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십리해변, 끝없이 펼쳐지는 곳... 외세침략 없던 '평일도' 입니다

완도신문 정지승 2023. 9. 2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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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숲, 해송림, 칠기도, 소랑도 자원 많아... 섬 이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완도신문 정지승]

 평일도
ⓒ 완도신문
평일도를 스캔하며 차를 타고 돌아본다. 전남 금일도를 간다며 나섰던 것인데, 섬에 와보니 이곳은 금일도가 아니였다. 약산 당목항에서 뱃길로 20여 분 후 당도한 섬은 금일읍이다.  금일도가 아닌 평일도다.

익히 들었던 소랑막걸리 맛이 몹시도 궁금했던 터라 명사십리해변을 지나고서부터 유독 소랑대교에 눈길이 갔다. 소랑대교는 아침 해를 바다가 품고 있는 것을 형상화해 디자인됐다고 한다. '물결이 잔잔하다'는 의미를 붙인 소랑도의 다른 뜻은 소라의 이 지역 방언이라고도 한다.

바다를 보고 있으니 '소랑소랑' 물결이 잔잔하다. 소랑도 이름에 어울리는 날씨다. 어느 섬을 가더라도 이름난 막걸리 하나쯤은 꼭 있다. 섬의 자연조건이 누룩을 발효시키는데 탁월한 모양이다. 술맛의 절반 이상을 물맛이 좌우한다는데, 척박한 섬마을에 술을 빚을만한 맑은 샘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평일도를 건성으로 둘러보다가 소랑대교 건너서 마을회관 앞에 이르렀다. 벽에 붙은 주조장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무언가에 홀린 듯, 골목 어귀로 이끌려 반쯤 열린 대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조장이라고 부르기엔 어설픈 동네 점방이다. 뱃일하고 돌아와 삼삼오오 앉아서 잔 기울이며 하루의 시름을 달랠만한 그런 장소다. 

적막하다. 한참 후에야 인기척이 느껴져서 장난끼가 발동했다. "주모 계시오?" 하며 소리를 질렀더니, 나이 지긋한 노인이 "무슨 일이냐"며 마저 못해 가만히 방문을 연다. 

"막걸리 다섯 병만 달라"는 외지인의 말이 반가웠던지 잠시 기다리라며 술독 있는 방 안으로 급히 들어간다. "달그락달그락" 한참을 옹기 술독에서 플라스틱 바가지 긁는 소리가 요란하다.

기다리기가 지루할 때쯤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구부정한 노인이 쩜팔(?) 생수병에 담긴 쌀뜨물 같은 술을 힘겹게 건넨다. 

"고향 찾아 오셨수?"하며 낯선 얼굴들을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어디 동네서 사셨수?" 다시 물으신다. 가는 길 멈추고 이웃 어르신이 주조장을 기웃거리다가 한참을 쳐다보며 마냥 웃으신다. 사람 소리가 반가웠던 모양이다. 외지인의 출입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인가 보다 생각됐다. 

저 너머로 명사십리해변, 끝없이 펼쳐져
 
 '외세의 침략을 한 번도 받지 않아 평안한 곳'이라는 이름의 평일도
ⓒ 완도신문
소랑도는 임도 따라 섬 한 바퀴를 도는데, 대략 3~40여 분. 중턱에 쉼터가 있고 산길이 오밀조밀하다. 언덕 내려오는 길에 폐교 하나가 눈에 띈다. 정원수 주변으로 둘러친 돌담이 정겹다. 육지에서 살아갈 날을 꿈꾸던 섬마을 아이들이 어느새 머릿속에 그려졌다. 저 너머로 평일도의 명사십리해변이 끝없이 펼쳐졌다. 

'외세의 침략을 한 번도 받지 않아 평안한 곳'이라는 이름의 평일도(平日島)는 금일읍의 본 섬이다. 보통의 섬마을은 섬 이름과 행정구역의 명칭이 같은데, 평일도는 금일면이 읍으로 승격된 이후에도 옛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본 섬의 이름이 점점 잊히고 있다.

평일도, 금당도, 생일도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당의 '금'자와 생일과 평일의 '일'자를 따와 금일면으로 통합됐다가 1980년 금일읍으로 승격했다. 그러면서 행정구역상 금일읍의 도서명 중 하나인 '평일도'가 '금일도'로 잘못 불리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금일도로 불리면서 계속해서 논란이 됐으나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평일도는 리아스식 해안선이 복잡한 지형구조로 수산업이 발달했다. 전국 70% 다시마를 생산하는 산지로 알려졌다. 소재지 상업지구 간판이 다시마 모텔, 다시마 주유소다. 이곳 주민들은 다시마와 그만큼 친숙하다는 뜻일 게다. 해안선의 길이 51km 정도 둘레에 모든 게 집약된 느낌이다. 명사십리해변, 용굴, 투명섬, 해당화 공원, 동백숲, 해송림, 칠기도, 소랑도 등 가꾸고 보존해야 할 자원이 많다.

언젠가 이곳 출향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글을 쓴다는 그에게 고향에 관한 책을 몇 편이나 냈냐고 물었더니, 뜬금없이 고향을 찾기가 두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성공한 사람은 귀향하지 않는다나? 얼마나 삶이 팍팍하고 힘들었으면 섬으로 다시 왔을까? 라는 말이 나올까봐 두렵다는 것이었다. 고향이란 늘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던 그의 말이 생각난다. 

기억하고 있는 고향 이야기를 하나 부탁했더니, "월송리 불등은 연애 불등"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동백리와 월송리 사이 고갯마루를 '불등'이라 불렀다.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해송림 끝 지점 햇볕이 잘 들어 옴팍한 곳에서 잠시 하굣길에 쉬어가곤 했다며 그때를 추억했다.

섬을 다녀온 지 몇 달 되지만 소랑분교와 송림 우거진 월송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가 취재를 부탁했던 평일도의 풍광을 노래한 월송가를 끝내 찾지 못하고 글을 마치는 기분이 영 찜찜하다.

낼모레면 추석. 고향을 찾는 이들도 많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더욱 고향이 그리워지는 때이다. 보름달 차오르는 월송리 해송림은 한껏 아름다움을 뿜어낼 것이다. 휘영청 밝은 달빛을 누리며 어느 누군가는 '월송가' 한 자락 뽑아내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가져본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 노래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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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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