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야 재밌는 야구, 우리 가족은 좀 다릅니다

김지은 2023. 9. 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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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더블헤더 경기를 다녀와서... 쓸 데 없지만 포기할 수 없는 우리만의 직관 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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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9월 9일 토요일엔 이번 시즌 첫 더블헤더 경기가 있었다. 더블헤더란 야구용어로 하루에 같은 상대와 함께 같은 구장에서 두 경기를 하는 것을 뜻한다. 우천 취소가 되는 경기가 많아질 경우 정규 시즌 종료일에 맞추기 위해서 더블헤더를 진행하게 된다.

이날은 SSG와 KT를 제외한 8개의 구단이 더블헤더 경기를 치렀다. 첫 경기는 오후 2시, 두 번째 경기는 오후 5시에 진행된다. 첫 경기가 오후 5시 이후에 끝날 경우, 30분 휴식 후 다음 경기를 펼친다.

'쓸 데 없는 일'도 인생엔 필요하니까
 
▲ 창원 NC파크 더블헤더 2차전  선수들이 있는 더그아웃까지 잘 보인다. (사진 오른쪽 끝)
ⓒ 김지은
 
9월이라지만 아직 낮은 여름처럼 더운데 하루에 두 경기라니, 선수들의 체력이 괜찮을지 걱정된다. 그러나 팬의 입장에서는 하루에 두 게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은근 매력적이기도 하다(같은 장소에서 같은 팀과 치러지는 경기지만 경기는 1, 2차전 각각 따로 예매해야 한다).

응원팀인 롯데의 더블헤더 일정을 체크해 보니 9월에 창원 NC 파크에서 경기가 있다. 서울에서는 꽤나 먼 거리여서 포기할까 하다가 남편과 딸의 의중을 떠봤다.

"9월 9일 창원에서 롯데 더블헤더 경기가 있어. 한 번에 가서 두 게임을 볼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창원 NC파크는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서 엄청 팬 친화적인 구장이래. 어때? 가고 싶지?"

사실 올해 봄, 가족끼리 올 시즌이 끝나기 전에 우리나라 9개 구장을 다 돌아보자고 했었다. 그러나 롯데의 경기력이 더위와 함께 하락세로 들어선 이후 그 말이 쏙 들어갔다.

대신 '직관 열 번 가기'라는 소소한 목표로 수정했다. 그런데 희안하게 우리가 직관을 갈 때마다 롯데가 역전패로 진다. 매 번 이길 것 같다가 진다. 마음이 높게 붕 떴다가 아래로 훅 떨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멀고 피곤하다.

네 번째 직관을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이제 직관 그만 갈까?" 하고 남편과 열세 살 아이에게 물었다. 롯데는 기세가 꺾였을지 몰라도 남편은 사춘기 딸과 유일하게 함께 하는 스케줄인 야구 직관의 흐름을 놓칠 수 없다. 피곤해 감기는 눈을 갑자기 크게 뜨며 말했다.

남편 : "그래도 열 번은 가자. 우리가 갔을 때의 우승 확률이 몇 인지 계산해 봐야지."
아이 : "맞아, 맞아. 우리만의 승률을 계산해 봐야지."

'굳이 왜?', '다섯 번 가고 곱하기 2하면 안 되는 건가?' 순간 쓸데 없다고 생각했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인생에선 '쓸 데 없는 게' 필요하다. 해야 하는 일 속에 파묻혀 살다가 쓸 데 없는 일을 하며 숨을 쉰다. 꼭 해야 하고 필요한 일보다 쓸 데 없는 일이 더 재미있고 신난다. 운이 좋다면 그 쓸 데 없는 일에서 자기 자신을 찾을 수도 있다.

"그래, 그럼. 직관 열 번 가자!"

