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가 선택한 부산영화제 화제작의 '진짜' 매력

김준모 2023. 10. 1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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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화란>

[김준모 기자]

 
 <화란> 포스터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스타 중 가장 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배우를 꼽으라면 송중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간 다양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 왔다. 실험을 통해 탄생한 늑대인간(늑대소년), 내전국가에 파병간 군인(태양의 후예), 한국에 온 이탈리아 마피아(빈센조) 등 다양한 시도를 선보여 온 그에게 <화란>은 가장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거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인물은 물론 주연이 아닌 조력자 역할을 맡았다.

<화란>은 <가시꽃>, <나쁜 피>, <똥파리> 등 2010년대 다양성 영화계에서 유행했던 그림자와 같은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화를 연상하게 만든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동네인 명안은 어두울 명(冥)에 구덩이 안(垵)이라는 뜻과 어울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이들은 끝없는 어둠의 구덩이에 빠져 있는데 두 가지 중 하나의 선택지만 주어진다. 평생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살거나, 타인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손에 피를 묻히거나.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연규를 <화란>의 주인공으로 작품은 두 가지 의미의 '화란'을 보여주고자 한다. 먼저 네덜란드의 한자 이름 화란(和蘭)은 연규의 이상에 해당한다. 지긋지긋한 가난에 이골이 난 연규는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모아 어머니와 함께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서 화란은 다른 의미로 다가와 절망을 안긴다. 
 
 <화란>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禍亂)은 재앙과 난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누구나 추구하는 미래를 향해 힘껏 돌진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건 짊어지고 가야할 현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의붓아버지와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의붓여동생까지 모두 껴안으려던 연규는 그 무게감에 무너진다. 재난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지옥이 되고자 한다.

송중기가 맡은 치건은 이런 연규의 구원자이자 파괴자가 된다. 연규처럼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치건은 조직의 중간 보스다. 반으로 갈라진 귀와 온몸에 난 흉터는 치건이 살아온 거친 삶을 짐작하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진 치건의 무기는 송중기의 앳된 외모에서 오는 소년미다. 그는 연규가 자신과 같은 이 동네의 아이들처럼 성장하길 원하지 않는다. 여전히 어린 시절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연규를 구해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길 원한다.

그러나 연규가 가난과 폭력의 대물림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자 악마가 된 자신처럼 지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익히게 하고자 한다. 연규와 치건은 서로에게 치명적인 관계가 되는 사약 브로맨스를 형성한다. 그저 손바닥만 더럽히면 될 줄 알았던 연규는 피를 묻히고 진흙탕을 뒹굴어야 하는 가장 잔혹한 어른들의 세계와 마주하며 지독한 성장통을 겪게 된다. 그에게 치건은 양을 이끄는 목동이 아닌 맹견을 키우는 사냥꾼처럼 인식된다.

명안의 구덩이에서 연규를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던 치건은 이미 어둠에 빠진 연규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주고자 한다. 다만 감정적으로 깊게 빠져들면서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는 연규의 행동까지 품어주고자 한다.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점 외에도 현실의 위험을 끌어안으려고 한다는 점, 여전히 미래라는 구원의 가능성을 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어쩌면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라 할 수 있는 관계성을 형성한 두 남자다.
 
 <화란> 스틸컷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장르로 보면 누아르지만 서사의 골격은 성장 이야기에 가깝다. 무책임한 어른들, 위험에서 탈출하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린 청년, 완전한 양지로 이끌어 주지 못하지만 아픔에 공감해 주는 조력자의 존재 등을 통해서다. 

<화란>은 예술에서 어둠을 상징하는 그림자를 담은 영화다. 빛이 강하면 그 뒤에 그림자가 길어지듯 영광에는 상처가, 환희에는 슬픔이, 성장에는 아픔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태어날 때부터 빛을 볼 수 없는 그림자 아래에서 태어난 이들의 초상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빛을 향해 나아가 자신의 형상을 찾을 것이란 점을 암시한다. 구원이라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재난과도 같은 현실에서 구조를 꿈꾸는 두 남자의 강한 에너지를 동력 삼아 질주하는 힘이 인상적이다.

신인감독의 패기가 돋보이는 힘 있는 연출과 이를 잘 표현한 신예 홍사빈의 에너지, 여기에 송중기의 연기변신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부산에서 큰 주목을 받은 이 영화가 극장가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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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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