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완전정복]③'꿈의 배터리' 장착한 '소니' 캠코더…연구실에 온 구세주 덕분이었다

강희종 2023. 9.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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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카세이, 상품화 고전하는 사이
소니, 리튬이온배터리 깜짝 발표
영국 원자력연구소에서 특허 사들이기도

편집자주 - 지금은 배터리 시대입니다. 휴대폰·노트북·전기자동차 등 거의 모든 곳에 배터리가 있습니다. [배터리 완전정복]은 배터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 학생, 배터리 산업과 관련 기업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배터리의 기본과 생태계, 기업정보, 산업 흐름과 전망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에 보도합니다. 연재 후에는 책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제프 단 교수와 몰리 에너지

아사히카세이의 요시노 카세이 연구원이 리튬코발트산화물과 석유 코크스를 적용한 이차전지를 개발한 이후에도 리튬이온배터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수많은 협력 업체들이 소재를 공급하고, 다양한 제조 공정을 통해 리튬이온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 새로운 이차 전지를 어떻게 양산할지 아는 이가 없었다.

더욱이 이 기술을 개발한 아사히카세이는 이차전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는 조그만 화학회사였다.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코팅이나 와인딩 장비를 갖고 있지 않았다. 소재 하나하나, 장비 하나하나를 모두 스스로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저 조악한 형태의 시제품을 생산하는 데 그쳤다.

아사히카세이가 고전하는 사이 최초로 리튬이차전지를 상용화한 곳이 나타났다. 캐나다의 몰리에너지(Moli Energy)라는 회사였다. 몰리에너지가 개발한 몰리셀(Molicel)은 양극에는 이황화 몰리브덴, 음극에는 금속 리튬을 적용했고 2.2볼트의 전압을 나타냈다. 몰리에너지의 첫 고객사는 일본의 대형 통신사인 NTT였다. NTT는 1988년 일본 최초의 휴대폰이라고 할 수 있는 TZ-802를 출시했는데 여기에 몰리에너지의 이차전지가 들어갔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1989년 8월 TZ-802에 화재가 발생해 사용자가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화재의 원인은 몰리셀이었다. 배터리 내부 단락이 폭발로 이어졌다. 리튬금속을 이용한 이차전지에서 나타나는 덴드라이트 문제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NTT에 납품됐던 1만개의 이차전지는 전량 리콜됐다. 몰리에너지는 더 사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법정 관리에 들어가야 했다.

제프 단 교수(사진 출처:달하우지대학교)

이 제품의 개발과 상용화를 이끈 이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출신의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 제프 단(Jeff Dahn) 이었다. 단 박사는 이후에도 이차전지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며 이차전지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달하우지대 교수인데 리튬이온배터리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2016년부터는 테슬라의 연구 파트너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2019년 발표된 노벨화학상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몰리 에너지는 법정관리 이후 일본 기술 기업 컨소시엄에 500만 캐나다 달러에 매각됐으며 1994년 닛폰몰리에너지로 사명을 변경했다. 1998년 대만의 이원(E-One)과 합병해 현재의 이원몰리에너지로 이어지고 있다. 비록 초기 제품은 실패했지만 이차전지에 대한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몰리에너지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이원몰리에너지는 여전히 '몰리셀'이라는 이름으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몰리셀 폭발 사고는 아사히카세이의 연구원들을 더욱 움츠리게 했다. 폭발과 안정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됐다. 더 중요한 건 이 새로운 물건을 어디에 쓸지 몰랐다는 것이다. 선뜻 사겠다는 곳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던 중 1991년 소니가 전격적으로 리튬이온배터리 상용화를 발표했다. 상품화에 성공한 세계 최초의 리튬이온배터리였다.

아사히카세이는 발칵 뒤집혔다. 요시노 박사의 저서에 따르면 소니는 이전부터 아사히카세이와 8mm 비디오카메라에 들어갈 리튬이온전지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니가 먼저 리튬이온전지를 상용화하다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사히카세이 연구원들은 즉시 소니 배터리를 입수해 조사에 들어갔다. 양극엔 코발트산화물, 음극엔 탄소 소재가 들어가 있었다. 요시노 박사가 개발한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후 아사히카세이는 이차전지 독자 개발을 포기하고 도시바와 합작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1라운드 최종 승자가 된 소니

소니가 어떻게 아사히카세이보다 먼저 리튬이온배터리를 상용화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소니는 특허 문제는 해결한 듯하다. 소니의 리튬이온배터리 상용화 이후 특허 문제가 불거지지는 않았다. 요시노 박사도 저서에서 "리튬이온배터리가 소니의 사내에서 어떤 경위로 개발됐는지 알 수 없지만, 세계에서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를 사업화한 것은 틀림없는 소니"라고 깔끔하게 인정했다.

