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기' 배지 선물했을 뿐인데... '간첩' 언급한 학부모 단톡방

교육언론창 윤근혁 2023. 9. 2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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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_2] 강남 A초 단톡방 '교사사냥'에 담임교사 교체... 교장·교육청 방관하나

[교육언론창 윤근혁]

 초1 '겨울'교과서 60쪽.
ⓒ 교육언론창
정부가 제작, 검정한 초중고 교과서에 20번 이상 나온 '한반도기'가 그려진 배지(아래 사진)를 학생들에게 선물한 서울 강남구 공립 A초 B교사가 담임에서 물러나는 등 최근 큰 곤경에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교원사냥' 학부모 단톡방으로 알려진 'A초를 사랑하는 모임'(아래 A사모)이 올해 6월 15일부터 B교사를 저격하고 난 뒤 벌어진 일이다.

28일 교육언론[창]이 확인한 결과 A초에 첫 발령 4년차인 B교사는 올해 6월 7일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생들에게 독도가 표시된 한반도 배지를 1개씩 나눠줬다. 교육부가 실시하는 통일교육주간을 맞아 자기 반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기념품을 주려고 특별히 배지를 주문한 것이다. 이 배지는 한 교원단체가 서울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 몇 해째 신청 교사들에게만 배지를 발송해왔다.

노태우 정부가 제정한 '한반도기'가 김일성 찬양?
 
 B교사가 올해 6월 학생들에게 선물한 '한반도 배지'.
ⓒ 교육언론창
B교사에 대한 저격은 학생들에게 배지를 선물한 뒤 1주일 뒤에 뒤늦게 시작됐다.

같은 달 15일, A사모 단톡방에서 한 회원이 "호국보훈의 달에 전쟁 일으킨 쪽 배지를 주다니요. 기가 차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회원은 한반도기가 전쟁을 일으킨 쪽인 북한깃발이 아닌 데도 이같이 트집을 잡은 것이다. 한반도기는 1990년 노태우 정부 시절 제정한 남북평화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이후 1991년 일본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부터 2018년 평창올림픽대회까지 남북한 선수들이 참여하는 경기에서 선수와 응원단, 시민들이 꾸준히 사용해왔다.

이어 단톡방 저격 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번졌다.
 
 올해 6월 'A사모' 단톡방에 올라온 글.
ⓒ 교육언론창
 
 올해 6월 'A사모' 단톡방에 올라온 글.
ⓒ 교육언론창
 
 올해 6월 'A사모' 단톡방에 올라온 글.
ⓒ 교육언론창
"방공(반공)교육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건 형법에도 걸리고 아주 심각한 상황인데..."

"내 자식이 사상교육 당해서 김일성, 김정은 찬양하는 꼴은 못 보겠습니다. '한반도기'가 문제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잘 모르셔서 하는 말씀..."

"한반도 공산화를 위한 인공기 대용을..."

"적화통일 된 북한기를 나눠준 거나 다름없습니다."

한반도 배지 선물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표현하는 글도 올라왔다.

 
 올해 6월 'A사모' 단톡방에 올라온 글.
ⓒ 교육언론창
"편향되고 왜곡된 것을 가르치는 것은 분명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입니다. 더군다나 초등 교사가 보편화되지 않은 한반도 뱃지(배지)를 나눠 주었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네요."

심지어 한반도기 배지 배포를 놓고 '간첩' 얘기까지 나왔다. B교사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톡을 본 학부모와 학교관계자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도 간첩 잡혔는데요."

"간첩들이 너무 주요조직 여기저기서 활동을 많이 하는 듯요."

 
 올해 6월 'A사모' 단톡방에 올라온 글.
ⓒ 교육언론창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들씌우기'도 나왔다. "지능적이신 걸로 보아 전교조에서 요직에 있을지 어찌 압니까?"란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B교사는 전교조 요직은커녕 조합원도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이 단톡방 관련자들은 교육청에 한반도 배지 배포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다. 6월 15일 오후 1시 30분쯤 교육청은 A초 교장에게 상황을 확인했다.

그러자 이 학교 교장은 곧바로 B교사에게 한반도 배지 회수를 지시한 뒤, 엄중 경고했다. 그런 뒤 이틀 뒤인 6월 17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학부모 전체에게 발송했다.

