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뽕'이란 삶의 전반에 은은하게 깔려있는 슬픔이죠"

정민재 2023. 10. 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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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난해 문제작 <뽕> 발표했던 250(이오공), 한대음 4관왕

[정민재 기자]

일렉트로닉 뮤지션 250(이오공)의 첫 앨범 <뽕>은 지난해 가장 큰 문제작이었다. 그는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던 '뽕', '뽕짝'을 전면에 내세웠다. 장장 7년 동안 뽕을 찾아 방방곡곡 누비며 뽕의 대가들을 만났고, 마침내 뽕의 정체성과 그만의 개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을 탄생시켰다. 늘 우리 곁에 있던 뽕짝은 그렇게 새로이 부활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음악 관계자 모두가 일 년 내내 <뽕>을 이야기했다. 당연히 연말 결산의 주인공도 250과 그의 작품이었다. 올해 초 열린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선 '올해의 음반'과 '올해의 음악인'을 포함해 4관왕에 올랐다. 그렇게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최근에는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서 라이브로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연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새 앨범을 구상 중인 그는 '뽕'의 정서를 "삶의 전반에 은은하게 깔려있는 슬픔"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4일 서울 연남동 모 스튜디오에서 이오공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250(이오공).
ⓒ BANA
- 최근 국내외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시죠. 일본 투어부터 국내에서의 단독 공연, 여러 페스티벌까지 다양한 공연 일정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얼마 전에는 벨기에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페스티벌 '투모로우랜드'에도 다녀오셨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투모로우랜드는 음악적인 취향이 꽤나 확고한 페스티벌이어서 제가 하는 게 너무 엉뚱하지 않겠냐는 걱정을 좀 했어요. 근데 사실 전 꼭 벨기에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엉뚱한 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잖아요. 벨기에 현지에서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는 반응이 있었는데,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익숙했고요, 정말 신기하고 좋은 경험이었죠. 페스티벌 규모가 어찌나 큰지 태어나서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 거기서도 '뽕' 음악을 공연하신 건가요?
"처음 현지에 도착해서는 어느 정도 세트리스트를 절충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어요. 근데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절충을 하면 했지, 오히려 거기까지 갔으니 좀 세게 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뽕' 함량을 더 높였어요."

- 현지 관객의 반응은 어땠나요?
"많이 나뉘었어요. 너무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었고, 반면 이 음악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바로 캐치하는 분들도 있었죠. 흔히 관광버스 음악이라고 하는 뽕짝 음악이라는 게 BPM 160 가까이 되는 빠른 속도의 음악인데, 이렇게 빠른 템포에 사람이 출 수 있는 춤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관객과 벨기에 관객의 동작이 크게 다르지 않았죠. 관광버스 춤을 추거나 막 뛰어다니거나 하는 식으로요."

- 지난 7월에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단독 공연을 하셨죠. 당시 <뽕>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그분들과 같이하는 라이브 무대는 처음이었던 걸로 압니다. 공연이 끝나고 다들 어떤 반응이셨나요?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저도 그렇고 함께 하신 분들 모두 그런 공연이 생소했거든요. 정확히 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 느껴지는 설렘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설렘과 재미를 다 같이 즐겼던 것 같아요. 한 번만 하고 끝내기 아까운 공연이라는 말씀도 많이 하셨고요."

- 또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무대도 다녀오셨죠. '뽕'뿐만 아니라 본 조비의 'It's My Life', 에프엑스의 '4 Walls', 코리아나 '손에 손잡고' 등 여러 시대, 여러 장르 음악을 들려주셨는데, 선곡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록 페스티벌 감성으로 설명을 드리면 '짬뽕도 뽕이다'랄까요?"

