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난맥상]② “속도·층수 높인다” 재건축 살린 신통기획… 官 주도 사업에 일부 주민 반감도

조은임 기자 2023. 9. 2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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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신통기획 2년간 19개 단지 신청, 17곳 완료
대치미도·여의도시범 알짜단지 합류에 탄력
압구정·여의도 일대 재건축 신통기획 업적 평가
추진 과정서 조합원 의견 수렴 미비해 갈등도
압구정3구역·잠실5단지 등 일부선 철회 나서기도

이른바 ‘착한’ 재건축·재개발은 없을까. 도시정비사업은 정비구역 지정, 조합 설립 인가, 사업인가, 시공사 선정 및 착공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과 업무대행사, 시공사는 물론, 조합원간 ‘이권 다툼’이 자주 발생한다. 사업 지연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 몫이 된다. 분쟁을 줄이고 속도를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재건축·재개발의 현주소를 살펴본다.[편집자주]

오세훈표 주택정책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의 시작은 재개발이었다. 2021년 10년 만에 서울시에 재입성한 오세훈 시장은 기존의 ‘공공기획’에서 ‘속도’를 부각시켜 이름을 바꾼 ‘신통기획’을 자신의 주택정책 1호로 내세웠다. 신통기획은 민간이 주도하는 재개발·재건축 초기 단계부터 조합원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빠르게 추진하는 제도다. 신림1구역을 직접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해 12월 21곳의 후보지 선정까지, 오 시장의 ‘신통기획’은 재개발 시장에서 순항했다. 공모 형식으로 진행된 신통기획에 참여하겠다고 손을 든 재개발 사업지만 100곳이 넘었다.

재건축 ‘신통기획’은 시작이 달랐다. ‘아파트에 살게 해주겠다’는 것 만으로 재건축 조합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급한 쪽은 서울시였다. 정비사업으로 2030년까지 총 50만가구를 공급한다고 이미 공표했다. 그때 오 시장이 내놓은 카드는 ‘35층 룰’로 대표되는 ‘층수규제 완화’였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인 2014년 35층 룰, 한강변 15층 제한 등 층수제한이 도입됐다. 층수제한으로 인해 사업성이 떨어지자, 서울시 내 재건축 조합들은 일제히 버티기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행정절차 간소화도 재건축 ‘신통기획’이 가진 강점 중 하나였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이 통상 5년이었다면 2년까지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뉴스1

한 정비사업 전문가는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을 버티면서 맷집이 좋아진 재건축 조합들은 확실한 혜택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재건축에서 만큼은 결국 관(官)이 설득해 가능하게 된 것이 신통기획”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신통기획 1호’ 재건축 단지를 확보하기 위해 주민 사전설명회까지 열었다. 대상지 모집 방식도 재개발과 달리 수시 모집으로 진행됐다. 대치동 한보미도맨션(대치 미도아파트)과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첫 설명회 대상이었다. 서울시는 공익성과 함께 ‘사업성’을 살릴 수 있다는 데 주력했다. 강남 알짜단지로 꼽히는 대치 미도아파트가 ‘재건축 신통기획 1호’로 나서면서 재건축 시장에서도 신통기획이 탄력을 받게 됐다. 서울시가 설명회에서 35층 이상으로 층수를 상향하고, 용적률도 최고 300%까지 늘리는 방안을 제안해 주민 90%가 찬성했다. 여의도 시범, 압구정 3구역 등 대어(大魚)들도 신통기획에 합류했다. 19일 현재 서울시에 신통기획을 신청한 재건축 사업지는 19곳, 완료된 곳은 17곳, 진행 중인 곳은 2곳이다.

최근 급물살을 탄 ‘압구정 재건축’은 신통기획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된다. 1970~80년대 지어진 압구정2~5구역은 지난 7월 신통기획을 통해 최고 70층, 용적률 300% 등을 적용하게 됐다. 이에 압구정 2구역과 4구역은 각각 지난 6월, 이달에 디에이건축 컨소시엄을 설계사로 최종 선정했다. 압구정 5구역도 지난 7월 설계공모공고를 내고 설계사 선정 준비에 착수했다. 서울시는 또 지난 13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고, 압구정 재건축 구역(1~6구역)을 기존 아파트지구에서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전환했다. 건축물의 용도·밀도·높이 규제를 완화한 것인데, 향후 비주거 용도, 주상복합아파트도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여의도 재건축’이 속도를 내게 된 것도 신통기획 덕을 봤다는 분석이다. 여의도 16개 단지 모두가 재건축 사업에 돌입했는데, 최대 단지인 시범은 지난해 11월 신통기획안이 확정됐다. 최고 65층에 용적률 351%가 적용됐다. 여의도 시범은 내년 상반기 시공사 선정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가 설계안을 제시하고 이에 부합한 설계를 해오면 2~3년 걸리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게 신통기획의 핵심”이라면서 “신통기획이 아니었다면 속도를 내기 어려웠던 단지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지난 14일 서울 압구정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연합뉴스

신통기획 재건축 단지가 모두 무탈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재건축 시장에서의 신통기획은 태생부터가 갈등의 소지가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속도’를 강조했지만 결국은 관이 주도하는 사업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한 재건축 조합이 일치를 이루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주민들에게는 사업성을 강조했지만, ‘공익성’을 버리기 어렵다는 데서 서울시와 주민들간 시각이 엇갈린다. 신통기획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높은 기부체납비율, 공공보행로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압구정 재건축 단지 중 최대 규모인 3구역은 지난 12일 비상대책위원회격인 주민참여감시단이 강남구청에 신통기획 철회를 요청했다. 압구정 3구역 조합원의 15%인 620여명이 철회에 동의했다. 기부채납률(17%)과 더불어 단지 중앙을 가르는 공공보행교 등을 두고 서울시 관여가 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압구정3구역은 신통기획안 내 용적률인 300% 보다 높은 360%를 제시했던 건축업체를 설계사로 선정했다가 서울시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압구정3구역 조합은 설계사를 재공모하라는 시의 권고를 받아들여 다시 재공모 절차를 진행 중이다. 대치 미도아파트보다 앞서 신통기획 1호 재건축 추진 단지로 알려졌던 오금현대는 임대주택 비율이 높을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재건축 사업은 결국 시간을 기다려 수익을 더 올리느냐,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에 시간을 줄이느냐의 싸움”이라면서 “‘명품주거단지’를 희망하는 강남 재건축 단지 중심으로 굳이 신통기획으로 공공기여를 늘려야 하는 필요가 있느냐는 정서가 있다”고 했다.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자체 리모델링을 하고 오랜기간 거주한 가구가 많아 굳이 속도를 바라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십 년을 거주해 온 만큼 빠른 재건축 보다는 제대로 된 재건축을 원하는 곳도 있다. 잠원동 신반포2차의 경우에는 지난 3월 신통기획 사업지로 선정됐지만, 결국 이를 추진한 조합장을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반 재건축을 추진하다 신통기획으로 전환하면서도 조합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고, 주민 동의도 ‘익명’으로 받았다는 게 갈등의 시작이었다. 신통기획으로 임대주택, 소형 비율이 늘었다는 주장도 있다. 대치동 대치선경 1·2차 아파트는 신통기획을 신청한 지 2주 만에 신청을 거둬들이기도 했다. 조합 측이 조합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추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신통기획에서 ‘신속’을 강조하다 보니 조합원의 의견을 모으는 데 소홀해지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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