우리가 여태까지 간 직관은 일곱 번. 더블헤더 경기를 가면 한 번에 두 경기를 채울 수 있다. 남편과 아이는 내 제안에 홀라당 넘어왔다. 창원으로 가는 KTX가 매진이라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아침 9시 반 버스를 타고 가서 밤 9시 반 버스를 타고 올라온다. 서울에 새벽 1시 반 도착이라 피곤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딸은 괜찮다며 걱정말란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그 정도의 수고는 감당할 수 있나보다.
  
▲ 창원NC파크 외관 밖에서도 응원하는 관중석이 보인다.
ⓒ 김지은
 
아침 9시 반에 탄 고속버스는 오후 1시 45분에 도착했고 다행히 터미널과 야구장이 걸어서 7분 거리다. 조금 걸으니 함성소리가 들린다. 창원NC파크는 밖에서도 야구장 안의 관중석이 보인다. 여태까지 갔던 잠실, 문학, 사직, 고척 야구장과는 달리 아주 개방적인 디자인이다.

야구장 안에 들어가니 뻥 뚫린 게 어느 방향에서도 경기가 잘 보인다. 인터넷에서 그라운드와 접근성이 좋다고 했던 말이 이해가 된다. 막힌 곳이 없어 관중석 뒤 매점에서 먹거리를 사면서도 경기를 볼 수 있다.

"엄마, 여긴 꼭 미국 야구장 같다. 미국 야구장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어머,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미국 야구장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낮 경기 시작인 오후 2시는 아직 햇빛이 강할 때라 응원단 앞 좌석에 계속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우리팀이 공격일 때는 자리에서 응원하다 우리팀이 수비일 때는 햇볕이 가려지는 뒤쪽에서 서서 경기를 봤다.

"야구장 자체 볼거리가 많아서 그런지 오히려 야구 경기에 집중이 안 되네."

남편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그건 오해였다. NC에 지고 있던 롯데가 역전을 함과 동시에 경기에 엄청 집중이 잘 되는 게 아닌가. 다행히 1차전은 롯데가 승리했다.

한 점 차로 진 경기, 딸의 위로
 
▲ 팬 친화적인 NC파크  선수들이 서 있는 그라운드와 내 시야의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 김지은
 
경기가 끝나고 30분 뒤에 2차전이 시작됐는데 1차전과 2차전을 다 예매한 사람도 경기장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했다. 두 번째 경기의 자리는 2층 맨 앞자리였는데 조금 전과 시야가 달라져 또 보는 재미가 있었다.

경기 초반부터 홈런이 터지며 쭉 기세를 이어가나 했더니 이번엔 역전패. 고속버스 시간때문에 끝까지 보지 못하고 고속버스 안에서 결과를 확인했다. 우리 버스 안에는 NC팬도 롯데 팬도 있었다(유니폼을 입고 있어 확인이 가능하다). 내 앞에 앉은 NC팬 두 명은 작게 환호를, 우리는 '에잇' 하는 안타까운 신음을 뱉었다.
   
비록 졌지만, 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아쉬워 하고 서운해할 수 있어 다행이다. JTBC <최강야구>에서 많이 나오는 자막 중 하나는 '야구는 이겨야 재밌다'라는 문장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우리 가족에게는 직관 경기 자체가 의미있다. 직관 일정이 잡혀 있을 때의 야구는 날짜를 서로 맞춰보고 관중석 자리를 의논할 때부터가 시작이다. 어느 자리가 좋은지, 그 구장 맛집은 어디인지, 그날의 날씨는 어떨지 대화가 풍성해진다.

한 점 차로 진 경기를 아쉬워하는 날 보고 딸이 말했다.

"엄마, 엄마는 아직도 뭔가를 기대하는 거야? 난 그냥 선수들 안부 확인차 보는 거야.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경기는 누구보다 열심히 보면서 결과가 좋지 않아도 선수들 부상 당하지 않는 게 제일이라고 말하는 딸. 저 말이 진짜인지 자신의 멘탈을 위해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다. 이로써 직관 한 경기가 남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고 쓸 데 없어 보이는 데이터인 23년 우리 가족 직관 승률은 어떻게 마무리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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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라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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