- '나락도 락이다' 같은 거군요. 당시 현장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엄청났습니다. 공연하면서 관객 반응도 살피는 편이신가요?
"무대에 설치된 화면에 나오는 영상은 제가 볼 수 없었는데요, 공연하는 사이사이에 보니까 무대 앞쪽 중앙에 계신 분들은 주로 관람하는 분들이고 사이드에 계신 분들은 제 음악을 배경음악 삼아서 노는 분들 같더라고요. 아무거나 (음악을) 주면 알아서 놀겠다는 느낌? 그러다 나중에 공연 막바지에는 '손에 손잡고'에 맞춰 중앙에 있던 관객까지 다 강강술래를 했는데 풀 냄새가 나는 야외에서 음악을 틀고 같이 논다는 느낌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들려주고 듣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진짜 지금 함께 같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 먼저 열렸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처음 느낀 기분이었는데, 페스티벌의 그런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250이 작년에 발표한 앨범 <뽕>
ⓒ BANA
- 작년 발표한 앨범 <뽕>의 타이틀곡은 '뱅버스'와 '로얄 블루' 두 곡이었죠. 어떤 노래인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앨범을 만들 당시에 좀 복잡하게 만들려고 했던 때가 있었어요.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 욕심을 다 버리고 나니까 너무나 단순하게 '이 앨범의 대표곡은 이 노래구나' 했던 곡이 '뱅버스'였죠. 들으면 이 앨범이 왜 <뽕>인지 설명이 되는 노래니까요. 그래서 피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타이틀이 되어야 했던 곡입니다. 또 이 앨범이 담고 있는 공간적인 배경을 무도회장이라고 생각했을 때, 무도회장에는 격정적으로 뛰어노는 순간도 있지만, 블루스 타임도 있잖아요. '로얄 블루'는 그런 블루스 타임을 상징하는 곡이에요. 그래서 '뱅버스'와 '로얄 블루'가 앨범을 가장 포괄하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 앨범을 내고 진행한 여러 인터뷰에서 "'뽕'이란 촌스러움"이라고 말씀하신 걸 봤습니다.
"얼마 전 페스티벌에서 '네 박자', '내 나이가 어때서' 같은 곡을 틀었는데 다들 따라 부르시더라고요. 전곡을 따라 부르진 못해도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같은 부분은 따라 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따라 부른 분들 중에 그 노래를 자발적으로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왠지 모르게 알고 있는 거죠. 그래서 한국에선 뽕, 트로트가 사실은 궁극의 대중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이걸 촌스럽다고 하는 건 어떤 면에서는 자조적인 거예요. 예를 들어 집 반찬은 냉장고에 항상 처박혀 있는 거라고 대단치 않게 얘기해도, 나는 밥 먹을 때 그거 없으면 밥 못 먹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런 얘기죠."

- 뽕에 담긴 촌스러움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는 것이기 때문에 아는 맛이라는 게 있어요. 새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오는 신선함 같은 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막상 손에 들고서 눈앞에 딱 놔본 적도 없는 것 같거든요. 그냥 어디에나 있고, 흔히 지나치는 거죠. 산책을 하다보면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스피커로 들으면서 지나가시기도 하고, 동묘 같은 데서 우연히 듣거나 번화가에서 흘러나기도 하고요. 그렇게 맨날 들리지만, 한 번도 내 손으로 직접 들어본 적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각 잡고 이게 어떤 건지 보자고 할 때 느껴지는 묘한 감정이 있어요."

- 주변 분들은 <뽕>을 듣고 어떤 반응이셨나요?
"부모님께선 물론 객관적으로 듣진 않으셨겠지만, '휘날레' 같은 곡을 들으시면서 감정적으로 와닿으셨던 것 같아요. 평생 고속도로 뽕짝 음악을 하신 나운도 선생님께선 '아무도 하지 않는 걸 하려고 하셨군요' 이런 말씀을 하셨고, 이정식 선생님께선 주변 동료 음악인 분들이 굉장히 좋아하셨던 말씀을 해주셨어요."

- <뽕>에 참여한 게스트 면면이 화려합니다. 나운도, 이정식씨부터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박사와 그의 음악 파트너 김수일씨, 전설적인 작사가 양인자씨 등등. 이 분들을 섭외할 때 편지로 설득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봤는데, 처음 참여를 요청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뽕'이라는 타이틀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나중엔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 그 자체에 마음을 열고 받아주셨어요. 재밌는 거, 신기한 거 하는구나 하셨죠."

