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새만금 마지막 갯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바치는 송가

이마루 2023. 9.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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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목도한 사람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 는 갯벌에 깃든 생명을 사랑하고 지키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가을을 맞아 분홍색으로 변모 중인 칠면초 틈새로 황윤 감독이 앉았다.
「 PROFILE 황윤 」

인간과 비인간 생명들의 관계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독보적인 길을 개척하고 있는 영화감독. 근친교배로 태어난 동물원 호랑이 크레인의 생애를 담은 영화 〈작별〉(2001), 〈침묵의 숲〉(2004), 〈어느 날 그 길에서〉(2008) 등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관한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어왔다. ‘돈가스를 사랑할까, 돼지를 사랑할까’라는 질문을 생태적,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친밀하게 담아낸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는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7년이 넘는 작업 기간을 거쳐 올해 6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수라〉는 새만금 일대 전북 군산부터 부안까지 33.9km에 이르는 방조제를 세워 바닷물을 막고 갯벌을 매립하는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갯벌에 여전히 남은 생명들 그리고 그 생명을 지키려는 이들을 담았다. 한국영화 최초로 파타고니아 본사의 후원을 받은 〈수라〉는 여전히 관객을 만나며 장기 상영을 이어가는 중이다. 2023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갯벌은 다시 바닷물과 닿으며 염습지로 태어났다. 수라에 내리는 노을.

Q : 지난 6월 21일 개봉한 〈수라〉는 지금도 여전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토록 큰 응원을 받고 있는 영화를 감독의 언어로 소개한다면

A : 〈수라〉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새만금에 남은 마지막 갯벌에 대한 이야기지만 지역적인 것을 떠나 있는 곳이 어디든 우리에게 남아 있는 아름다움을 돌아봤으면 했다. 연대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서로 힘을 모아 아름다움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는 것 같다. 손잡고 함께할 때, 우리는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고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

Q : 사진 촬영을 위해 〈엘르〉 팀도 군산 미군기지 공항 옆에 자리한 수라를 찾았다. 여전히 바닥에 갯벌의 흔적이 남아 있고 염생식물이 무성해서 놀랐다. 도망치는 고라니, 끝없이 이어지는 가마우지 행렬도 봤다

A : 오늘 만난 곳은 수라에서도 육지와 가까워 바다와 육지의 중간, 염습지가 된 구간이다. 처음 수라를 찾았을 때는 이미 마른 땅을 보며 ‘이런 데를 왜 지켜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7년 넘는 제작기간은 이곳의 넘쳐나는 생명력을 목격하고 감탄하는 시간이었다. 수라에서 바닷물이 들어오는 구역엔 멸종위기 1급 저어새를 비롯해 수많은 도요새, 물떼새가 찾아오고,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구역에도 쇠제비갈매기, 검은머리갈매기를 비롯한 멸종위기 새들이 번식을 한다. 정부는 수라가 갯벌의 기능을 상실해 보존가치가 떨어졌으므로 신공항을 지어도 된다고 하지만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20년 동안 갯벌을 조사하고 기록해 온 시민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하 조사단)이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수라가 무려 50여종의 법정보호종이 살고 있는, 보전가치가 높은 갯벌임을 증명해 왔다. 수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해도 부족할 만큼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갯벌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드넓은 갯벌. 영화 〈수라〉 스틸컷

Q : 이곳에 직접 와서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A : 자연은 내버려두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직접 아름다움을 보고 느껴야 보호하고 싶은 마음도 들기 때문에 자연을 방해하지 않고, 손님으로서 예의를 갖추고 감상하는 생태관광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수라〉를 본 뒤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는다. ‘수라 보고 수라 가자’ 등 탐방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Q : 촬영을 위해 올빼미와 고니의 깃털, 검은머리갈매기를 형상화한 모자를 직접 가져왔다. 사실 〈수라〉를 보기 전에는 갯벌에 사는 조개나 게의 이야기를 짐작만 했지 새가 이렇게 많이 등장할 줄 몰랐다. 갯벌 생물과 철새, 인간의 삶이 이토록 얽혀 있다는 사실도

A : 나 또한 갯벌에 이렇게 많은 새들이 오는 줄 몰랐다. 한 종 한 종 알게 될 때마다 보물을 하나씩 알게 된 느낌이었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은 그야말로 ‘새덕후’다. 친밀한 사람은 형태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듯이 멀리서 새의 행동만 봐도 어떤 새인지 안다. 오랜 관찰과 깊은 애정이 선사하는 것에 대해 많이 배웠다.

