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전종서와 뭉친 '발레리나' 이충현 감독 "말 안해도 통했다"

나원정 2023. 10. 1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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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출시 넷플릭스 액션 '발레리나'
'콜' 이충현 감독, 연인 전종서 재회
"여자들이 판 엎는 이야기 끌리죠"
배우 전종서(사진) 주연의 액션 영화 '발레리나'가 6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출시 후 사흘만에 62개국 톱 10에 올랐다. 사진 넷플릭스

“남성들의 설교를 다 들어주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옥주'란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성범죄자들을 처절하게 응징하는 액션 영화 ‘발레리나’로 넷플릭스 전 세계 영화 순위 2위에 오른 이충현(33) 감독의 말이다. 장편 데뷔작 ‘콜’(2021)로 연인 사이가 된 배우 전종서(29)와 두 번째 장편으로 뭉쳤다. 5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 6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출시해 사흘 만에 62개국 톱 10에 올랐다. 버닝썬 게이트‧N번방 등 실제 사건이 연상되는 자극적인 소재, 총격 액션‧맨몸 격투로 남성 폭력배들을 쓰러트리는 전종서의 살상 무술이 주목받는다.
불법 성 착취 영상물에 희생당한 발레리나 친구 민희(박유림)와 그를 위해 복수에 나선 경호원 출신 주인공 옥주(전종서) 등 인물들의 행동 동기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점이 지적되지만, 액션 볼거리에 충실한 연출을 선호하는 장르 팬도 적지 않다. 네온 빛에 물든 독특한 화면 질감, 이민자들이 드나드는 슈퍼마켓, 화염방사기를 쏘는 노인(김영옥) 등 이국적 풍경도 눈에 띈다. 해외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선 ‘한국의 ‘킬 빌’’ ‘여자판 ‘존 윅’’ 등 할리우드 영화에 견준 평가도 보인다.


"왕처럼 군림하는 男, 생각보다 별것 아냐"


넷플릭스 액션 영화 '발레리나'를 만든 이충현 감독을 1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사진 넷플릭스
1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이충현 감독은 “국내 시청자를 의식해서 만들었는데 국내는 호불호가 갈리고, 해외에선 재밌게 보신 게 신기하다”면서 “범죄 상황을 때려 부수는 쾌감에 포인트를 줬다. 또 유튜브‧숏폼이 익숙한 요즘 영화가 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발레리나'의 상영시간은 2시간이 채 안 되는 93분. 극장 개봉을 준비했던 ‘콜’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넷플릭스 직행한 이른바 ‘코로나 데뷔 학번’다운 행보다.
포스트 봉준호‧박찬욱을 찾는 요즘 영화계에서 그는 최근 동명 시리즈로 확장돼 히트한 단편 ‘몸 값’(2015)부터 주목받았다. 여성 주인공의 반전 서사가 그의 특기. 단편 ‘몸 값’은 모텔방에서 여고생(이주영)과 흥정을 벌이던 아저씨(박형수)의 최후를 그렸다. ‘발레리나’에는 여성에게 몰래 약을 먹여 동영상을 찍는 SM 취향 성범죄자 최프로(김지훈)가 나온다.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최프로는 사실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지질한 신세다. 이 감독은 “여성들을 가스라이팅‧그루밍하고 왕처럼 굴면서 부리는, 이런 인물들이 생각보다 별것도 아닌 볼품없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여동생만 둘이거든요….” 다음은 일문일답.

"여성이 판 엎는 얘기 끌려, 전종서 대체 불가"


영화 '발레리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지만, 이충현 감독이 촬영, 후반 과정에서 필름 질감의 느낌을 살렸다. 옥주의 친구 인 발레리나 민희(왼쪽 세번째) 역은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수어 연기로 얼굴으을 알린 신인 배우 박유림이 맡았다. 사진 넷플릭스

Q : -넷플릭스와 두 작품째다.
“‘콜’ 이후 차기작을 고민하던 중 여러 (성범죄) 사건이 있었다. 영화에서 통쾌함을 담고 싶었고, 표현 수위, 담는 내용에 대해 자유롭길 원해 바로 넷플릭스를 떠올렸다.”

