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타고 흐르는 8개 언어… 고국 그리울 땐 라디오 켜세요

김남중 2023. 10. 1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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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다문화가족 음악방송
몽골 출신 강톨, 필리핀 출신 제니킴, 중국 출신 강리즈(왼쪽부터)가 지난달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을 제작하는 서울 서대문구 키스 스튜디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고국의 음악을 들려주고 고국 소식과 한국 생활 정보를 알려주는 라디오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사이에 유명한 라디오 방송이 있다.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이 그것이다. 원어민이 디제이로 나서 고국의 음악을 틀어주고 고국 소식과 한국 생활 정보 등을 제공하는 국내 유일의 방송이다.

웅진재단의 후원으로 디지털 라디오 ‘키스’가 제작해 인터넷과 스마트폰, 스카이라이프, 케이블TV, IPTV, 스마트TV 등을 통해 방송된다. 필리핀어, 베트남어, 태국어, 몽골어,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 러시아어 8개 언어로 제작된 방송이 하루 네 번씩 번갈아 가며 24시간 방송된다.

지난 2008년 시작된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이 지난 달 15년이 됐다. 방송을 시작할 때 국내 외국인 인구는 100만명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220만명이 넘었다. 국내 총인구의 4.3%로 충청남도 인구(219만명)보다 많다.

지난 달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키스 스튜디오에서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외국인 디제이들을 만났다. 녹음을 앞두고 인터뷰에 응한 몽골어 방송 진행자 강톨은 “방송을 진행한 지는 1년 반 정도 됐다”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스튜디오에 와서 90분짜리 3회분 방송을 녹음한다”고 말했다.


몽골 출신인 그는 동국대에서 영화연극학과를 다녔고 문화컨텐츠학 석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서울에 살고 있다. 강톨은 “몽골 음악을 틀어주고, 한국 생활 정보나 한국어 교육을 제공한다”면서 “방송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선곡도 하고 대본도 직접 쓴다”고 얘기했다.

녹음을 막 끝내고 나온 나온 중국어 방송 진행자 강리즈는 7년째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온 지는 10년이 넘었고 유튜버, 모델, 한중 행사 진행자, 웹드라마 배우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강리즈는 “중국에서 지금 유행하는 핫한 음악들을 많이 소개한다”면서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옛날 노래만 안다. 최신 노래는 잘 모른다. 그래서 중국의 현재 음악을 알려주려고 한다. 물론 한국 거주자들 중에 나이 든 분들도 많기 때문에 옛날 중국 노래도 섞는다”고 얘기했다.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의 터줏대감인 제니 킴도 인터뷰에 동석했다. 10년 넘게 필리핀어 방송 진행자를 맡아온 그는 방송 15주년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제니 킴은 “방송하는 게 재미있고 한국에 온 필리핀 사람들한테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낀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방송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니 킴의 방송에는 주한필리핀대사관이 한 달에 한 번씩 출연한다. 필리핀대사관이 국내 거주 필리핀인들과 소통하는 채널로 이용하는 것이다. 제니 킴은 “한국에 있는 필리핀 사람들이 이 방송을 많이 알고 있다”면서 “여기서 (도움 요청할) 전화번호 배웠어요, 일자리 들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진행자들은 교통비 정도만 받으며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은채원 웅진재단 사무국장은 “강리즈는 다른 행사를 할 때 보면 몸값이 꽤 비싸다. 제니 킴도 통역가로, 상담가로 활동하며 필리핀 이주민 커뮤니티의 리더 격인 사람이다”라며 “다들 동포들에 대한 봉사 차원에서 방송을 진행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엔 외국에 살아도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서 고국 문화나 소식을 즐길 수 있다. 라디오 방송이 꼭 필요할까. 진행자들은 라디오만의 특별한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 강리즈는 “라디오는 누구랑 함께 있는 느낌을 준다. 친구랑 있는 느낌. 한국에서 같은 중국인이 방송을 진행하니까 우리가 외국이지만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 친구가 한국 생활에 대해서 알려주는 느낌을 준다”면서 “외로워서 이 방송을 듣는다, 리즈씨랑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는데 방송을 들으니 외로움이 달래진다, 그런 댓글이 많다”고 전했다.

제니 킴은 방송을 할 때마다 “혼자 아니에요”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청취자들은 결혼이민자나 외국인근로자가 많다”면서 “외국에서는 혼자라는 느낌을 많이 갖는데, 그런 느낌을 갖지 말라고, 우리는 당신과 함께 있다고 늘 얘기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라디오는 이주자들에게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강톨은 “라디오가 몽골 사람들에게는 엄청 의미가 있는 매체”라고 했다. “몽골에서는 누구나 라디오를 듣는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를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몽골어 라디오방송은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 사람들에게 자기 나라를 기억하게 하고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제니 킴도 “필리핀에서는 지금도 라디오가 가장 중요한 매체다. 필리핀 사람이라면 다 라디오를 듣는다. 한국에 온 필리핀 사람들도 라디오방송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서 “라디오는 ‘a taste of home’이다. 고향의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이주자들은 대개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힘들어 한다. 진행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함께 공감해주고 유용한 조언을 제공한다. 제니 킴은 “다문화가정에서는 말이 안 통해서 감정이 상하고, 답답해서 때리는 경우가 많다”고 얘기했다. “시부모님과 같이 살거나 나이 차이가 너무 큰 남편과 사는 경우에 갈등이 특히 심하다. 일단 말이 안 통하고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갈등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감정이 상하고 답답하니까 주먹이 나간다.”

2002년 결혼이민자로 한국에 온 제니 킴은 10년 동안 시댁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들은 지금 군대에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말이 통하면 많은 게 해결된다”고,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청취자들에게 권고한다.

강톨은 이주자들의 자녀 문제에 특히 마음이 쓰인다고 했다. 자녀들을 한국 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주자 자녀들이 한국어를 잘 모르니까 학교에서 문제를 많이 겪는 것 같다. 언어가 어눌하니까 무시를 당하는 것이다. 그게 아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충격을 준다. 그래서 요즘에는 정부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심리 상담도 제공하고 있다.”

강리즈는 “중국 사람은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고 비슷한 문화가 있지만 다른 부분도 많다”면서 “서양인들은 완전히 다르게 생겨서 한국 문화를 모르고 한국어가 어색해도 이해를 받는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차이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인처럼 돼야 한다는 압박을 더 강하게 받는다”고 고충을 전했다.

웅진재단의 후원과 진행자들의 열정으로 유지돼온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은 역할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제니 킴은 “한국에서 필리핀어 방송은 이거 하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법률상담 코너도 선보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계기가 된 건 지난 4월에 있었던 사기 사건이었다. 제니 킴은 “필리핀 외국인 노동자 120명이 사기를 당한 일이 있었다. 그때 필리핀대사관에서 필리핀 이주민들이 다 들을 수 있게 사기 사건에 대해 방송해 달라고 요청했었다”면서 “한국 거주자들이 많아지면서 분쟁이나 사기도 많이 일어나고 있어 법률상담 코너를 새로 마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재단 출범 직후 다문화가족 음악방송을 시작한 웅진재단은 앞으로도 계속 언어권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방송 내용도 이민, 양육, 교육 등으로 넓혀나갈 예정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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