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전쟁사]김정은 방러 때 타고간 장갑열차, 완행보다 느린 이유

이현우 2023. 9. 17. 11: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양서 2300km 거리를 3박4일만에 도착
1·2차 대전 맹활약한 장갑열차…대포로 무장
러시아서 여전히 현역…北 태양호도 소련 선물

지난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가진 것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됐습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이번 방러 기간 동안 전용 비행기를 타지 않고 장갑열차(Armored Train)를 타고 방문하면서 화제가 됐는데요.

평양에서 2300km 정도 떨어진 보스토치니까지 시속 50km의 느린 속도로 이동해 도착까지 무려 3박 4일이 걸렸다고 알려지면서 이 느림보 장갑열차가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열차가 이처럼 느린 이유는 외벽을 매우 두텁게 개조한데다 각종 무기까지 탑재돼있고, 내부는 사무실과 접견실 등으로 호화롭게 꾸며져 차체가 매우 무겁기 때문으로 알려졌죠.

13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장갑열차인 태양호가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당도해 김 위원장이 열차에서 내리는 모습. 보스토치니=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시속 400km를 훌쩍 넘는 자기부상 고속철이 일반화된 21세기에 완행열차보다도 느린 이 장갑열차는 우리에겐 매우 생소해 보이지만, 여전히 러시아를 중심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 전쟁에서 쓰이기도 합니다. 과거 19세기부터 1차, 2차대전 때까지 맹활약했던 무서운 무기였다고 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이 장갑열차의 역사와 함께 김 위원장 방러 일정의 발이 되어준 북한 지도자의 전용열차 태양호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뉴스(News) : 김정은 장갑열차, 보스토니치까지 3박 4일 걸려 도착
13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시찰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 보스토치니=타스·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지난 13일 김 위원장이 탄 북한의 장갑열차인 태양호가 러시아 보스토니치 우주기지에 도착했습니다. 평양에서부터 2300km 떨어진 이곳까지 무려 3박 4일이 걸린 것인데요. 열차 속도가 시속 50km 이하로 매우 느리게 이동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걸린 것으로 알려졌죠.

일반적으로 알려진 완행열차의 속도가 시속 60km 이상이고 서울 주요 지하철의 평균속도가 70km 이상임을 고려하면 정말 느린 속도로 이동한 셈입니다. 중국에서 고속철이 약 2700km 떨어진 베이징-상하이 구간을 7시간 30분 안팎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니 북한의 장갑열차는 그야말로 거북이 운행을 한 셈입니다.

이 장갑열차는 북한에서 수십년간 운행해왔다고 선전하고 있고, 북한 지도자 3대가 함께 사용했다며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고 하는데요. 객차 전체가 약 90량으로 이뤄져 있고, 일반 차체에 방탄용 철갑판을 두르고 있어 매우 무거워졌다고 합니다. 또한 각종 대포, 미사일과 대공포 등으로 무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또한 집무실과 접견실, 침실, 식당 등이 모두 호화롭게 배치돼있다고 하는데요. 글자 그대로 움직이는 요새이자 궁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기능이 내장돼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차체보다 훨씬 무거울 수밖에 없고, 최고속도도 80km에 그친다고 하는데요.

2001년 김 전 위원장을 수행했던 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군 사령관은 회고록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에서 이 태양호의 호화스러움에 대해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열차 안에서는) 러시아, 중국, 한국, 일본, 프랑스 요리 그 어떤 것도 주문이 가능했다"며 "신선한 성찬을 위해 살아있는 로브스터(랍스터)가 준비돼 있었고, 보르도와 브르고뉴산 레드 와인이 프랑스에서 공수됐다"고 감탄한 바 있습니다.

◆역사(History)1 : 美 남북전쟁 때부터 본격화, 1·2차 세계대전 때 맹활약
1861년 미국 남북전쟁 당시 만들어진 장갑열차의 스케치화.

이러한 장갑열차는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고 하는데요. 증기기관차의 상용화와 함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증기기관차는 1825년 영국의 발명가인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에 의해 처음으로 운행이 시작됐는데요. 하지만 당시까지는 강철의 대량생산이 어려워 대부분 철도가 연철로 구성됐기 때문에 무거운 장갑열차가 탄생하기는 좀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후 장갑열차 아이디어는 1855년, 강철의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부터 본격화됐다고 하는데요.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적군의 총탄을 막기 위해 증기기관차 외벽에 철갑을 두른 장갑열차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이후 19세기부터 2차대전 때까지 이 장갑열차의 전성시대가 시작되는데요.