Q : -‘몸 값’부터 강한 여성상을 그려온 배경은.
“여동생이 둘이다. 예술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단편영화를 만들면 항상 여성이 판을 뒤집어엎는 이야기가 됐다.”

Q : -전종서를 거듭 캐스팅했는데.
“제가 아는 전종서는 자기가 꽂히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뒤를 계산하지 않고, 타 죽더라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다. ‘발레리나’는 시나리오 쓸 때부터 영감을 받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좋은 부분이 많다.”

영화 '발레리나' 촬영 현장 비하인드. 발레, 화염 방사기 등 다양한 움직임과 소품을 동원한 장면이 독특하다. 이충현 감독은 화염방사기에 대해 ″클라이맥스에서 악을 어떻게 처단할것인가 고민했을 때 주인공 옥주한테 뜨거운 불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면 좋겠다, 어떤 아지랑이 속에서 그걸 끝내는 주인공의 분노한 표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마치 옥주의 화형식 같길 바랐다″고 했다. 사진 넷플릭스

Q : -‘발레리나’는 옥주가 친구 민희를 위해 복수에 나선 계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데.
“끝까지 고민했다. 민희가 겪은 범죄 피해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지금이랑 영화의 결이 달랐을 거다. 많은 사람이 이미 아는 사건도 있고 해서 영화에서 파고들면 어쩌면 더 불편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왕자웨이·레트로 선호…필름 질감 살렸죠"


영화는 최근 젊은 세대에 각광받는 ‘레트로풍’ 모양새다. ‘중경삼림’(1994) ‘타락천사’(1995) 등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1990년대 청춘 영화 분위기가 흐른다. 광각‧망원렌즈를 과감하게 쓰고 조명‧색 보정도 필름 질감을 살렸다. 이 감독은 “왕자웨이 감독을 좋아해서 무의식적으로 영향받은 것 같다”면서 “옛날 영화가 개성이나 색깔이 더 있는 것 같다. 지금 나오기 어려운 그런 독특한 감성에 끌린다”고 했다.
영화 '발레리나'에서 배우 김지훈이 평소 이미지와 180도 다른 악역 최프로를 연기했다. 사진 넷플릭스
음악감독은 힙합 뮤지션 그레이가 맡았다. 한국 배경이지만, 공간 묘사도 이국적이다. 이 감독은 “복수극이 하나의 발레공연‧잔혹 동화처럼 보이길 바랐다”면서 “최근 한국도 이색 공간이 많은데 미디어가 잘 담지 않는다. 그런 서울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가족 안에서도 호불호가 엇갈려요. (웃음) 동생들은 부산영화제에서 보고 너무 재밌었다는데 어머니는 너무 대사가 없다고 아쉬워하시더군요.”

"타란티노·놀런 좋아해…한국 SF 시장 뚫리길"


영화 '발레리나'는 '존 윅' '킬빌', 전종서 미국 영화 진출작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등 연상되는 작품이 많이 언급된다. 이충현 감독(가운데)은 "좋은 영화들이고 어느 정도 레퍼런스 삼은 영화도 있지만 따라한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발레리나' 촬영 현장 모습이다. 사진 넷플릭스
주연 전종서는 이 감독의 단편을 지진 재난물로 확장한 티빙 드라마 ‘몸값’의 주인공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지난해 국내 선보인 뒤 글로벌 OTT 파라마운트+를 통해 미국‧캐나다‧영국‧브라질‧독일‧프랑스 등 27개국에 공개돼 12일 파라마운트+ TV쇼 순위 1위에 올랐다(플릭스패트롤 집계). ‘발레리나’도, 드라마 ‘몸값’도 ‘D.P’ ‘지옥’ 등을 만든 SLL 계열 제작사 클라이맥스 작품이다.
이 감독은 '몸값' 원작 단편의 판권 판매 후 손을 뗐다. 그는 “연출 제안도 받았지만, 내가 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장르영화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크리스토퍼 놀런. “로맨틱 코미디나, 드라마 연출도 해보고 싶어요. 지금 준비 중인 건 SF 장르죠. 요즘 어려운 한국 SF 시장도 언젠가 뚫리면 좋겠습니다.”
'발레리나' 이충현 감독(왼쪽부터)과 배우 김지훈, 박유림, 가수 그레이, 배우 전종서가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뉴스1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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