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연의 K컬처] 빠르게 잘 하는 ‘극강의 효율성’ 주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2023. 9. 1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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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에 민감한 한국문화 ③ 공무원과 정부24, 그리고 편의점
김치, 강남스타일, BTS, 영화 기생충 등 일과성 이벤트들에 머물렀던 세계의 관심이 이제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K컬처로 대변되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현상들, 그리고 그들의 명과 암을 사회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반추해 봄으로써 한국문화의 본성을 재조명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빨리빨리요!” 학생들이 거의 동시에 대답한다. 어찌나 한결같은지 이제는 놀랍거나 신기하지도 않다. 매년 ‘문화다양성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업에서 문화충격(culture shock)을 시작으로 다른 문화로의 적응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묻는 첫 질문에 대한 유학생들의 답이다.

물론 질문은 ‘여러분 본국의 문화와 가장 다른 한국문화는 어떤 것인가요’다. 6·25전쟁이나 급격한 산업화 등 한국인의 조급성이 정확히 어디에서 유래하는지에 대한 설(說)은 여러 가지 있지만, 실상 이를 부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비행기 착륙 직후 짐을 꾸리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국 사람일 확률이 높으며, 승객 안전을 위해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 하차하라는 팻말이 버스 내부 여러 곳에 부착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회식을 위해 식당을 예약할 때는 아예 메뉴를 정해 음식이 준비되는 시간을 최대한 아낀다. 우리는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돼서 좋고, 식당 사장님은 테이블 회전이 빨라서 좋다.

인터넷상에는 이와 대비되는, 자신이 해외에서 관찰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느긋한 일상에 대한 경험담들이 많다. 버스 앞 거치대에 한가롭게 자전거를 올리고 승차하는 사람을 그저 하염없이 기다려주는 기사 아저씨와 승객들. 20달러짜리 지폐뭉치를 한 장 한 장 떼어 차분히 창구에 내려놓으며 ‘트웬티’, ‘포티’, ‘식스티’…. 하며 세어주는 친절한 미국 은행 직원. 한국인으로 하여금 ‘고구마’를 연상시키는 예는 넘쳐난다.

물론 이러한 사례 중 그 문화 고유의 속도를 반영하는 것도 있겠으나, 대부분 그들이 체험한 문화차는 한국의 서울과 그 나라의 시골을 비교한대서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를 불문하고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바쁜 삶을 살아간다. 그들도 엘리베이터에 타면 닫힘 버튼을 누르고, 도로가 막히면 차 안에서 혼자 욕도 한다. ‘혼코노’나 ‘중꺽마’와 같은 줄임말들도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니다. 줄임말은 ‘a.k.a.(as known as)’나 ‘ASAP(as soon as possible)’ 등과 같이 홑자로된 알파벳을 쓰는 영어 문화권에서 더 흔히 쓰인다. 전국 편의점마다 최소 한 대씩 비치된 전자레인지 역시 우리나라의 발명품이 아니다.

우리의 ‘빨리빨리’는 단지 일차원적 속도 그 이상을 의미하는 다차원적 개념이다. 무언가 ‘빨리빨리 하라’ 혹은 ‘빨리빨리 해달라’는 말은 ‘빨리’, 하지만 ‘잘’ 하라는 요구나 부탁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 일 잘하지’, ‘너, 수학 참 잘한다’, 혹은 ‘우리나라 도로 공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 등의 표현은 단순히 결과물의 퀄리티에 대한 칭찬만이 아니다. 거기엔 속도에 대한 기대가 거의 항상 수반되며, 위의 표현은 각각 짧은 시간 안에 멋들어진 피티(프리젠테이션)를 준비해내는 회사 직원, 실수 없이 문제를 정확히, 빨리 푸는 친구, 그리고 야간작업을 하더라도 단기간 내에 곧게 뻗은 도로를 완성해내는 정부를 뜻한다. 한국인은 속도를 원하면서도 질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군 생활을 할 당시 한 선임한테서 들었던 가장 흥미로웠던 표현 중 하나가 ‘대충 철저히’ 하란 말이었다. 언뜻 보면 두 단어는 서로 모순되지만, 우리는 ‘대충’이란 그의 말이 ‘빨리’를 뜻함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따랐다. 이것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다.

