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인쇄 중 나타난 악질형사

김삼웅 2023. 9. 2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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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다음과 같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때에 천도교회에서 보성사 인쇄소와 보성소학교·중학교와 보성 전문학교를 다 경영했었습니다.

1차로 인쇄된 것을 각계 동지들 7, 8명에게 2천매에서 3천매씩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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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잊혀진 선각자, 묵암 이종일 평전 29]

[김삼웅 기자]

 
 묵암 이종일 선생
ⓒ 묵암 이종일 선생 기념사업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당시 연령)

△ 천도교 – 손병희(59)·권동진(59)·최 린(42)·오세창(56)·임예환(55)·권병덕(53)·이종일(62)·나용환(56)·나인협(49)·홍기조(60)·김완규(44)·이종훈(65)· 홍병기(51)·박준승(54)·양한묵(58)
△ 기독교–이승훈(56)·박희도(42)·최성모(47)·신홍식(48)·양전백(51)·이명룡(47)· 길선주(51)·이갑성(31)·김창준(31)·이필주(51)·오화영(40)·박동완(35)·정춘수(45)ㅍ신석구(45)·유여대(42)·김병조(44)
△ 불교 – 한용운(41)·백용성(56)

33인의 민족대표와 함께 3·1혁명을 주도한 인물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천도교 – 박인호(66)·노헌용(53)·이경섭(45)·한병익(20)·김홍규(45)
△ 기독교 – 함태영(48)·김지환(29)·안세환(33)·김세환(32)
△ 교육계 – 송진우(31)·현상윤(28)
△ 문 인 – 최남선(31)
△ 무 직 – 임규(51)·김도태(29)·노정식(30)
△ 학 생 – 강기덕(31)·김원벽(27)

독립선언서의 인쇄는 2월 20일 밤부터 인쇄를 시작했다. 이종일이 책임을 맡았다.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에서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하마터면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될 뻔했다. 인쇄 도중에 총독부 악질 한인 형사가 낌새를 맡고 인쇄소 안으로 들어왔다. 손병희의 부인 주옥경의 증언이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때에 천도교회에서 보성사 인쇄소와 보성소학교·중학교와 보성 전문학교를 다 경영했었습니다.

지금 수송동 불교 총무원 자리 그 운동장 맨 끝에 2층 건물로 된 보성사 인쇄소가 있었는데, 인쇄 시설은 지하실 같은 그 건물의 아래층에 있었습니다. 이종일 씨라는 분이 인쇄를 맡아서, 낮에는 다른 인쇄물을 취급하고 직공들을 일찍 돌려보낸 다음, 밤에는 사방 문을 걸어 잠그고 불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가리고 인쇄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신승희라고 하는 유명한 한국인 악질 형사에게 걸려 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신승희가 우리 보성사 주위를 순찰하다 보니, 밤중에 인쇄하는 소리가 달가닥거리는데, 사방 문에 불빛이 보이지 않으며, 다만 공기통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을 두드리니 이종일 씨는 그만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어디다 인쇄물을 감출 수도 없고 당장 악마 같은 그 형사는 문을 벗기라고 소리소리고, 어이구, 한울님 맙소서, 이젠 만사가 다 글렀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합니다.

그랬더니 그 신승희가 들어와서 한 번 인쇄소 안을 훑어보자마자 모든 일이 탄로나고 말았었습니다. 그래서 이종일 씨는 그만 그 신승희의 발 밑에 엎드려, 제발 당신도 우리나라 백성이면 독립을 원하는 마음은 같을 게 아니냐고. 하루만 기다리면 내일은 다 세상에 알려질 일이니 그저 오늘 하루만 못 본 것으로 해 달라고 애걸복걸했답니다.

그리고 여기 잠시만 기다리고 계시면 내 잠깐 우리 의암 선생을 뵙고 오겠다고 하고는 우리 집으로 달려오지 않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그 양반은 즉시로 서슴지 않고 오천 원 뭉치를 이종일 씨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신승희가 오천 원 먹고 눈을 감아주었습니다. (주석 70)

독립선언서의 인쇄 책임을 맡았던 이종일의 기록이다.

오늘부터 독립선언서를 보성사에서 인쇄하기 시작하다. 장효근·김홍규·최남선·신영구와 내가 좁은 인쇄소에서 문을 굳게 닫고 찍기 시작했다.

(25일) 2만 5천매를 우선 1차로 인쇄완료하여 천도교본부로 운반하다.

(26일) 1차로 인쇄된 것을 각계 동지들 7, 8명에게 2천매에서 3천매씩 배포했다. 이갑성(李甲成)에게 2천 5백매가 전달됐다. 손녀 장옥(璋玉)도 한몫 거들다.

(27일) 오늘까지 2차로 1만매를 더 인쇄하여 천도교당으로 가지고 가다가 파출소(경찰관)에게 검문당했으나 족보라고 속이고 겨우 운반했다. 어제 대한인 형사는 의암과 상의하여 겨우 매수할 수 있었다. 수천원을 덥석 집어주니 겸연쩍게 물러갔다. 오늘 갑자기 3월 1일 명월관지점 태화관으로 만세시위운동의 장소를 변경했다.(『묵암 비망록』, 1919년2월 20~27일자)

주석
70> 의암 손병희 선생기념사업회간, 『의암 손병희선생전기』,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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