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의 김대건 성상[오후여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국인 최초 천주교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신부는 1845년 8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작은 배를 타고 귀국 길에 오르다 풍랑 때문에 제주도 해안에 닿는다.
용수리 포구에는 이를 기념해 김대건 신부표착기념관과 기념성당이 세워졌다.
천주교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사제가 되라는 운명을 받아들여 마카오 유학길에 나섰고, 신부가 된 후 귀국해 천주교 교의를 전하다 순교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 천주교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신부는 1845년 8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작은 배를 타고 귀국 길에 오르다 풍랑 때문에 제주도 해안에 닿는다. 박흥식 감독의 영화 ‘탄생(2022)’에는 김대건(윤시윤 분)이 제주 최서단 차귀도에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거센 풍랑을 맞아 28일간의 표류 끝에 도착한 김대건은 10여 명의 동행자와 첫 미사를 봉헌한 뒤 용수리 포구에서 배 수리를 마치고 충남 강경으로 떠났다. 용수리 포구에는 이를 기념해 김대건 신부표착기념관과 기념성당이 세워졌다. 갓을 쓴 김대건 신부상도 있다.
김대건은 한국인 최초로 유학을 가서 서양 학문을 배웠고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다. 서양의 항해술과 측량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귀국 후 1846년 6월 체포되면서 그의 사목 활동은 1년도 안 돼 끝났지만, 참수 전 3개월간 옥중에서 세계 지리 개략을 편술했고 세계 지도 번역작업도 했다. 조선 대신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그의 손길이 닿은 지도는 헌종에게 헌정됐다. 이후 일부 대신들이 박학다식한 인재 김대건을 살려야 한다는 구명운동을 벌였지만, 허사였다. 헌종실록 제13권엔 ‘사학죄인(邪學罪人) 김대건 효수’ 기록이 나온다.
천주교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사제가 되라는 운명을 받아들여 마카오 유학길에 나섰고, 신부가 된 후 귀국해 천주교 교의를 전하다 순교했다. ‘탄생’에서 김대건은 서해 뱃길이 위험하다는 이들을 향해 “길이 없다고요?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바다라는 게 모르면 공포의 대상이지만, 알면 길이 되어준다”고도 했다. 죽음을 각오한 그런 도전정신이 한국 천주교의 길을 열었다.
이후 천주교 박해 시대는 김대건의 선종 40년 만인 1886년 조선이 프랑스와 수교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 때 시복된 데 이어 1984년 5월 교황 바오로 2세가 한국 천주교 전래 200년을 기념해 방한했을 때 순교자 103인과 함께 성인으로 선포됐다. 김대건 신부 성상이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 16일 봉헌 기념미사가 열린다. 동아시아 출신 성인으론 처음이다. 이탈리아 순례 코스가 한 곳 더 늘었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비행기 화장실서 성관계 英남녀, 알고보니 처음 본 사이
- 가수 김정수 “혈변 후 위암 말기 진단…위 80% 절제, 8시간 수술”
- 넘어지려는 노인 잡아줬는데 폭행 신고…‘적반하장’ 무고에 벌금형
- 아내와 이혼후 친딸 성폭행父 “엄마 없으니 네가 성관계 해야한다”
- “동맹국도 안봐준다”...美, 자국기술 러에 이전한 동맹국 기업들 대거 제재
- 김대호 “가장 부러운 사람 이재용… 힘들게 하는 건 이자”
- 北 경호원들, 김정은 의자 때문에 간담 ‘서늘’해진 사연
- 신호등 바뀌자 도로 뛰어든 행인…사망사고 낸 버스기사 ‘무죄’ 이유는?
- “尹 끌어내려야” 李의 대선불복… 총선 여당심판 노린 ‘탄핵’ 띄우기[Deep Read]
- 취기에 동상 올라갔다가 2400만원 물어주게된 관광객…팔 부러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