Q : 안산 시화호에서 검은머리갈매기를 본 적 있다. 재미난 생김새 때문에 바로 이름을 외우게 되더라(웃음). 당신의 ‘최애새’라던데

A : 2018~2019년쯤 한창 갯벌이 매립되던 현장에 검은머리갈매기가 있었다. 번식기에만 머리가 까맣게 변하는, 수라에서 번식하는 새가 군산에서 가족과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주민처럼 느껴졌다. 검은머리갈매기나 쇠제비갈매기가 오지 못하는 땅이라면 나와 우리 아이도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Q : 2015년 작품 〈잡식가족의 딜레마〉에서도 농장 돼지인 ‘십순이’의 출산과 육아 과정을 엄마로서 자신의 모습에 대입하며 공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감정적인 전이는 어떻게 이뤄지나

A : 언제 사용할지도 모른 채 찍어 두기만 했던 출산 장면이 거기에 쓰였다(웃음). 모성애를 강조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사람 엄마와 동물 엄마는 다르지 않다. 출산하고 젖을 먹이고, 같이 껴안은 채 잠들고, 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저항하고 극진히 사랑하는 모습까지…. 내 여성성과 정체성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다르지 않으며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걸 확인한다.

영화 〈수라〉 스틸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제공)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의 아들 승준과 황윤 감독의 아들 도영이 함께 걷고 있다
해창갯벌에서 갓 태어난 쇠제비갈매기.
도요새의 군무. 황윤 감독은 이 황홀한 광경을 유부도에서 담았다.
검은머리갈매기의 비행.
게의 표정까지도 밀착해서 담았다.

Q : 〈수라〉 촬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5년이지만 2006년에도 새만금을 찾았던 적 있다. 영화 도입부에 계화도 갯벌에 손을 넣으며 ‘갯벌은 너무 부드럽고 따뜻했다’고 회상하는 부분에서 내가 경험한 갯벌에 대한 공감각적 감각이 완전히 환기되더라

A : 시각을 중요시하지만 실상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는 건 촉각과 후각인 것 같다. 2006년에 촬영한 그 장면은 내내 잊고 싶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당시 방조제 건설에 반대하던 어민 중 한 명이었던 류기화 어민이 예고없이 열린 수문 때문에 세상을 떠난 게 큰 트라우마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5년 조사단을 만나게 됐고 〈수라〉 편집을 시작한 시점에 과거의 촬영분을 떠올렸다. 내가 본 살아있던 갯벌, 조개가 꼬물대던 그곳이 얼마나 부드럽고 따뜻했는지…. 너무나 그립고 슬펐다. 그 감각을 전하고 싶었다.

Q : 당진, 서산, 태안 등 어린 시절을 서해안에서 보냈기에 갯벌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갯벌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드문 지형인지, 생태적 가치가 얼마나 큰지 이번에 알았다. 어릴 때 내가 봤던 갯벌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A : 영화 중반부, 새만금 잼버리 준비로 인해 황무지가 된 해창갯벌에 아들 도영이가 혼자 있는 장면이 나온다. 완전히 자갈처럼 말라버린 땅을 만지는 모습은 내가 만났던 2006년 계화도의 갯벌과 대조된다. 개인적으로 수라에 갈 때마다 오감을 활짝 연다. 개개비, 쑥새, 멧새 같은 여러 새 소리와 바다 냄새, 편서풍에 맞춰 춤추는 염생식물들…. 그 오감을 환기하는 영화가 되길 바랐기 때문에 도요새를 보러 서천 유부도에 갔을 때는 동시녹음 기사와 함께 애써서 녹음했다. 군무를 출 때 일어나는 날갯짓, 그 휘파람 같은 소리를 모두 담고 싶어서.

