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없앤 주차장 수만 1300개... 이 도시의 야심찬 목표
녹색전환연구소는 2주간(9월 10일~25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후 급변하고 있는 유럽사회의 에너지·기후 관련 현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지역과 마을 단위로 전환의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다양한 도시와 장소, 연구기관, 의회 등을 방문합니다. 이를 통해 실제로 유럽사회의 성과와 여전히 남은 과제와 한계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기자말>
[고이지선]
암스테르담은 12세기경 강 하구에 둑을 쌓아 만든 도시로 서울의 ⅓ 정도 면적에 117만 명이 살고 있다. 물보다 낮은 땅이라 지반이 약해서 저층 건축이 보편적이고, 시민들은 건축 및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해수면 상승에 대한 우려로 일찍부터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컸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물, 자전거, 다양한 디자인의 저층 주택이 인상적인 암스테르담. 이곳은 재생에너지 발전이 월등히 앞선 독일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최근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정해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60%, 2050년까지 95%를 감축하기로 하였다. 2030년까지 55%였던 감축 목표를 상향한 것이다. 네덜란드 날씨는 한국에 비해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적고 여름에도 습하지 않아 냉난방수요가 적은 편이다. 네덜란드는 인접한 북해에서 천연가스를 개발해 유럽 내에 공급하는 양이 러시아, 노르웨이 다음이다. 그만큼 천연가스 사용이 보편적이다 보니 난방과 취사 부문에서 어떻게 하면 화석연료와 이별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할지가 관건이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2010년대 중반, 정부차원에서 2040년까지 모든 건물에서 천연가스 사용을 중단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자연스럽게 암스테르담도 국가계획에 따라 2040년까지 모든 건물에서 천연가스 사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 중심에 주택과 건물의 전환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암스테르담 탄소배출량의 28%를 건물 및 건축 분야가 차지하고 있다. 대안적인 열 난방망을 구축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의 폐열과 지열을 이용한 난방, 물이 많은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는 대수층축열 시스템(ATES)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가스 지역난방을 탈피하면서 취약 계층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원칙도 수립했다.
암스테르담 기후 보고서에서는 건축 및 건물 분야의 감축 계획에서 주택 소유 형태에 따른 감축 목표를 구분한다.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임대주택으로 양분화된 한국과 달리 암스테르담에는 민간영역에서 공공성과 공동체적 성격을 가진 협동조합과 같은 집단이 주택을 공급 관리하는 사회주택 섹터가 따로 있다. 현재 암스테르담 주택 45만 가구 중 30%가 사회주택에 해당한다. 그만큼 사회주택에서의 에너지 전환이 중요해서 시 정부에서는 사회주택의 단열 정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기후위기 대응으로 진화하는 사회주택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이에(IJ) 강을 건너면 아직도 간척이 진행되는 에이뷔르호(Ijburg) 지구가 나타난다. 이곳에 올해 4월에 문을 연 시민 주택 협동조합이 더 바런(De Warren)이 자리한다. 암스테르담 최초로 자체 시공을 한 협동조합형 사회주택으로 현재 60여명이 거주한다.
주택에 대해 다양한 상상이 가능한 암스테르담에서 더 바런은 또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은 조합이 땅과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조합원만 거주하도록 한다. 거주자들은 임차인이면서 집주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임차료를 올릴 필요가 없다. 이 주택 건설에 800만 유로 정도 소요되었는데 이중 80% 정도를 독일의 GLS 은행에서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시민 펀딩도 가능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지불하는 비용은 많지 않았다.
▲ 폐목재를 활용해 지은 더 버런 주택협동조합 건물. 엘렌 마센(Ellen Maassen)은 이곳에 60여명의 조합원이 거주하고 있고 전기뿐 아니라 열까지 생산하는 에너지 자립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
ⓒ 녹색전환연구소 |
이들은 스스로 살고 싶은 주거 공간을 꿈꾸며 자체적으로 건축하는 방식을 택했다. 암스테르담 도넛 연맹의 소속이기도 한 이 협동조합은 성장보다는 분배 중심, 재생가능한 도시, 자연의 회복 등을 지향하고 있다. 감당가능한 저렴한 주거 문화를 고민하고 자본의 축적보다는 분배를 위해 움직이는 사회주택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성격은 주택의 공간 설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거주자들을 위한 각자의 방이 있지만, 1층에 커뮤니티 공간도 따로 있어 이곳에서 공동주택의 운영을 논의하고 교류 활동을 한다. 1층 한편에 자리한 곳에선 각종 행사가 열리는데, 다 바런의 입주자뿐 아니라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이다.
조합원 스스로 설계한 기후위기 대응 사회주택 더 바런
이곳이 더 특별한 이유는 셀프 시공을 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주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태양광 발전뿐 아니라, 지열을 이용한 열교환기와 히프펌프 사용으로 전기뿐 아니라 열까지 생산하는 에너지 자립 건물이다. 또 건축 과정에서 (폐)목재(또는 재활용 목재)와 기존 항구시설에서 떼어 온 철제 프레임을 재활용했다. 암스테르담 전체 원자재의 약 50%, 전체 에너지의 40%, 전체 CO² 배출량의 35%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콘크리트 대신에 목재를 사용하는 등 순환경제 측면에서 의미있는 시도로, 기후, 경제성, 경관적 측면에서 호평을 받아 2023년 암스테르담 건축상 중 관객상을 수상했다.