필자는 오히려 미국 생활을 하며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를 더 철저히 경험한 바 있다. 서부 몬태나에서 시작해 노스다코타, 미네소타, 위스콘신, 일리노이, 인디애나를 거쳐 미시간까지 이어지는 94번 주간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I-94)는 동서 물동량 이동을 책임지는 미국의 대표 혈관 중 하나다. 매월 한국 식재료 구매를 위해 우리 가족은 밀워키(위스콘신주)에서 시카고(일리노이)까지 운전을 해야했는데, 그때 항상 타야 했던 것이 바로 이 고속도로였다. 어느 날 밀워키 교외에서부터 일리노이 진입 전까지 확장공사가 시작됐다.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속도를 기대했던 필자는 공사가 곧 끝나려니 했으나 그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2016년인가부터 시작된 이 공사는 필자가 미국을 떠나오던 2020년에도 계속되었고, 우리 가족은 이 도로를 지나던 6년 내내 ‘아, 대한민국’을 되뇌었다. 물론 규모가 커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같은 공사를 한국에서 했어도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하는 의문은 내 머릿속을 항상 맴돌았다.

현실적으로 결과의 질과 속도는 반비례 관계가 맞다. 이상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땀과 노력, 그리고 절대시간이 필요하다. 인류가 추앙하는 위대한 인물이나 건축물, 그리고 과학기술은 오랜 시간에 거쳐 서서히 완성된 작품들이다. ‘빨리빨리’로는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어렵고, 과정의 중요성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거나 책임자에게 떠맡겨진다. 주로 ‘알아서 잘’이란 암묵적 지시만을 남긴채. 하지만 1990년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을 교훈으로, 한국은 양립 불가능한 이 두 가지 가치 사이의 간극을 줄여가고 있는 듯하다. 최상의 성과를 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무언가를 오류 없이 빠르게 처리하는 방법은 몸에 익은 듯하다.

‘실수 없이 빠르게’로 대표되는 우리 문화의 상징은 단연 한국의 공무원일게다. ‘빨리빨리’와 네거티브에 집착하는 우리 문화가 창조해낸 초인이라고 해야 할까.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그들의 직무능력이나 태도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해외에서 생활해 본 전력이 있는 이들은 이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실수를 일의 일부로 생각하거나, 서류 처리에 있어 최소 몇 주간의 기다림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미국의 공무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필자가 한국에서의 취업을 위해 미국에서 범죄경력증명서 원본을 떼와야 했는데, FBI에 지문 접수 후 국방성의 인증서까지 받아보는데 6개월이 넘게 걸렸다. 이를 이해할 수 없는 학교 행정 담당 직원과 거의 매주 전화로 옥신각신해야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이를 온라인으로 접수·발급하고 있는 한국의 행정 시스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실수 없이 빠르게’는 이제 ‘정부24’와 ‘홈택스’ 등 원스톱 행정으로 더 정교해졌다. 공무원의 도움 없이도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만 있으면 수십 가지의 증명서류들을 즉시 받아볼 수 있다. 에러가 생길 틈은 거의 없다. 물론 이렇게도 많은 증빙서류가 이리도 빈번히 오가고 있음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다른 한 구석을 비추는 것일 수도 있으나 한국의 행정 시스템이 우리에게 극적인 편리함을 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민등록등본이나 뗄 줄 알았던 필자가 최근 ‘정부24’에서 초중등학교 생활기록부와 졸업증명서, 그리고 재직증명서까지 발급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을 충격을 생각해 보라. 몇 해 전, 오랜만에 한국에 놀러와 편의점에서 어린 딸아이와 함께 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으며 행복해하던 어느 날, 옆 계산대에서 아무렇지 않게 택배를 부치던 누군가를 처음 목격했던 기억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복되며, ‘아, 우리나라에선 안되는 게 없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던 돈오(頓悟)의 순간을 아직 잊지 못한다. K컬처가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이유 어딘가에는 분명 효율성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이 있다. 본국으로 귀국했다가도 다시 한국을 찾게 된다는 외국인들의 인터뷰를 보며, 예전에는 그저 친절해서 그러려니 했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격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빨리빨리’와 ‘네거티브’에 민감한 문화를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은 만족을 잘 모른다. 전국에서 소문난 맛집도 별 네 개를 받는 경우가 흔치 않다. 그들에게는 한국 공무원의 행정 서비스에 대해서도 칭찬할 것보다는 개선점들에 대해 할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다. 그들에게 굳이 ‘다른 나라와 한국에서의 삶을 비교해 보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극강의 효율성에 감사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있음에 한국의 3차 산업은 오늘 한 걸음 더 진화했기에.

김상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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