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인제 감독 "변화무쌍한 세대, 유행 주기 짧아져"
디즈니+ 20부작 시리즈 '무빙'
제작비 600억원…공개까지 5년
싱가포르·대만 등 亞흥행 성공
박인제 감독(50)은 20개짜리 영화를 찍는 기분으로 '무빙'을 만들었다고 했다. 제작비 600억원을 언급하자 "나누기를 하면 '킹덤'보다 적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 대단하다고 느끼는 건 완성해냈다는 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 시리즈 '무빙'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대본 집필에 4년, 후반작업에만 2년이 소요됐다. 사상 초유의 제작비가 투입된 사실이 알려지며 대형 프로젝트로 기획 단계부터 주목받았다. 꽃길을 예상했지만 가시밭길이었다.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열띤 반응이 더 기쁠 터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에게 축하부터 건넸다. 그는 "찻잔 속의 태풍 아니냐"고 되물으며 "'오징어게임' 정도는 돼야 세계적인 흥행"이라며 호방하게 웃었다. 박 감독은 자신을 애써 다잡았다. 주변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마지막 회까지 평정심을 유지하겠다는 각오다.
"제가 한 영화가 두 개 다 망했거든요. 뭔가 판단하진 아직 이르지 않나. 아직 종영까지 5편이나 남았어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아직은 기쁘기보다 걱정돼요.(웃음)"
박인제 감독은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애써 감추면서도 솔직한 마음을 꺼냈다. 500억 제작비보다 더 큰 부담은 20회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OTT 트랜드는 8부작이다. 요즘 세대는 미국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2006), '로스트'(2005)를 보던 세대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20개를 진득하게 보는 건 나도 힘들다. 40분 넘는 회차를 20개 넘게 보게 할 수 있을까 고민됐다. 시청자를 끝까지 잡아야 하는 미션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를테면 '모래시계'(1995) '여명의 눈동자'(1991) 같았다"고 비유해 웃음을 줬다.
박 감독은 원작 동명 웹툰을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무빙'은 시나리오가 오리지널이다. 원작 팬이었다면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고, 자유롭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웹툰을 그린 강풀 작가가 '무빙' 시리즈 각본도 집필했다. 첫 시나리오 집필이었다. 박 감독은 강풀에게 "원작에 갇히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을 이해하기에 가능한 배려였다.
"웹툰에 갇히면 글이 안 나가잖아요. 각색은 곧 제2의 창작이죠. 불편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죠. 작가가 자기검열을 하는 순간 재미가 없어져요."
전작은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2'(2019)이다. 조선에 창궐한 무시무시한 좀비 떼를 그리더니, '무빙'처럼 따뜻한 작품으로 돌아올 줄 몰랐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박 감독은 "'킹덤'도 따뜻한 면면이 있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무조건 새로운 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킹덤'도 '무빙'도 안 해본 거, 새로운 걸 시도해서 좋았다. 나는 아직 신인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작품을 통해 배우길 꿈꾼다. '무빙'도 날아다니는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무빙'에서 사람을 날려야 하잖아요. 와이어에 태워야 했는데, 본격적으로 사람을 날리는 걸 공부했어요. 와이어 액션을 해본 적은 있지만, 띄워서 점프만 했지, 이렇게까지 해본 적이 없거든요. 물리적인 작업이랄까. 후반작업에서 특수효과(CG) 과정에서도 이렇게 많은 작업을 해본 적이 처음이었어요. 국내 콘텐츠에서 이렇게 많은 CG를 해본 적이 없었죠. 할리우드에서 해왔던 것들을 직접 작품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많았어요."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7회에서 봉석(이정하 분)이 나는 장면을 꼽았다. 박인제 감독은 "돈도 많이 들고 찍기도 어려웠다. 편집실에서 그 장면을 많이 봐서 뭉클함이 옅어졌지만, 마치 내 영화 이야기 같았다. 영화일을 하면서 엎어지기도 망하기도 했지만, 영화라는 꿈이 있었다. 돈을 벌자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꾸 안 되니까 '그냥 좋은 데 취직하라'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어느 날 서투르지만 날게 되고 어느 순간 잘 날게 된다. 굉장히 뭉클했다. 많은 인력도 투입됐다. 실사와 CG가 구분이 안 되게 만들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영화를 계속하는 이유요? 직업이니까요. 영화감독은 제게 소중한 직업이에요. 영화를 찍어야 삶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꿈이었는데 직업이 된 거죠. 감독을 하면서 돈을 번지 얼마 안 됐어요. 직업이 되는 순간 뭔가 달라지는 느낌도 들죠. 하지만 거기에 갇히지 않으려고 계속 공부하는 거죠.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에요."
박인제는 '킹덤'에 이어 '무빙'까지 최근 가장 활발히 OTT 시리즈를 만드는 감독이다. 성적도 좋다. 두 편 모두 해외 대형 OTT 사에서 굵직한 흥행을 거뒀다. 92학번인 그는 엄청난 시장 변화를 겪어낸 세대이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충무로에서 멀티플렉스로 변화했다. 극장은 힘을 잃고 OTT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했다. 유튜브에는 영화, 콘텐츠 60분 분량 요약본이 넘쳐난다. 그는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박 감독은 "예전에는 일본 만화책이 인기였고 불법판도 많았다. 작가는 한명이지만 이름은 한 명이다. 해적판을 만든 가상의 작가다. 이후 일본 문화가 개방됐지만,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MP3도 불법 다운로드가 판을 쳤지만, 음원 스트리밍이 발전한 것처럼 변화의 흐름 중 하나 아닐까"라고 바라봤다.
그는 "젊게 살고 싶다. 데뷔할 때 필름과 디지털 중 졸업작품을 선택해야 했다. 필름이면 예산 1억원이 오버되고, 디지털이면 촬영감독과 B팀까지 꾸릴 수 있었다. 당연히 디지털로 찍었다. 이후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었다.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강풀 작가, 류승완 감독도 같은 세대다. 변화에 무쌍한 세대이기에 변화를 받아들인다. 5~6년 전에 주변에 '유튜브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는데 최근에는 숏폼 콘텐츠까지 생겼다. 뭐가 더 생길지 모르지만, 확실히 변화를 겪는 시기가 짧아지고 있다"고 했다.
뜻밖에도 박인제 감독의 꿈은 기타리스트라고. 그는 "잔금을 받으면 비싼 기타를 하나씩 산다. 딸의 돌잡이에 기타 장난감을 올려놨는데 그걸 잡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기타리스트 시키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며 웃었다.
음악 영화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박 감독은 "음악 영화에 관심이 많지만 만들기는 어렵다. 아내가 영화 '메이트'(2019) 감독인데, 아내가 만들었으니 나는 그걸로 됐다"며 웃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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