폐목재를 이용해 단열을 강화하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당연시하는 모습은 사회주택이 기후위기 시대에 맞춰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폐목재를 활용해 이 주택을 지었기 때문에 콘크리트, 강철, 알루미늄보다 탄소 배출이 적어서 28만 5천 kg CO² 탄소 흡수 효과를 보인다. 그렇지만 폐목재를 사용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안착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바런의 구성원들이 발품을 팔고 일일이 나서서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폐목재를 일일이 구해오고 못 박힌 곳은 없는지 일일이 다 살피고 나서 다시 재활용이 가능한 수준으로 재가공을 하거나 손을 보는 데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만큼 손쉬운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축 기간도 더 많이 소요되었다.
▲ 옥상 위에는 200여 개의 태양광 패널이 있고(왼쪽), 땅 속으로 수 백개의 파이프를 넣어 지하의 열을 이용해 냉난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
ⓒ 더 바런 |
이곳을 소개한 엘렌 마센(Ellen Maassen)더 바런의 대표는 "사회주택을 하려면 법적으로 대표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표라고 소개하지만, 조합원 대부분이 한 가지 이상의 역할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거실 칠판에 적힌 내용이 궁금해 물어보니 "운영 경비 중 남은 돈을 어떻게 쓸지를 논의한 결과"라고 했다.
친환경 협동조합 사회주택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벽면 녹지 조성에도 신경을 썼다. 이곳 이웃 주민들은 벌써 벌이 더 많아진 것 같다면서 반기고 있다고 한다. 벌을 보기 어려운 서울과 달리, 암스테르담에서는 종종 벌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노력들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조합원들의 실험적 정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있기에 생태적 한계선 안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일은 계속 진화해 갈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7년 안에 교통 분야 탄소중립 가능한 도시
도시의 탄소중립에서는 특히 수송과 건물 분야가 중요하다고 얘기되지만 실제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교통 체계가 자리잡은 도시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암스테르담은 교통분야의 탄소중립 목표를 무려 2030년으로 잡았다. 과연 앞으로 7년 안에 탄소중립이 가능할까? 수단분담률 30%인 자전거가 발판이 되고 트램과 전기저상버스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기준으로 암스테르담 온실가스 배출량의 9%가 수송 분야에서 나온다. 2021년 기준으로 전국적으로는 14% 정도, 지역별로는 30~50% 가까이의 온실가스가 수송 분야에서 배출되는 한국과 비교하면(산업 부분 제외) 이미 암스테르담의 교통 분야 에너지 전환이 앞서 있기 때문에 배출 비중이 상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램은 2017년에 풍력으로 생산된 재생에너지로 에너지원으로 바꾸었고, 버스는 2025년까지 모두 재생애너지원인 전기버스로 바꿀 예정이다. 경유버스를 전기버스로 전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데, 대중교통의 탄소중립 계획이 이미 2016년에 나왔으니 버스의 경우에도 10년만에 이 야심찬 계획이 완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교통을 제외하면 코로나로 늘어난 배달 및 화물 분야와 일반 차량의 탄소중립도 중요하다. 암스테르담은 2021년에만 전기차 충전소가 373개나 늘어 유럽에서 전기차 충전소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통행 차량 중 전기차 비중은 6%나 증가한 수준으로, 암스테르담 시는 승용차 대신에 지속가능하고 효율적인 이동 수단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2021년 한 해 동안 시내에 있던 차량 주차장 1300여 개를 없앴다. 시 외곽으로 주차장을 옮기거나 아예 없애버리고 그 공간을 자전거 도로나 도보 공간을 위해 내어주었다. 또, 카고 바이크를 비롯한 공유 자전거 설치, 특정 지역에는 내연기관차 진입 제한, 자전거 촉진 지역 확대 등을 통해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교통 분야의 전환은 암스테르담을 방문한 사람들도 쉽게 느낄 수 있다. 거리 통행의 대부분을 트램과 자전거가 차지하고 있는데, 트램과 버스는 저상이라서 휠체어나 유아차 접근이 쉬운 편이다. 자전거 도로에선 카고 바이크로 짐을 나르거나, 아이를 동반한 양육자,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도 손을 잡고 가는 연인 등 다양한 자전거 이용자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처럼 자전거가 레저용이 아니라 실제 교통수단으로 자리잡은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새로 생긴 자전거 주차장 모습. |
ⓒ 녹색전환연구소 |
▲ 암스테르담 시내 중심가에서는 도보와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우선이다. 암스테르담은 2021년에만 1300개의 주차장을 없앴다. 승용차 사용을 더 불편하게 만들어 앞으로 7년 안에 교통분야 탄소중립 달성하겠다고 한다. |
ⓒ 녹색전환연구소 |
승용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데 많은 예산이 쓰면서도 정작 대중교통의 전기화는 아직 미진하다. 전국 지자체별 전기버스 도입률은 평균 11%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재생에너지를 선택해서 쓸 수 없고,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교통 전환이 에너지 전환과 함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교통분야와 건물 탄소중립을 위한 페달로 삼을 것인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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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고이지선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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