끝없이 날아가는 가마우지 무리. 자연과 공단 풍경이 공존하는 것은 군산의 특징이기도 하다.

Q : 아버지 오동필 단장과 마찬가지로 조사단으로 활약하고 있는 대학생 승준, 아직 중학생인 아들 도영. 2세대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만조 때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승준은 “어른들은 보고 느꼈던 것을 나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억울하죠”라고 하는데, 당신은 승준에게 “우리 도영이는 승준이가 본 걸 못 보잖아”라고 말한다

A : 〈수라〉를 본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왜 이토록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특별히 환경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아닌,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단체 관람 때도 반응이 뜨거웠거든.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야 말로 자기들이 볼 수 있었던 아름다움을 빼앗긴 당사자였다. 제한된 환경에서 뭔가 발산할 기회도 없이 살던 아이들이 굉장히 다른 아름다움을 봤을 때 즐거워하는 걸 보면서 이런 이야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영화를 보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배웠다는 5학년 남자아이, 먼 거리를 여행하는 도요새를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는 한 아이의 감상이 기억에 남는다. 나 또한 작업 때문에 지칠 때 알래스카에서 호주, 태평양을 건너 잠시 한국 땅에서 쉬었다가 러시아로 향하는 작은 도요새들을 떠올렸으니까. 날갯짓을 멈추는 순간 바로 망망대해로 추락할 여정에 뛰어든 새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 상황은 힘든 것도 아니지 싶었다.

Q : 〈수라〉에는 극적이게도 희망적인 구간들이 등장한다. 새만금호 수질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2020년 담수화를 포기하고 방조제를 열어 해수 유통이 일부나마 이뤄지게 된 것, 수라 갯벌의 생태학적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멸종위기종 쇠검은머리쑥새의 소리를 승준이 녹음에 성공하는 장면이다

A : 사실 승준이 녹음에 성공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갯벌을 지키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몇 번이고 새 소리를 찾아 떠나는, 그 마음이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영화를 보고 희망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끝내 쑥새 소리를 담아낸 승준의 집요함, 10년 동안 갯벌에서 바닷물을 기다렸던 흰발농게, 20년 동안 갯벌을 포기하지 않은 조사단 그리고 이 작업을 오랫동안 해온 나까지 모든 수고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Q : 관객으로서 시민단체의 필요성과 위력을 실감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위대함과 무력함, 어떤 것을 더 많이 느꼈을지

A : 예전에는 ‘예술가’와 ‘운동가’ 둘 중 어느 쪽을 자신의 정체성과 가깝게 여기냐는 질문을 받으면 고민했다. 지금은 둘 다 나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활동에도 참여하는 사람이다. 아티스트(Artist)와 액티비즘(Activism)을 합친 ‘아티비스트(Artivist)’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예술과 사회운동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고, 모두가 지구에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지금은 예술가뿐 아니라 선생님, 연예인, 요리사, 미술가, 공무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과 결부해서 환경운동을 해야 하는 시대라고 믿는다. 여기서 문득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차츰 풀어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 〈바베트의 만찬〉이 떠오르는데, 피켓을 들어야만 운동은 아닌 것 같다. 닫혀 있던 감각이 열리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에 동참하게 된다면 그게 운동이지 않을까.

바다. 방조제는 바닷물을 영영 막을 수 없다. 갯벌의 생명력도.