또 다른 아사히카세이 연구 임원이었던 이사오 쿠리바야시의 저서에 따르면 소니와 아사히카세이는 초기에 긴밀하게 공조했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아사히카세이 직원들은 고객사를 찾아다니던 중 1987년 10월 어느 날 소니 캠코더 사업부를 방문했다. 자신들이 개발한 리튬이온배터리 시제품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시 소니의 과학자들은 아사히카세이의 연구실을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소리 리튬이온배터리 샘플

이 당시 소니는 자체 배터리 개발에 애를 먹고 있었다. 소니는 이미 1975년부터 미국의 유니온 카바이드(Union Carbide)라는 곳과 함께 합작회사 소니-에버레디(Sony-Eveready)를 설립해 충전식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었다. 유니온 카바이드가 배터리 사업부를 매각하자 1986년에는 소니에너지텍(Sony Energytec)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독자적으로 배터리 개발을 이어갔다.

소니가 이처럼 배터리에 진심을 보인 것은 자사의 전자기기에 자체 개발한 배터리를 탑재해 시너지를 내기 위함이었다. 일종의 수직 계열화 전략이다. 특히 소니는 자사 캠코더에 들어갈 충전식 배터리가 필요했다. VHS 대 베타 표준 전쟁에서 패한 소니는 8mm 캠코더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캠코더에는 니켈카드뮴(니카드) 배터리를 사용했다. 소니는 이보다 성능이 좋은 차세대 배터리를 적용해 콤팩트한 캠코더를 출시하고자 했다.

이러던 차에 아사히카세이 연구원들이 리튬이온배터리 시제품을 갖고 와서 시연했다. 바로 소니가 찾던 바로 그 제품이었다. 아마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듯하다.

하지만 소니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회사 연혁에는 소니에너지텍 연구원들의 여러 시행착오 끝에 리튬이온배터리를 상용화했다는 설명만 돼 있을 뿐 아사히카세이와의 연관성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다. 소니가 기술한 첫 리튬이온배터리 개발 과정은 이렇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6개의 연구 프로젝트가 승인됐다. 매월 회의에서 그것들을 평가했고 하나씩 제거됐다. 그 팀은 '꿈의 배터리를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마침내 연구원 중 한 명이 '우리가 해냈다'고 기뻐 외쳤다."

英 원자력연구소가 무슨 상관?

하지만 소니도 이 기술이 본인들의 것이 아님을 잘 알았다. 특히 양극 재료로 쓰인 리튬코발트산화물은 존 구디너프 교수의 발견이었다. 소니는 상용화를 발표하기 전 특허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소니가 찾아간 곳은 구디너프 교수가 아니라 영국 원자력연구소(AERE, Atomic Energy Research Establishment)였다. 구디너프 교수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리튬코발트산화물을 연구할 당시 AERE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대신 특허권을 통째로 넘겨버린 것이다. AERE나 구디너프 교수는 이때만 해도 이 특허의 상업적 가치를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AERE는 이차전지에 대해 전혀 기여하지 않았음에도 소니로부터 특허료를 두둑이 챙길 수 있었다. AERE는 이 특허권이 만료되기 전까지 5000만~1억달러(약 663억~1327억원)의 특허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구디너프는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소니의 첫 리튬이온배터리는 'CCD-TR1'이라는 8mm 비디오에 첫 탑재 됐다. 기존 이차전지보다 높은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 지속성을 자랑하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등장하자 세상은 이 새로운 제품의 가치를 금방 알아봤다. 캠코더뿐 아니라 CD플레이어 등 휴대용 전자기기들에 채택하기 시작했다.

마침 1990년대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리튬이온배터리는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산요전기, 도시바, 파나소닉 등 일본 전자 기업들이 잇따라 이차전지 사업에 뛰어들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니켈카드뮴전지란? 리튬이온배터리가 상용화되기 전 니켈계 2차전지가 많이 쓰였다. 니켈카드뮴 전지를 줄여 니-카드전지라 부르기도 한다. 니켈계 2차전지는 양극 활물질로 산화수산화니켈을 사용한다. 이 물질은 용량 밀도가 크고 내식성(잘 부식되지 않는 성질)이 뛰어나며 충전과 방전시에 금속 용출이 적다. 니켈계 이차전지는 음극 활물질에 따라 니켈-카드뮴, 니켈-철, 니켈-아연, 니켈-수소 전지 등으로 나뉜다. 니카드 전지는 1899년 스웨덴 공학자인 에르슨트 융그너가 발명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니켈카드뮴 전지는 납축전지보다 튼튼하고 진동과 충격에 강하며 강한 전류로 충전고 방전을 할 수 있다. 저온에서도 전압이 많이 떨어지지 않는 등의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체에 유해한 카드뮴을 사용하고 있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다. 1960년대 일본을 뒤흔들었던 이타이이타이병의 원인도 카드뮴이었다. 유럽에서는 니켈카드뮴 전지의 사용을 금지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등장으로 점차 사용량이 줄기 시작했다.

-IEEE, 'Who Really Invented the Rechargeable Lithium-Ion Battery?'

-소니 홈페이지, About Sony Group, Chapter13 Recognized as an International Standard

-노벨화학상 요시노 박사의 리튬이온전지 발명 이야기

-시라이시 다쿠, '처음읽는 2차전지 이야기'

-Electric Autonomy Canada, 'New lessons from the epic story of Moli Energy, the Canadian pioneer of rechargeable lithium battery technology'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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