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촌까지 공개”…대전교사 가해 학부모 신상 폭로 논란

이강민 2023. 9. 1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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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적 제재 행위, 정보통신망법 위반 소지”
극단적 선택을 한 대전의 한 초등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던 학부모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음식점 유리창에 지난 9일 시민들이 쓴 쪽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고소 탓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대전 초등학교 교사에게 지속해서 민원을 제기했던 이들의 신상을 폭로하는 SNS 계정이 등장했다. 학부모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 데 따른 대가라는 반응도 있지만 무분별한 개인정보 유출로 2차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전 초등 교사에게 집요하게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학부모의 신상을 폭로하는 글을 올리는 계정이 11일 SNS 인스타그램에 등장했다.

계정 소개글에는 ‘대전 초등학교 24년 차 여교사를 자살하게 만든 살인자와 그 자식들의 얼굴과 사돈의 팔촌까지 공개한다’고 적혀 있다.

이 계정은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의 신상을 폭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날 개설됐다. 관련 학부모들의 얼굴, 전화번호, 주소, 직업 등 개인 정보와 비난이 담긴 게시물 40여 건이 등록돼 있다.

대전 교사 사망사건 가해자 폭로 인스타 계정. 인스타그램 캡처


운영자는 한 게시글에서 “혹자는 선을 넘는다고 하실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면서 “저 악마들 때문에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두 아이는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법으로 그들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싶다”며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뿌리 뽑고 싶다”고 적었다.

이 계정은 하루 만에 7150명이 넘는 팔로어가 생기며 폭발적인 반응과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신고와 부적절한 표현 등으로 인해 인스타그램 측으로부터 계정 정지를 당했다. 이후 “물러설 거면 시작도 안 했다”며 시즌2라는 계정 이름으로 다시 가해 학부모들의 신상 관련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대전 교사 사망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가 운영하는 가게 앞.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이에 누리꾼들은 “가해자가 명백한데 손가락질받는 게 당연하다” “좋은 일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절대 물러서지 말아달라” “어린 학생이 어른들도 못 할 일을 해 용기 있다”고 반응하며 호응했다.

운영자는 글을 내리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는 일부 누리꾼에게 “해볼 테면 해봐라. 나는 만 10세 촉법소년”이라고 맞받아치면서 본인을 만 14세 미만 미성년자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촉법소년 갤러리에는 해당 계정 운영자를 ‘현대판 홍길동’이라고 칭하며 “소송 들어오면 모금 계좌를 열어달라”는 지지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SNS 통한 신상 폭로…법적 문제없나

대전 교사 사망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와 그의 자녀의 신상을 공개한 SNS 글. 인스타그램 캡처

이 계정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의 이름, 전화번호를 그대로 노출했을 뿐 아니라 얼굴에 영정을 합성한 사진, 자녀들의 외모를 지적하는 원색적인 조롱글도 다수 올라와 있다. 일부 누리꾼은 “아이 얼굴은 지우는 게 좋겠다” “범죄 처벌은 법에 따라 해야 한다” “가해자와 신상 공개가 다를 게 뭐냐” 부정확한 정보로 추측하면 소송이 걸릴 수도 있다”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응도 있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사적 제재 행위는 설령 공익성이 있더라도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혜미 법률사무소 오페스 변호사는 “모욕적인 내용과 함께 신상정보를 폭로하면 정보통신망법 제49조, 제70조 위반 소지가 있다”며 “특히 제70조 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교사 사망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를 비난하는 SNS 글 내용. 인스타그램 캡처


같은 법 2항에 따르면 비방 목적으로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명예를 훼손하면 7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송 변호사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같이 신상 공개의 공익성이 강한 사안임에도 처벌받은 판례가 있다”며 “다만 촉법소년인 경우 감독자인 부모 등에게 민사적 손해배상이 가능하지만 처벌할 수 없는 나이로 사건이 종결된다”고 덧붙였다.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 있거나 ‘비방할 목적이 없는 경우’ 등 요건을 충족할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특정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신상 공개를 한 경우에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늘어나는 사적 보복…수사기관 불신 영향도
이처럼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된 개인의 신상을 개인적으로 SNS에 공개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건 수사 기관에 대한 불신과 기술 발전이 맞물린 사회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 신상 공개로 사적 보복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공적 수사 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고 불만이 커져 행동에 나서고, 개인적으로 정의를 추구하는 영웅적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사적 보복 욕구가 기술 발전과 맞물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기술의 발전으로 SNS를 통해 개인 정보를 파악하기 쉬운 시대가 되면서 기술이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40대 교사 A씨는 지난 5일 대전 유성구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후 병원에 이송됐지만 이틀 만인 지난 7일 오후 6시쯤 숨졌다.

대전교사노조는 20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해온 A씨가 2019년 유성구 소재 초등학교에서 친구를 폭행한 학생을 교장실에 보낸 것을 계기로 수년간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2020년에는 무고성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했다. 올해 근무지를 다른 초등학교로 옮겼으나 줄곧 트라우마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첩 등 ‘음식물 테러’를 당한 대전 유성구의 가해 학부모 사업장 앞.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앞서 가해 부모 가운데 한 명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음식점은 시민들의 ‘별점 테러’, 케첩·밀가루 등을 뿌리는 음식물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해당 음식점의 프랜차이즈 본사는 이 사업장에 대한 영업중단 조치를 내렸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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