Q :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 영화를 후원한 단체들을 눈여겨보게 됐다. 특히 포드와 파타고니아의 이름이 눈에 띄더라

A : 2002년부터 환경 후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포드의 후원금이 〈수라〉의 시드 머니가 돼 줬다. 다른 사람을 설득할 만한 촬영본이 없었고 환경단체가 아닌, 개인 창작자임에도 이례적으로 후원을 받았다. 파타고니아는 영화가 완성될 무렵 〈수라〉를 힘차게 밀어줬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수라〉를 직접 본 파타고니아 코리아 사회공헌팀장이 무조건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미국 본사에도 후원을 요청했고, 결과적으로 파타고니아 본사로부터 지원받은 최초의 한국영화가 됐다. 덕분에 드론으로 담은 겨울의 갯벌 신을 비롯해 추가 촬영과 사운드 작업, 편집을 보강할 수 있었다. 파타고니아는 이미 수년 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활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영화에 해창갯벌을 지키는 장승들이 나오는데 그중에 파타고니아 장승이 있는 이유다(웃음).

Q : 도요새가 자신의 조상이라고 믿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새만금간척사업으로부터 갯벌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는 모습, 시민들이 갯벌에 세운 장승들이 나오는 장면은 우리가 초자연적 존재를 존중하던 시기를 되돌아보게 한다

A : 처음에는 나도 쓰러진 장승을 다시 세우는 사람들을 보며 이 부질없는 짓을 대체 왜 하나,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나중에는 이해되더라. 장승을 일으켜 세우면서 내 마음도 세우고, 누군가가 또 가져다둔 장승을 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며 견디는 것이다. 잼버리 대회를 앞두고, 장승을 다 치우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끝까지 사수해 냈다. 2003년, 새만금 방조제 건설에 반대하는 네 명의 성직자가 삼보 일배로 부안~서울까지 305km를 65일에 걸쳐 올라와 사회적 경종을 울린 적 있는데 그때 함께했던 문규현 신부님을 필두로 올해 장승제를 크게 지냈다. 바다가, 갯벌이 돌아오기를 이 장승들과 함께 기다리는 것이다.

Q : 지난 8월 잼버리가 파행으로 치달으며 새만금이 크게 주목받았다. 대자연을 거스리려는 행동이 얼마나 무용하고 백해무익한지 보여준 한편, 지역 자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운 건 아닌지

A : 1991년에 시작한 이후 30년 넘게 지지부진한 이 사업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이런 무분별한 매립을 해도 되는 것인지 반성할 수 있는 큰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져줬다고 생각한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해창갯벌은 바지락과 생합이 쏟아져나오던, 어민들의 삶에도, 생태적으로도 너무나 중요한 갯벌이었다. 방조제가 바다를 가로막아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마른 것처럼 보이지만 수만 년간 그래왔듯 여전히 바닷물을 기다리고 있던 갯벌, 수많은 생명들을 품고 살던 갯벌을 2주의 행사를 위해 매립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가.

Q : 최근 공식석상에서 종종 착용 중인 넥커치프는 스웨덴 잼버리 단원으로부터 받았다고

A : 본격 철수가 시작된 후 잼버리 단원들에게 원래 그 장소가 어떤 곳이었는지 〈수라〉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서 홍대입구에 있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대관하고 SNS에 초대장을 띄웠다. 밤새 불과 몇 시간 동안 스웨덴, 미국, 독일, 한국 등 수백명의 단원들이 영화를 보겠다고 신청했다. 하지만 단원들의 일정 때문에 천안에 머물던 스웨덴 단원, 서울 마포구에 있던 스위스 단원들의 관람이 성사됐다. 관람 뒤 나를 꼭 안아주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도 계속 생각하겠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영화는 정말 국경을 초월한 예술이고, 사랑은 만국공통어라는 것을. 방송과 언론을 통해 <수라> 소식을 접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상영회를 열고 싶다고 sns를 통해 끊임없이 연락이 오고 있다.〈수라〉를 통해 세상 곳곳과 접속되는 경험이 나도 놀랍고 신기하다. <수라> 와 수라갯벌이 살 수 있게 만물이 도와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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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주제의식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A :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줘야 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비난하고, 어떤 의무감을 느끼게 하기보다 감동을 주고 싶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한번 이곳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헤어날 수 없을 것임을 믿었기에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크게, 새들의 생활이나 게들의 모습은 더 상세하게, 사람의 시점에서 보면 질퍽질퍽한 땅처럼 보이는 갯벌을 하늘을 나는 새의 시점으로 볼 수 있도록 드론 촬영도 많이 시도했다. 갯벌 촬영은 만만치 않다. 밀물과 썰물 때도 맞춰야 하고, 하얗게 얼어붙은 겨울 갯벌을 담고 싶어 욕심을 내다가도 겨울바람이 너무 강해 포기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포기하니 촬영감독이 혼자 드론을 가지고 나 몰래 갯벌로 갔다. 밤새 갯벌에서 ‘차박’을 하고, 아침해가 뜨는 순간 드론을 띄워 담은 것이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신안갯벌의 모습이다. 그날 드론은 결국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추락했지만, 산 넘고 물 건너 드론을 찾아와서 마지막 장면에 넣을 수 있었다.

