론 아직은 축포를 터트릴 때는 아닙니다. K-패션 브랜드 인큐베이팅 전문가인 홍정우 하고하우스 대표는 “K-팝 후광 효과로 외국인들이 찾지만 주로 한국에서만 소비가 이뤄지며, 아직은 ‘기념품’처럼 소비되는 단계”라며 “해외에 나가 사업을 할 정도로 체계를 갖춘 큰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최근 일본 도쿄에서 K-브랜드 팝업 스토어를 여는 등 한국 패션 알리기에 나선 무신사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합니다. 무신사 관계자는 “해외 시장은 한 두 시즌 앞서 제품을 제작해 현지 바이어들과 소통하는 등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국내 중소 브랜드가 이런 인프라를 갖추기는 쉽지 않다”고요. 무신사가 현지 마케팅 인력을 제공하고, 팝업 등 인프라 제공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7월 무신사 도쿄 팝업 현장. '렉토' '떠그클럽' '스탠드 오일' 등의 K브랜드를 소개했다. 사진 무신사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K-패션 브랜드가 ‘트렌드를 읽는 상업적 능력’만큼은 최고라고 평가합니다. 특히 SNS를 활용해 매력적인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세계의 젊은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요. 이는 ‘K-팝’의 성공 공식과 닮은 부분이죠. K패션의 현재는 아직은 한계도 가능성도 명확한 단계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모쪼록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해봅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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