- 앨범을 만들면서 사운드에도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은데요.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요?
"사실 곡마다 방향성은 조금씩 달랐어요. '뱅버스'는 전형적인 그 사운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로얄 블루'는 블루스 타임을 염두에 뒀죠. 또는 클럽에서 트랩(trap)과 섞어서 틀면 웃기겠다고 생각했어요. '주세요'는 사운드 적으로 가장 깨끗하게 빠져야한다고 생각했고, '바라보고'는 '주세요'에서 추구한 매끈한 사운드와 뽕짝의 약간 투박한 사운드를 적절히 결합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2년 동안 믹스를 6, 7번 정도 했어요. 믹스하는데 가장 고생한 노래였죠."
 
 일렉트로닉 뮤지션 250(이오공).
ⓒ BANA
- '모든 것이 꿈이었네'는 노래를 만든 김수일씨 자택에서 녹음한 곡이었죠.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데요.
"김수일 선생님께서 제 바로 옆에서 그 노래를 처음 부르셨어요. 노래에 '깊은 잠을 깨고 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네'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 가사에 너무 놀랐죠. 뭐랄까.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어요. 가사 한 줄이 그렇게 쿵 하고 마음에 떨어지는 느낌. 그리고 그 무거운 가사를 선생님 목소리로 들을 때 그 효과. 그 모든 감상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돌아오는 차에서 저희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던 영상 감독님께서 갑자기 '모든 것이 꿈이었대' 그러시더라고요. 모두가 그 말에 꽂혀 있던 거죠. 원래는 화려한 버전의 다른 편곡이 있었는데, 그 순간의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미니멀한 버전으로 완성한 노래예요."

- 정말 사운드 디자인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냥 가정집이었기 때문에 정식 녹음실도 아니었고 녹음 환경이 갖춰지지도 않았어요. 한쪽에선 설거지하고 계시는데 그냥 마이크를 갖다 대고 녹음하는 식이었죠. 원래는 현장 노이즈가 너무 많아서 이걸 쓸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그 노이즈에서 오는 어떤 이미지가 있었고, 다른 악기들도 마찬가지로 노이즈가 섞인 소리를 쓰면 허름하고 투박한 공간에서 불러지는 곡으로 완성이 되겠구나 싶었죠. 2년 반 정도 보컬 트랙만 놓고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가, 그 생각이 든 순간에 편곡을 시작해서 일주일 만에 작업이 끝났어요."

- '이창'이란 곡도 참 독특합니다.
"제가 <뽕>을 7년 가까이 만들면서 한 3년 정도는 순수하게 헤매면서 버린 시간이었어요. 그 3년의 끝에 이 노래를 완성했죠. 음악을 만들면 늘 회사랑 공유를 하니까, 이 곡을 아침에 회사로 보낸 뒤에 핸드폰을 꺼버리고 잤어요. 만약 이 곡도 방향에 안 맞으면 나는 <뽕>을 만들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다른 타이틀로 앨범을 만들어야지 생각했죠. 근데 회사에서 곡을 듣고선 이거다, 이걸로 가면 될 것 같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이 곡이 들어있는 앨범은 어떤 앨범일까 생각하면서 앨범을 완성했어요. 앨범의 포문을 열어준 곡인 셈이죠."

- <뽕>에 그렇게 다양한 스타일, 사운드의 음악이 담겨 있는데, 공통점은 왠지 노래들이 슬프다, 서글프다는 겁니다. 뭔지 모를 노스탤지어의 감수성이 있다고 할까요. 앨범의 정서적인 측면도 많이 고려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슬픔의 정서는 맞지만, 그 슬픔이 진짜 오열하고 싶은 슬픔이 아니라 은은하게 계속해서 삶의 전반에 깔려있는 슬픔이에요. 그게 뭘까 생각해봤는데, 시간이 주는 기본적인 우울함이 있는 것 같아요. 바쁘게 움직이다가 어느새 밤이 됐을 때 이렇게 하루가 또 흘러갔구나 하는 허망함이 있잖아요. 그런 슬픔은 격하게 쏟아지는 게 아니라 은은하게 삶의 전반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뽕짝의 기본 정서가 아닐까 생각했고, 그 정도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데 포인트를 뒀습니다."