‘평화바람’ 활동가들이 만들어 선물해 준 검은머리갈매기 모자를 쓴 황윤 감독. 번식기에만 머리가 까매지는 이 갈매기는 감독의 ‘최애새’다.

Q : ‘비단에 새긴 수’라는 뜻을 가진 수라의 이름을 갯벌에 붙인 것은 오동필 단장이다. ‘풀 한 포기만 남아 있어도 갯벌이다. 갯벌이라는 이름을 놓지 않으면 바닷물이 들어오는 순간 언젠가 갯벌로 돌아갈 것’이라는 강력한 그 믿음을, 당신을 얼마나 믿었나

A :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다. 희망을 갖기 위해 일부러 하는 말이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실제로 수라갯벌에서 바닷물을 기다리며 10년 동안 살아남은 흰발농게를 발견했을 때 동필씨의 말이 정말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절망을 믿는 것보다 희망을 믿는 것이 낫다는 것, 희망을 노래하면 정말 그런 세상을 만나기도 한다는 걸 살아가면서 여러 번 느꼈다.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을 주문처럼 이야기해야 한다. 그게 아무리 낭만적이고 상투적으로 느껴지더라도.

Q : 〈수라〉의 카메라가 담은 장면 중 서로 집게발을 부딪히며 놀던 작은 게들, 기를 쓰고 바닷물을 기다리던 조개들의 모습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로드 킬 문제를 조망했던 초기작 〈어느 날 그 길에서〉(2008)에서도 뱀, 두꺼비 같은 양서류의 죽음까지 담았던 적 있다. 생명에 차등을 두지 않겠다는 의도인가

A : 인간적인 관점을 벗어나려고 한다. 사람들은 ‘길’이라는 단어에서 만남과 여행, 연결, 경제 성장 등 긍정적인 키워드를 떠올린다. 그러나 야생동물에게 지금의 길은 단절이자 고립이고, 종종 죽음일 뿐이다. 인간이 만든 10cm짜리 낮은 턱도 두더지에게는 낭떠러지나 다름없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뱀도 매끄러운 옹벽은 오르지 못하며, 도로 위에서 수많은 두꺼비와 개구리가 그야말로 먼지가 될 때까지 자동차 바퀴에 깔리고 또 깔려 사라진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도 동물원의 호랑이 같은, 포유류에 감정을 이입했다. 여러 생명을 만난 지금은 예전에 끔찍하게 싫어했던 벌레를 비롯한 모든 생명에 연민을 느낀다. 〈수라〉를 본 뒤 조류공포증이 완화됐다는 환경단체 활동가를 만난 적도 있다.

Q : 창작자이자 기록자로서 나의 강점은

A : 끈기와 체력 그리고 약간의 무모함. 다큐멘터리 촬영은 만만치 않다. 장비도 무겁고, 오랜 시간을 야외에서 대기해야 하며, 쥐 죽은 듯 지루한 몇 시간을 견뎌야 하기 일쑤다. 밖에서 고생하다가 또 방대한 기록을 하나하나 살피며 편집할 때면 책상 앞에 지독하게 오래 앉아 있고(웃음). 그러나 내가 어떤 순간을 목격했다는 것, 그들이 내 앞에 기어코 나타나줬다는 것, 그리고 이를 기록해 영화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나의 일을 사랑한다. 아름다운 것들을, 정말 나는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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