1943년 나치 독일이 운용하던 장갑열차인 BP42의 모습.

1차,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도는 군수물자는 물론 병력을 대량 운송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적군으로부터 이를 방어하기 위해 대포와 대공포를 장착한 완전 무장한 장갑열차들이 각국에서 운용됐습니다. 탱크가 개발된 이후에도 탱크의 포탑을 아예 기차에 매단 형태의 대형 장갑열차들이 대거 전선에 투입됐죠. 특히 소련에서는 T-34 탱크의 포탑이나 기관총을 열차 지붕에 단 무장열차가 운용돼 공격용으로도 많이 활용됐다고 합니다.

2차대전 당시 폴란드를 침공했던 나치 독일군도 예상보다 완강히 저항했던 폴란드 장갑열차 부대의 모습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아 탱크부대와 함께 장갑열차 부대 역시 상당수 운용했다고 합니다. 이 장갑열차의 가장 큰 장점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요새였기 때문에 철도만 놓여있다면 빠른 속도로 이동해 강력한 방어진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History)2 : 러시아서 여전히 활발히 쓰이는 장갑열차…北 태양호도 소련이 선물
러시아군의 장갑열차 모습. [이미지출처=게티이미지]

2차대전 이후에는 지상전 무기의 중심이 탱크로 완전히 이동하게 되면서 장갑열차의 사용이 줄어들었지만, 탱크의 운용이 어려운 지역들에서는 장갑열차가 여전히 활용됐습니다. 특히 유럽부터 시베리아, 연해주에 걸친 거대한 영토를 지닌 러시아에서는 국경 지역 분쟁에 많이 활용됐다고 하는데요.

1962년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크게 악화한 이후, 국경분쟁이 잦아지면서 소련에서 핵무장이 가능한 장갑열차가 새롭게 개발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냉전 말기였던 1987년에는 SS-24 미사일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탑재 가능한 장갑열차까지 개발됐지만, 냉전 종식 이후 혼란기가 이어지면서 한동안 장갑열차 운용이 어려워졌습니다. 최근 북한이 공개한 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무장열차의 개념도 바로 이 소련의 장갑열차에서 나온 것이죠.

실제 지금 북한에서 사용 중인 장갑열차인 태양호도 이오시프 스탈린 정권 당시였던 1950년대, 소련에서 북한에 선물로 지원해준 장갑열차가 모태가 됐다고 합니다. 지금 김 위원장의 아버지였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전용 비행기보다 이 태양호를 자주 사용하면서 외신에 북한의 상징처럼 부각됐죠.

하지만 이후 푸틴 정권이 들어서고 러시아의 정정 불안이 점차 가라앉으면서 장갑열차 운용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다시 활발해졌는데요. 지난 2000년 2차 체첸전쟁 도중 러시아의 장갑열차가 체첸공화국 일대 전투지역에 파견됐고, 2008년 러시아와 조지아 간 전쟁에서도 장갑열차가 운용됐습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선 방어용으로 쓰기 위해 장갑열차를 경쟁적으로 운용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산악지형이 별로 없고 대부분 지역이 평지인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일자로 거대한 방벽처럼 쓸 수 있는 장갑열차는 활용도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사점(Implication) : 김정은의 '거대한 집무실' 움직일 때마다 요동칠 동북아 정세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러한 북한의 장갑열차는 이제 동북아시아 정세 전체를 뒤흔드는 상징물이 됐습니다. 특히 이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코로나19로 국경봉쇄조치 이후 첫 해외 순방이라 더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요. 그동안 대북 지원의 중심국가였던 중국이 아닌 러시아를 첫 순방지로 택한 이유를 둘러싸고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면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방문과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자체도 여러 의혹들을 낳고 있는데요. 양국 정상이 회담 내용을 일체 공개하지 않고, 공동선언 등도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유엔의 대북 제재를 어긴 여러 무기, 기술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추측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 측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기술 확보를 돕겠다고 밝히고, 북한이 원하면 우주비행사 훈련도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밝히면서 북한의 로켓 및 첩보위성 기술이 한층 강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데요. 이처럼 여러 의혹이 쏟아진 북한의 장갑열차는 앞으로도 한번 움직일 때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 같습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