- 앨범의 마지막 곡 '휘날레'는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곡을 부른 오승원 씨가 불렀는데, 이 노래도 참 슬프잖아요.
"이 앨범은 제 노스탤지어를 쫓는 과정이 가장 중요했는데요, 돌이켜보니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어딘가 좀 슬픈 기분을 갖고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시절에는 텔레비전에 담긴 슬픔의 정서가 지금보다 더 높았던 것 같고, 어린아이들이 보는 만화도 슬픈 게 많았어요.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경우도 많았고요."

- 둘리도 부모와 떨어진 아기 공룡이죠. (웃음)
"그러니까요. 또 둘리가 왜 그렇게 슬프게 기억될까 생각해 보니 역시 그 주제가 때문이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노래를 불렀던 오승원 님과 작업을 하게 됐죠. 둘리의 오프닝 송으로 시작된 나의 슬픔을 오승원 님의 클로징 송으로 해소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한 곡이었어요."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시대의 '뽕'은 과연 어떤 음악이 될까 문득 궁금해지는데요.
"이전까지는 특정 세대에 맞는 노스탤지어의 코드가 각각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게 무너지는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예전에 어머니 아버지가 듣는 음악은 정말 부모님만 듣는 음악이었고 딱히 나와는 접점이 없는 것에 가까웠는데, 요즘에는 어린 친구들이 오히려 필름 카메라를 찾는다든지, 오래된 건물이 많은 동네를 재밌어한다든지 그렇잖아요. SNS를 꾸밀 때도 빈티지한 윈도우 바탕화면 같은 깨진 그래픽 느낌으로 꾸미기도 하고요. 앞으로는 그렇게 노스탤지어의 대상도 제각각이 되지 않을까요. 결국 뽕짝은 얼마나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하느냐인 것 같아요."
 
 KBS <더 시즌즈-악뮤의 오날오밤> 방송 화면.
ⓒ KBS
 
- 얼마 전 KBS 2TV <더 시즌즈-악뮤의 오날오밤>에 출연하셨잖아요. 지상파 음악 방송은 첫 출연이셨는데, '로얄 블루' 무대 중 이정식 선생님을 소개하는 자막이 재밌더라고요. 직접 요청하신 거였나요?
"네, 손글씨 자막으로 제가 부탁드렸던 거였어요. 생방송은 아니었지만, 녹화가 굉장히 긴박하게 흘러가더라고요. 각자 시간에 맞춰서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하고 바로 빠져줘야 했죠. 그냥 편하게 담는 방송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드는 방송이었어요. 저는 그날 방송에서 제가 어떻게 보였는지 궁금해요."

- 한 인터뷰에서 음악은 엉덩이로 만든다는 얘기하시던데요, 평소 작업 스타일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뽕>을 만들 때는 작업 공간과 주거 공간이 합쳐져 있었는데, 앨범이 나온 이후에는 그걸 분리했어요. 근데 분리해 보니 전 한 공간에서 하는 게 좀 더 맞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다시 합치는 중이에요. 저는 보통 작업을 하다가 의도적으로 잠깐잠깐 딴 짓을 해요. 어차피 하다가 멈춰놓으면 머릿속에는 계속 그 생각이 떠나지 않거든요. 머릿속에 작업 상황이 든 상태에서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보든 유튜브를 틀든 다른 걸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막혀 있던 부분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 그러면 돌아가서 작업을 하죠. 하루 종일 작업만 붙잡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거기서 떠나지 않고 있는 상태로 시간을 보내요."

