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학생을 만나면서 삶이 달라졌어요"

최미향 2023. 9. 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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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인형놀이 구미옥 대표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미향 기자]

그녀는 자신이 비행청소년이었다고 당당히 말했다. 어른 입에서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는 함께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십자수와 뜨개질을 하는 비행청소년. 상상만으로도 재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막내딸이 신분세탁(?)을 위해 충남 서산으로 입성하기까지 주식회사 인형놀이 구미옥 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공예의 길로 들어선 지 17년 차 됐습니다. 내 새끼 꾸며주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도움반 친구의 한 마디 말 때문에 '아, 내가 갈 길이 이곳이구나' 맘 먹고 지금껏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 학교나 센터 등에서 강사활동을 하는 구미옥 대표 .
ⓒ 최미향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학교나 센터 등에서 강사 활동을 하는 구미옥입니다. 강의 내용은 주로 인형만 10년째 했구요. 요즘은 인형 외에도 생활공예를 하는데요. 기후 위기로 인해 일상생활 속 탄소중립 기여 차원에서 업사이클링 공예수업도 같이 해요. 올 상반기에는 15군데, 하반기에는 정해진 곳만 11군데 됩니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 외 교육 기부를 5년째 하고 있고 서산희망쌀나눔봉사회 회원으로 6년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쁜 와중에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곰돌이 남편 덕분인 것 같습니다(웃음).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거든요. 결혼 14년 차지만 여전히 깨 볶아요 우리(웃음)."

- 그렇다면 가족 얘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네요.
"저는 경남 진주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저희 부모님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믿음으로 새벽 4시 전이면 일어나셨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으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신 분이시죠. 자식들에겐 매는커녕 험한 말 한 마디도 않으신 분이셨어요. 그리고 봉사대장님이기도 했죠. 이장, 방범대, 의용소방대 등. 봉사하면서 간식으로 받은 초코파이 등을 자식들에게 툭 던져 주시던 츤데레(까칠하면서도 은근히 잘해줌)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 같은 남자를 동경했고 그 대상자가 바로 저희 곰돌이(남편)를 만난 겁니다. 청소년 시절 나름 힘든 시기였던 터라, 청년기에 딱 기대고 싶은 남자를 물색한 건지도 몰라요."

- 얼만큼 힘든 시기를 겪었게요?
"청소년 시절을 생각하면 좀 부끄러워요. 시골에서 풍족하지 못하게 살아 늘 불만이었죠.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못하다 보니 사춘기를 격하게 치렀습니다. 사람들은 비행청소년이라고 하죠. 학생주임은 큰아버지, 진로상담실은 저의 전용방, 교무실 앞 골마루는 저의 거실. 그래도 하나는 지켰어요. 남을 해하거나 법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았죠.

중학교는 간당간당 졸업 후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1학년 2학기 때였는데 도저히 저의 욕구를 채울 수 없겠단 생각을 했어요. 학교를 자퇴하고 알바를 시작했죠. 17살부터 독립하여 지냈어요. 추운 겨울 버스비가 없어 왕복 2시간 거리를 걸어서 전기업체 경리로 한 달을 다녀 첫 월급을 탔고 그 돈으로 혼자 경제적인 독립을 했었죠.

어릴 적 어머니는 말씀하셨어요. '책가방 내려놓으면 그땐 알아서 해결해야 된다' 정말 그랬어요. 취직 후 버스비 달랬더니 어머니께선 딱 자르셨죠. 책가방 내려놓았으니 안된다고. 너를 낳았으니 쌀과 김치는 주겠다면서요. 진짜 딱 쌀과 김치만 주신 거 있죠."
 
▲ 구미옥 대표 작품 .
ⓒ 최미향
 
- 정말 기대고 싶은 분이 필요했겠습니다(웃음). 서산으로 오게 된 것과 인형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친하게 지내던 언니네 부부가 서산에 연고를 두고 있어 어느날 서산으로 훌쩍 떠나왔어요. 경상도를 떠나고 싶었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일명 신분세탁이랄까요(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농담인 건 아시죠? 서산에서 어릴 적부터 취미로 해오던 십자수와 뜨개를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테디베어 만드는 곳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끌리듯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하시면서 힘들거나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일까요?
"힘든 일은 성인 수업이죠. 감정노동이 제일 힘들어요. 반대로 보람 있는 일은 서산교육지원청이나 그밖의 센터에서 인형만들기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만난 학생 때문에 제 삶이 바뀐 거예요. 자폐 학생이었는데요. 자기가 만든 인형을 완성하면서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가슴이 울컥하더라고요. 지금도 생생해요. 그 덕분에 이 자리에 서 있게 됐어요."
 
▲ 구미옥 대표 작품 .
ⓒ 최미향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매 전시회를 했었어요. 언니와 함께 특별전요. 손재주 좋은 언니는 태교로 발도르프 인형을 만들기 시작해서 강사 과정까지 완료했거든요. 그 당시 형부 사업이 점점 힘들어졌나 봐요. 제가 서산에 있으니 이곳으로 이사를 오더라고요. 언니가 일을 해야 하는 상태였죠.

그때 방과 후 강사로 활동하고 있던 저로 인해 자연스럽게 언니도 같이 일을 하게 됐어요. 지금은 다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너무 행복해요. 이제 남은 목표는 장애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거예요. 모두가 함께 행복한 그날까지 우리 행복한 여정 같이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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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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