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각성하는가… 7g짜리 ‘작은 기관’의 비밀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2023. 10. 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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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의 몸을 읽다
신장 위에 얹혀있는 부신/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부신은 7g의 아주 작고 가벼운 기관이다. 신장 위에 얹혀 있어 이름이 부신(副腎)이지만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 독립된 기능을 한다. 영어 이름 역시 신장(renal)에 근처를 의미하는 접두사 'ad'가 붙은 앙드레 날(ad-renal)이다. 부신은 평소에 존재를 인지하기 어려운 기관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인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것이다. 이 호르몬을 발견한 일본 과학자는 '아드레날'에 접미사 'in'을 붙여서 아드레날린(adrenalin)이라고 명명했고, 비슷한 시기에 미국 과학자는 위쪽을 의미하는 접두사 'epi'에 신장을 의미하는 또다른 단어 'nephron'과 접미사 'ine'을 붙여 에피네프린(epineprine)이라고 명명했다. 두 이름은 지금도 혼용된다.

우리가 흔히 각성하는 순간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상황"이라고 표현하는데, 직역하면 "신장 위의 부신에서 호르몬을 분비하는 상황"라는 뜻이다. 각성의 순간, 옆구리에 위치한 7g의 작은 내분비샘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부신은 두 개의 층으로 되어 있고 바깥쪽은 피질, 안쪽은 수질이다. 둘은 하나로 붙어있지만 역시 거의 다른 기관에 가깝다.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것은 안쪽의 수질이다. 부신의 수질은 아드레날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을 합성해서 4:1로 섞어 분비한다. 이들을 카테콜라민 호르몬이라고 분류하고 모두 비슷한 작용을 하는데 그야말로 위기 상황의 각성을 맡는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카테콜라민 호르몬이 분비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관상 혈관이 열리고 호흡수와 대사율이 증가한다. 또 아드레날린은 정신적 효과가 거의 없지만 노르에피네프린에는 뇌 신경 역치가 저하되면서 경각심이 상승하고 정신적으로 또렷해지는 각성 효과가 있다. 위기를 맞이했을 때 몸은 긴장하고 정신은 또렷해지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된다. 영어로는 전투 혹은 도망(fight or flight) 반응이라고 표현된다. 이는 신경계의 교감 신경이 항진될 때와 비슷한 효과다. 부신 수질은 교감 신경의 영향으로 작동하는데, 위기 탈출을 위해 신경계가 내분비계에 공조를 요청하는 것이다.

카테콜라민 호르몬은 그야말로 극한 상황에서 힘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아드레날린은 너무 강력한 호르몬이라 일반적인 질병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우리가 흔히 스포츠나 창작물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고 표현하지만 5mg만 투여해도 치사량이다. 즉시 심근에 무리가 가서 심정지로 이어진다. 심장이 멈춘 심정지 환자에게 아드레날린은 1mg 정도만 사용한다. 알러지성(아나필락시스) 쇼크에는 0.3mg만 투여해 혈압과 맥박을 올린다. 패혈증 쇼크에도 카테콜라민 호르몬을 사용하는데 빠르게 분해되므로 천천히 정맥으로 소량만 들어가게 한다. 카테콜라민 호르몬에는 도파민도 있다. 도파민은 이들 중에 가장 약한 호르몬으로 부신 수질에서 아주 조금만 분비된다. 대신 주로 뇌에서 분비되며 신경전달물질로 작동하고 역시 위기 탈출과 각성 효과가 있다. 우리가 집중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카페인, 니코틴부터 각종 마약과 ADHD 등의 치료제는 전부 도파민과 관련해서 작용한다.

부신의 바깥쪽 피질은 코르티코-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만들고 분비한다. 콜레스테롤은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핵심 물질이다. 부신 피질은 뇌하수체의 지시를 받아 염류-코르티코이드, 부신 안드로겐, 당류-코르티코이드 등 세 종류의 호르몬을 분비한다. 염류-코르티코이드는 신장에서 작용해 염류와 물을 보유하고 칼륨을 내보낸다. 요약하자면 탈수를 막는 역할이다. 부신 안드로겐은 성호르몬을 보조한다. 당류-코르티코이드의 대표 약물은 코르티졸로 우리가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치료받았어"의 그 스테로이드다. 스포츠 선수나 보디빌더의 근육을 늘리는 아나볼릭-스테로이드는 성호르몬의 일종으로 이 호르몬과 완전히 다르다. 코르티졸은 혈당을 올리고 지방을 분해해서 에너지로 사용하며 전신의 염증 반응을 억제한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 피질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분비한다. 역시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다.

우선 스트레스는 감염, 외상, 화상 등의 물리적 손상이다. 덧붙여 정신적 위기까지 포함된다. 직장 상사 앞에 있다면 엄연히 의학적 위기 상황인 것이다. 이때 평상시의 6배까지 코르티졸이 분비된다. 코르티졸은 인간의 면역 반응을 억제하고 정신적인 각성을 유도한다. 특히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체가 외상이나 화상을 입으면 적당한 염증은 조직과 피부를 재건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치명적인 외상이나 화상을 입었을 때 심한 염증 반응은 오히려 인간을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 면역은 단기적으로 생존에 방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감염, 외상, 화상의 정도에 따라서 인체는 코르티졸을 차등 분비한다. 병원에서는 알러지나 염증의 완화를 위해서 코르티졸을 사용한다. 피부염에는 국소 스테로이드를 바르기도 한다. 원인을 알 수 없이 염증을 일으키는 수많은 자가면역질환에서 유일한 치료법이기도 하다. 코르티졸은 인간이 찾아낸 가장 강력한 항염제다. 또한 코르티졸은 정신적인 각성도 유발한다. 직장 상사가 서류를 던지면 정신적으로 깨어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게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버프' 효과처럼 인간에게는 자연스럽게 긴장과 각성을 유발하는 효과가 내재되어 있다. 집중한 인간은 일에 몰두하거나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면서 오래 생존해왔다. 사냥감과 마주한 원시 시대의 인류나 직장 상사와 마주한 현대의 인류나 모두 대처 방법은 동일했던 것이다. 고등 동물이 되기 위해서 부신 호르몬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인간이 자연스럽게 보유한 '버프'는 약물의 발달로 인해 남용되면서 마약처럼 중독되거나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옆구리에 있는 7g의 내분비샘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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