 
 올해 6월 17일 서울 A초 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사과문.
ⓒ 교육언론창
"그 선생님께서는 한반도기 배지 배부 과정에서 한반도기의 의미나 사용에 대해 전혀 설명한 바는 없었습니다...학교장으로서 통일교육을 함에 있어 혼란과 오해의 여지를 드려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교장의 사과문 내용과 달리, 통일교육을 할 때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한반도기다. 교과서란 정부가 직접 제작하거나, 검사해서 정한 학생교육의 잣대가 되는 책이다.

교육언론[창]이 현직 초중고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현행 교과서를 분석해본 결과 초1 <겨울>교과서 8쪽, 초4 <도덕>교과서 98쪽, 초6 <도덕>교과서 99~100쪽, 초6 <사회>교과서(미래엔) 103쪽, 중2 <도덕>교과서(비상) 96쪽, 고등<생활과 윤리>교과서(비상) 204쪽 등 최소한 20여 곳 이상에 한반도기가 실려 있었다.

 
 초4 '도덕'교과서 98쪽.
ⓒ 교육언론창
 
 초6 '사회'교과서(천재교육) 109쪽.
ⓒ 교육언론창
국가교육과정에 맞춰 만든 교과서에 이 같은 한반도기가 실려 있는 것은 교사는 한반도기에 대해 교육할 수 있고, 학생들은 이를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위 교과서들은 모두 윤석열 정부 기간에 인쇄, 배포한 것이다. 

그런데도 A사모 단톡방의 일부 회원들이 색깔론을 펼치며 특정교사를 저격했고, 누구보다도 교육과정 사수에 앞장서야 할 A초 교장이 교사저격 앞에서 가장 먼저 무릎을 꿇은 셈이다.

이에 힘을 얻은 단톡방 회원들은 B교사를 더 몰아붙였다.

"저는 담임 박탈도 타당하다 생각합니다."

"정치중립성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징계 확실히 내려달라고 민원 내용에 다들 넣는 건 어떨까요?"

 
 올해 6월 'A사모' 단톡방에 올라온 글.
ⓒ 교육언론창
물론 다음과 같이 B교사에 대해 걱정하는 글도 있었다.

"아이한테 정치색 강요한 것도 아닌데 너무 몰아가는 것 같아서요. 선생님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제 아이는 담임 선생님 굉장히 좋아하고 휴일은 학교에 안가는 날이라 슬퍼하고 서운해 할 정도인데요."

그러자 한 회원이 다음처럼 가로막고 나섰다.

"아이가 좋아하고 따르는 선생님이라면 더더욱 염려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아하고 따르는 대상의 영향력은 더욱 크니까요."

결국 B교사는 지난 7월 4일 병가를 내고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단톡방 일부 회원들의 요구대로 담임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이 학교 복수의 교원은 교육언론[창]에 "그 단톡방 회원들은 한반도 배지를 학생에게 선물했다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특정 교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면서 "이를 막아줘야 할 학교 교장과 교육청이 이런 학부모의 저격행위를 방관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교사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교사들 "이러면 어느 교사도 못 버텨", 학부모 "일베 수준..."
 
 지난 26일부터 '교사사냥' 학부모 단톡방이 논란이 된 A초에 근조화환이 배달되고 있다.
ⓒ 교육언론창
이 학교 한 학부모도 교육언론[창]에 "해당 단톡방에는 학부모인지 의심되는 '일베' 수준의 사람들이 교원을 표적 삼아 공격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 왔다"면서 "B교사 또한 이런 작업의 희생자 중에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언론[창]에 "평창올림픽에서도 활용되고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한반도기 배지를 배포한 것에 대해 '간첩', '국가보안법 위반'이라 비판한 것은 무리한 주장들"이라면서 "단톡방 상황 등에 대해 확인하고, B교사를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뒤 세 달 반이 흐른 뒤 교사가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이렇게 뒤늦게 나서겠다는 것이다.

왜 A초 교장과 서울시교육청은 제때에 나서지 않은 것일까? 'A사모' 단톡방의 '교사사냥'과 이를 방관한 교육기관(장)에 대한 기사는 계속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전문언론 교육언론[창](www.educhang.co.kr)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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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언론창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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