- 그럴 때 유튜브로 어떤 영상을 보세요?
"요리하는 분들 영상을 좀 많이 보고요. 아니면 손으로 뭔가 만드는 분들 있잖아요. 유리 세공을 한다든가 가죽을 재단해서 구두를 만드는 분들. 그런 영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 어떻게 보면 하루종일 음악 작업을 하는 셈인데, 혹시 다른 취미는 없나요?
"넷플릭스나 유튜브 보는 건 모두가 갖고 있는 취미일 거고, 글쎄요. 저는 그냥 비트를 찍는 게 취미인 것 같아요. 가장 편하게 하는 작업이에요. 뭘 하든 망하든 아무도 쓰지 않든 상관없는 작업이거든요. 안 써본 악기 같은 걸 갖고 실험해 보는 작업에 가깝죠. 그렇게 하다가 좀 괜찮아지면 그다음 단계로 가고, 진짜 좋은 건 빼놓고 나중에 제 앨범에 쓸 수도 있고요."

- 어쩌다가 그렇게 음악에 빠진 건지 궁금하네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셨고, 형은 고학년이라서 집에 늦게 들어왔어요. 제가 집에 일찍 와도 아무도 없었죠. 그때는 그게 좀 무서웠는데, 당시 집에 오디오가 있었거든요. 오디오엔 신해철씨의 1집이 있었고요. 그래서 하루 종일 가족들이 올 때까지 신해철씨 1집을 들었어요. 그러면서 음악 듣는 게 제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어요. 또 중학교 때는 집이 이사하면서 학교가 멀어졌어요. 통학 시간이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였는데, 혼자서 그 긴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 계기로 음악에 빠진 거죠."

- 그럴 때 무슨 음악을 주로 들으셨어요?
"그땐 CDP로 음악을 들을 때니까 음악을 많이 갖고 다닐 수가 없었거든요. 학교 가는데 10장을 챙길 수 없으니까 2, 3장 정도를 갖고 다녔는데, 주로 컴필레이션 앨범이 많았어요. <그래미 노미니스>라든가 < NOW > 같은 앨범도 있었고, 특정 아티스트의 베스트 앨범도 많았죠."

- 댄스 음악을 만들고 계시는데, 혹시 직접 춤추는 것도 좋아하시나요?
"예전에는 클럽에 자주 갔었는데, 클럽에서 춤을 추는 걸 즐기기보단 스피커에 등을 대고 있는 쪽이었어요. 그럼 우퍼가 뻥뻥 때리는 데, 그걸 등으로 받으면서 즐겼어요. 밥을 안 먹고 거기에 등을 대고 있으면 빈속이 정말 쾅쾅 울리거든요. 몸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어서 클럽에 갔던 것 같아요."

- 수년에 걸친 <뽕> 프로젝트가 드디어 대단원을 맞았습니다. 유튜브에 올리신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 마지막 회의 엔딩을 보면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새 프로젝트 제목이 나오더군요.
"'메이드 인 아메리카'는 '뽕을 찾아서'를 잇는 차기 다큐멘터리의 제목이에요. 새 앨범 제목은 <아메리카>로 이미 정했고요."

- <아메리카>에는 어떤 음악이 담길까요?
"<뽕>을 만들 때는 처음엔 뽕짝 음악을 굉장히 많이 의식했는데, 알고 보니 이건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었다는 게 결론이었거든요.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뽕을 덮고 있는 껍데기들을 벗겨내는 작업이 필요했죠. 반면 [아메리카]는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껍데기들을 덕지덕지 붙이는 앨범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멋있는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너무 멋있는 것만 하려고 해서 거꾸로 유치하고 촌스러워질 수도 있겠죠."

- 기대되네요. <아메리카>는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일단 <뽕> 만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사실 <뽕>을 만들 때는 음악 자체도 고민이었지만, 노래가 많이 없는 이런 앨범을 대중이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거든요. <뽕>을 내고 그런 부분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만큼 분명 <뽕>보다는 훨씬 빨리 나올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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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음악가와 대중을 잇는 음악 팟캐스트 '뮤직 매거진 뮤브(MUVE)'에도 실렸습니다. https://naver.me/5BkSpA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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