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물론, 포장 디자인까지 제발 좀 베껴 주세요?

구정하 2023. 10. 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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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 관행 ‘미투 마케팅’
하나 인기 끌면 유사 제품 줄줄이
맛·기술 차별성 작아 규제 어려워
미투 제품 나오면 원조 화제성↑
게티이미지·농심 제공


농심의 먹태깡이 열풍에 가까운 ‘품절 대란’을 일으킨 뒤로 비슷한 맛을 가진 ‘미투(Me, too)’ 상품들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다. 비단 먹태깡 사례뿐 아니라, 하나의 제품이 인기를 끌면 다른 회사에서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미투 마케팅은 식품업계의 ‘관행’이라고 불릴 정도로 흔하다. 법으로 규제하기 어려워 오리지널 제품을 만든 회사 입장에선 골칫거리겠다 싶지만, 다수 기업들은 경쟁사의 미투를 내심 반긴다. 왜일까.

식품업 “특허법 회피, 쉬운 영역”

지난 6월 출시된 먹태깡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최근 비슷한 맛의 과자들이 연이어 나왔다. 유앤아이트레이드의 ‘먹태이토 청양마요맛’, 롯데웰푸드의 ‘오잉 노가리칩 청양마요맛’, 성일제과의 ‘먹태쌀칩 청양마요맛’은 모두 먹태깡의 ‘미투’ 제품으로 평가받는다(왼쪽부터). 각사 제공

지난 6월 나온 먹태깡이 소위 ‘대박’을 치자 지난 9월 초 롯데웰푸드는 ‘오잉 노가리칩 청양마요맛’을 선보였다. 먹태깡이 출시된 지 약 3개월 만이다. 뒤이어 유앤아이트레이드의 ‘먹태이토 청양마요맛’, 성일제과의 ‘먹태쌀칩 청양마요맛’, CU의 ‘헤이루 청양마요맛 새우칩’이 시중에 나왔다. 모두 먹태깡처럼 해물맛 베이스에 청양마요맛을 가미한 제품이다. 이들의 출시는 먹태깡의 유명세에 편승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롯데웰푸드는 이런 지적에 “을지로 포장마차 트렌드를 반영해 안주로 먹기 좋은 과자를 연초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먹태깡의 인기와 노가리칩의 출시를 떼어놓고 보기는 힘들다.

식품업계의 미투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리온에서 처음 선보인 ‘오징어 땅콩’은 해태제과·롯데웰푸드·청우식품 등이 비슷하게 만들어 판매 중이다. 농심의 ‘육개장’ 컵라면과 유사한 콘셉트의 제품이 삼양식품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나오고 있다. 이외에 국내 식품업체가 해외의 제품을 따라 만들었다는 지적은 수도 없이 나왔다.

최근엔 해외에서 한국 제품을 따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일본 라면 시장 1위 기업인 닛신은 지난 3월 봉지라면 ‘야키소바 볶음면 한국풍 달고 매운 까르보’와 컵라면 ‘야키소바 U.F.O. 볶음면 진한 한국풍 달고 매운 까르보’를 출시했다. 맛은 물론, 분홍색과 캐릭터를 활용한 포장 디자인까지 삼양식품의 ‘까르보 불닭볶음면’을 연상시킨다.

현실적으로 식품업계의 미투를 법으로 제재하기는 어렵다. 특허로 인정받기 위해선 기술의 ‘진보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식품 조리법의 경우 ‘맛’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기술의 우열을 따지기 힘들다. 또 부가가치가 낮은 식품업 특성상 기술의 차별성도 크지 않다. 국내 대다수 식품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전체 매출의 1% 내외 수준이다. 지난 상반기 삼성전자의 연구개발비는 매출의 20%에 이른다.

설사 특허권이 등록된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권리 보호는 또 다른 문제다. 와이즈업특허법률사무소의 박민흥 변리사는 “특허로 등록되기 위해선 제조 과정의 세부적인 요소를 하나하나 기재해야 하는데, 10개 중 9개를 따라 해도 하나만 달리하면 특허권 침해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식품 분야 특허는 기술 수준이 평이한 경우가 많아 특허법 회피가 쉬운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삼양식품 CJ제일제당 등 국내 식품 기업들이 중국에서 현지 업체를 상대로 벌인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서 이기는 사례가 나오기는 했다. 자국 기업 보호 기조가 강한 중국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받는다. 다만 문제가 된 제품들은 단순히 인기 상품과 유사하게 만드는 미투가 아니라, 상표나 디자인을 그대로 베끼고 한국어로 설명을 적는 등 소비자의 착각을 유도한 ‘짝퉁’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식품업계에선 승소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미투 나오면, 원조 더 큰 화제

일각에선 법망 밖의 미투 전략을 비판하기도 한다. 독자적인 개발 없이 타사의 성공 사례를 모방한다는 것이다. 2021년에는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오리온의 ‘꼬북칩’과 일본 야마자키비스킷의 ‘에아리아루’를 양손에 들고나와 문제를 제기했다. 안 의원은 “(두 제품이) 외양은 물론 맛까지 유사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라며 “식품업계가 미투 상품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대다수의 식품 기업들은 미투 제품의 등장을 달가워하는 기색이다. 이들은 “미투 제품이 나오면 원조 제품이 더 큰 화제가 되고, 전체 시장이 성장하는 효과가 있어 고마운 일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의 맛은 아무리 똑같이 따라 하려고 해도 그대로 구현하기 쉽지 않다”며 “유사 제품이 나와도 소비자는 처음 접했던 오리지널 제품의 맛을 기억하고 찾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리지널의 인기를 뛰어넘은 미투 제품은 거의 없다. 초코파이의 오리지널격인 오리온은 롯데웰푸드·크라운 등 유사 초코파이의 등장에도 국내 반생초코케이크 시장에서 30%가 넘는 점유율로 공고한 1위다. 심지어 오리온 초코파이는 타제품들과 달리 할인 행사를 자주 하지 않아 소비자의 체감 가격이 더 높다고 한다. 다만 인도에선 국내와 뒤바뀐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롯데웰푸드가 먼저 인도에 진출해 ‘원조’의 자리를 가져가면서 90%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밀키스’는 원조 제품을 밀어낸 이례적인 미투 사례로 꼽힌다. 밀키스는 코카콜라가 1984년 출시한 ‘암바사’보다 5년이나 늦은 1989년 시장에 나왔다. 하지만 롯데칠성음료가 당시 톱스타였던 홍콩 배우 주윤발을 TV 광고에 출연시켜 “사랑해요, 밀키스”를 유행어로 띄우면서 단숨에 암바사를 제쳤다. 현재까지도 밀키스는 유성 탄산음료 시장의 압도적인 1위다.

업계는 밀키스의 성공이 ‘음료’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음료업계 관계자는 “일반 식품과 달리 음료는 형태, 식감 등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맛을 따라 만들고 포장 디자인이나 이름만 바꿔내기가 쉽다”며 “밀키스가 마케팅으로 대결할 수 있었던 것도 맛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투가 빈번한 식품업계. 식품업체들이 경쟁사의 미투를 기꺼워하는 데에는 서로가 서로를 따라 하는 탓에 누구도 미투의 순수한 ‘피해자’일 수 없다는 속사정도 있다. 그럼에도 선두주자의 혁신과 그를 따라잡으려는 후발주자의 노력이 함께 산업을 성장시킨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무분별한 베끼기와 생산적인 미투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먹태깡 이후 줄지어 나온, 조금씩 다른 과자들이 ‘어른 과자’의 시장을 넓히고 있다”는 게 업계 종사자의 공통된 평가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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