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안에서는 보지 못한 세상

김민정 2023. 9. 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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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환자와 새로이 관계를 열어가는 방문간호

[김민정]

나는 방문간호를 같이하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시작한 지도 어느새 몇 년이 되어가는데, 이런 글을 쓸 때면 항상 처음 방문간호를 갔을 때가 먼저 떠오른다.

병원에 방문하는 사람은 대리처방을 받으러 온 환자의 자녀였다. 그분은 사소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어느 날 원장님께서 이분 집으로 같이 왕진을 가보자고 제안했고, 방문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기에 동행하게 되었다. 집은 오르막길 중턱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였다. 3층까지 걸어 올라가 집 안에 들어갔을 때 처음 받은 느낌은 숨 막힘이었다. 작은 투룸 정도 되는 공간을, 환자를 돌보기 위해 필요한 각종 물품과 기저귀, 패드 등이 꽉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와상 상태(스스로 거동이 어려워 상당 기간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의, 의식도 명료하지 않아 전적인 돌봄이 필요한 분이 누워 계셨다. 병원에 한번 가려면 구급차를 이용해야만 했기에, 비용 부담이 꽤 드는 상황이기도 했다.

필요한 처치를 하고 나와 생각해보니 나도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여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집에 가보지 않았더라면 평생 알 수 없었을, 대상자가 처한 환경의 중요성 역시 새삼 깨달았다.

이전에 다른 병원에서 일하며 알코올 문제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분들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도대체 왜 계속 병원에 올까?'라고만 생각했지, 그 이상은 보거나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방문간호를 다니며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다시금 고민하고 있다. 그렇게 병원 너머의 세상을 궁금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방문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사례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
ⓒ 김민정
 
지역사회 의료의 빈자리, 소외된 사람들

코로나 유행을 거치며 '요양병원에서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시설에서 학대를 받으시면 어떡하지?' 등의 우려나 비용 문제로 집에서 노인을 모시는 사례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거동이 어려운 사람이 병원에 가기란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방문진료를 수행하는 기관은 전국적으로 그 수가 매우 적다. 그렇기에 보호자가 대리처방을 수년간 받아오는 경우가 많다.

환자의 상태를 살펴볼 때 직접 방문하여 보는 것과 진료실에서 보호자에게 설명을 듣는 것 사이의 간극은, 보호자가 진료실에서 얼마나 상세히 설명하는가와는 관계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필요한 처치 역시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가 약물인데 너무 많은 양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나 전반적인 상태, 식사량이나 증상에 따라 약물의 종류나 양이 조정되어야 하지만 그대로 똑같은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게 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치아 관리가 잘 안되어 통증으로 식사가 불편하거나 피부 상처가 욕창인지 잘 알지 못해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을 때 의료적인 처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방문간호 과정에서 많이 보았다. 그렇게 돌봄의 구체적인 필요를 확인하고 조정하는 것도 방문간호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병원에 왕복하기 어려운 많은 사람은 고령에 다양한 질환을 갖고 있기에 방문간호를 비롯한 더 많은 보건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이런 분들은 119를 불러야 할 정도의 위급한 상황이 되어서야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위급한 상황을 겪고 난 후에는 더이상 기능을 회복하기 어렵다. 예방과 일차 의료를 말하지만 보건의료 시스템에서 소외당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더욱 어려운 삶의 조건에 놓여있는 사례가 너무 많다.

좋은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매주 방문하는 집이 있다. 이곳엔 보호자와 어르신 한 분이 산다. 주거, 청결, 생활비, 보호자의 질병 등 다양한 방면에서 지원이 필요한 곳이다. 사실 어르신의 건강은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별일은 없는지 확인하고, 어르신 계신 곳 주변이라도 청소해 볼 요량으로 매주 방문하고 있다.

그렇게 계속 만나다 보니 관계도 조금씩 생기고 변화되는 부분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힘든 상황에서도 꾸준히 일하는 요양보호사 선생님 덕에 어르신의 돌봄 문제는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대변 처리와 상처 소독을 마치고 가려던 차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우셨다. 나보고 참 비위가 좋다면서 선생님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자기도 일을 하지 못했을 거라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니 요양보호사가 된 후 힘든 일도 마다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처음 이 집에 오게 되셨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나이도 어린 간호사가 와서 아무렇지 않게 어르신을 살피고 청소나 대소변 처리도 마다하지 않고 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으셨다고 하셨다. 이런 낯부끄러운 진심을 말씀해 주시다니 감사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터라 마음이 통했나 보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돌봄을 할 수 있었던 건 이전에 일했던 대형 병원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병원에서는 늘 하는 일이었기에 장소만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그렇지만 병원에서 일할 때의 나는 그렇게 좋은 간호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신규였기에 일이 서툴기도 했지만, 간호사로 일하면서 어려움이 너무나도 컸기에 환자와 보호자를 잘 살피지 못했다.

가끔 방문을 다니다 보면 보호자들이 병원에서 겪었던 마음 상했던 일들에 대해 하소연하실 때가 있는데 왠지 지난날의 내 모습인 것 같아 뜨끔할 때도 많다. 병원에서 일했던 기억이 부끄럽게 다가오기도 하고 그냥 잊어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밖에 일할 수 없었나 억울한 마음도 든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쌀쌀맞게 대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럴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던 병원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같은 일을 하지만 전혀 다른 경험을 하는 지금 상황이 참 씁쓸하다는 생각도 든다. 환자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간호사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병원이, 예외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보편화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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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민정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이자 간호사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9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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