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나타난 거대한 호랑이의 정체

윤찬영 2023. 10. 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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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나라 최고의 오토마타 장인 이승항 대표

[윤찬영 기자]

올해 열 번째를 맞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집채만 한 호랑이가 나타났다. 길이 4m에 어깨높이 1.5m, 스스로 걷고 포효하며 눈썹과 꼬리도 들썩이는 이 호랑이는 나무로 만들었다. 오토마타(automata)라 불리는 기계장치다. 오토마타는 '스스로 움직인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왔다. 
 
▲ 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전시된 호랑이 오토마타 길이 4m에 달하는 실제 크기의 호랑이로, 걷고 포효하며 머리와 눈썹, 귀 그리고 꼬리를 움직인다. ⓒ 이승항

호랑이를 만든 건 이승항 오토마타코리아디자인센터 대표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삼십대 중반 무렵, 우연히 일본인 니시다 아키오가 쓴 <오토마타>란 책을 접한 그는 그 길로 오토마타라는 낯선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아직 우리나라에 오토마타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대학에서 기계설계를 전공하고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던 그는 책과 영상을 찾아보며 혼자 오토마타를 배워갔다. 처음엔 다른 작품을 그대로 따라 만들었고, 다음엔 한두 가지 기능을 덧붙였다. 손이 움직이는 작품에 다리도 움직이게 만드는 식이었다.(작품 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automatakoreadesigncenter239)

그렇게 오토마타를 알게 된 지 15년쯤 지났을 무렵, 2019년 100회째를 맞은 전국체육대회와 전국장애인체육대회(39회)의 홍보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수영, 펜싱, 사이클, 역도 등 여러 종목 선수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오토마타로 구현하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다행히 그가 만든 작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오토마타가 우리나라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모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달라는 제안을 받고 강단에 서게 된 그는, 2년 뒤 회사를 동업자에게 맡기고 창작과 교육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지금도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지능형융합제어시스템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2년 전부터 준비한 실제 크기의 호랑이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측으로부터 전시에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건 이번 5월이었다. 이번 비엔날레의 여러 소주제 가운데 하나인 '기술, 디자인을 만나 꿈꾸던 미래를 실현하다'에 오토마타가 어울린다고 본 것. 그는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실물 크기의 호랑이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혁신적 도전이에요. 예술과 기술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앞으로 그 둘이 어떻게 만나고 융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라고 할 수 있어요. 몇 달 만에 뚝딱 만든 것 같지만, 조립하는 데 두 달이 걸렸을 뿐이지 2년 전부터 설계와 시뮬레이션을 조금씩 해왔어요.

호랑이를 실제 크기로 만든 건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감과 몰입감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예요.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위엄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또 멸종위기종인 호랑이를 가까이서 보면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하려는 뜻도 있었어요."
 
 호랑이 작업 과정
ⓒ 이승항
   
 호랑이 작업 과정
ⓒ 이승항
 
오토마타는 로봇과 달리 모든 움직임이 한 곳에서 시작되어 다른 곳으로 전달되면서 퍼져간다. 그러니까 호랑이 발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가 움직이고, 머리가 움직이면서 입과 눈썹과 귀가 따라 움직이는 식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로봇은 오토마타와 달리 관절마다 크고 작은 모터가 달려있고 필요한 부분에만 전기신호를 줘서 움직이게 한다. 그는 오토마타의 작동원리를 "프로그램밍 언어가 아닌 기계장치로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면에서는 로봇을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작업인 셈이다.

"오토마타는 하나의 동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모든 움직임이 연결되어야 해요. 대단히 정확한 계산과 조정이 필요하고, 작은 오차도 움직임에 큰 영향을 미치죠."

이번 호랑이 작품의 주동력은 아주 작은 12V DC모터에서 시작된다. 몸통 한가운데 자리한 이 모터가 3개의 기어를 회전시키는데. 첫 번째 기어의 회전운동은 왕복운동으로 바뀌어 4개의 다리로 전달되고 다시 몇 단계를 거쳐 호랑이를 걷게 한다. 두 번째 기어는 머리에 동력을 전달해 호랑이 걸음에 맞춰 머리가 위아래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몇 단계를 거쳐 입과 눈썹 그리고 귀를 움직인다. 마지막 기어는 꼬리에 동력을 전달해 한층 자연스러운 호랑이의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려면 작품 안에 숨겨진 기어와 그 기어에 연결된 막대(링크)들이 수많은 뼈대와 근육들처럼 어떻게 힘을 전달하는지를 살펴야 해요. 다리가 몇 번 움직일 때마다 머리에 그 힘이 전달되는지, 또 머리가 어디쯤 올라갔을 때 입이 벌어지고 눈썹이 올라가는지... 그런 걸 꼼꼼히 들여다봐야 오토마타를 제대로 감상한다고 할 수 있어요."
 
 호랑이 작업 과정
ⓒ 이승항
 
 호랑이 작업 과정
ⓒ 이승항
   
"인공지능 시대에도 오토마타는 생명력 유지할 것"

그는 호랑이의 자연스런 움직임을 구현하려 무척 애를 썼다. 해부학 도감을 비롯한 여러 자료를 참고하면서 호랑이의 구조와 뼈대의 구성, 근육의 움직임을 익히고 동영상들도 있는 대로 찾아봤다.  

"어떻게 걷고 뛰는지, 머리와 꼬리는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수도 없이 보면서 움직임을 모델링했어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4족 보행을 설계하고 시뮬레이션 했죠. 그렇게 움직이는 기본 골격을 완성한 뒤에 수의사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어요. 수의사는 호랑이 뒷발 움직임이 실제와 다르다면서 바로잡아 줬고, 덕분에 발과 발톱의 움직임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어요."
 
 호랑이 작업 과정
ⓒ 이승항
   
 호랑이 작업 과정
ⓒ 이승항
 
그는 부드러운 몸통과 꼬리, 근육의 움직임을 표현하려고 온갖 재료를 써보며 실험한 끝에 얇은 대나무살을 겨우 찾아냈다. 또 호랑이가 걸어가는 영상을 작품에 비추는 프로젝션 맵핑을 더했는데, 털의 미세한 움직임을 표현할 방법을 찾다가 영상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호랑이 작업 과정
ⓒ 이승항
  
 프로젝션 맵핑
ⓒ 이승항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시대에 오토마타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물었다.

"인공지능이 모든 걸 다 해줄 것 같지만 아직은 인간이 잘 묻거나 명령을 잘 내려야 해요. 어떻게 움직이게 할지 인간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우리는 작동원리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추상기계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어요. 그것들이 어떤 구조로 이뤄져 있고 작동원리는 어떤지 생각할 겨를이 없죠.

오토마타는 깊이 관찰하게 함으로써 숨어있는 작동원리를 떠올리게 하고, 한발 더 나아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디자인하게 하는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이승항 오토마타코리아 디자인센터 대표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오토마타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물리적인 움직임과 형태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고 개발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오토마타는 고전적이면서도 물리적인 형태와 움직임을 가진 예술작품으로서 여전히 고유성을 유지한다고 봐요. 이렇게 예술과 과학, 공학의 교차점에 있는 오토마타는 인공지능 로봇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생명력을 유지할 거라 믿어요."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오는 11월 7일까지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다. 오토마타 호랑이는 1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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