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멘토와 멘티로 제2의 인연… “진짜 행운이죠”

정신영 2023. 9. 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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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에 희망 디딤돌을]
멘토링 디딤돌가족 캠페인 한달째
권욱동(왼쪽) 대구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와 같은 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상우씨가 지난 5일 경북 경산에 있는 대구대 경산캠퍼스 평생교육관에서 멘토 교육을 하고 있다. 경산=이한형 기자


“학교 제자를 멘티로 만나다니 참 행운이지요.”

권욱동 대구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와 삼성이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위해 공동기획한 희망디딤돌 캠페인을 통해 한 학생과 이어졌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자립준비청년 이상우(23)씨다. 두 사람이 캠페인 첫 멘토링 프로젝트인 ‘디딤돌가족’이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 5일 권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온 이씨는 “교수님을 멘토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지금 활동하고 있는 볼링 동아리의 지도 교수님이기도 하다”고 웃었다.

권 교수는 이날 이씨에게 ‘나의 꿈과 비전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책상에는 이미 수년간 쌓인 제자들의 로드맵이 파일째 놓여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로드맵에 적는 내용대로 이뤄진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매년 5월이 되면 종이를 받으려는 신입생들이 연구실 앞에 줄을 선다고 했다. 이씨는 로드맵 상당 부분을 빈칸으로 남겨뒀다. “막상 내 꿈을 생각하려니 막막하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급하게 적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줬다. 대신 앞서 로드맵을 적었던 제자들의 얘기를 들려줬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났던 제자들과 본인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말을 이어갔다. 권 교수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걸 고려해서 적으면 좋을 것 같다”며 “나중에 상우도 꿈을 이룬 선배로 학교에 초청될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사회복지 행정 관리자가 되고 싶다는 이씨는 “선택지는 많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번 학기를 마치면 졸업인 상황이다. 이번에 ‘멘토링을 해보겠냐’는 제안에 선뜻 응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원 진학과 해외 유학을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목표를 딱 잡지 못하다 보니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씨에게 도움될 만한 정보를 건넸다. 야간 대학원과 일반 대학원의 장단점부터, 해외 유학의 장단점, 진학 이후의 생활 방편 등 이씨에게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권 교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정을 해야 할 때 상우가 주위에 휩쓸리지 않고 신중히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며 “삶을 설계하는 건 상우가 나보다 현명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옆에서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했다.

디딤돌가족 출범 한 달. 권 교수와 이씨처럼 60명의 멘토가 멘티와 조금씩 가족이 돼 가고 있다. 벌써 3번의 만남을 가진 가족도 있었다. 대구동신교회 집사인 맹주형(46)씨는 “한 회차 교육이 1시간인데 멘티와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면 2시간도 금방 지나간다”고 했다. 멘티와 함께 오는 11월까지 멘토링 10회차 진행 시 지원되는 장학금 50만원도 노리고 있다며 웃었다.

맹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 한편에서 멘티와 밥을 먹으며 취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위에 자문해 관공서 사무보조 취직 기회가 있다는 정보도 얻었다. 두 사람은 다음 만남까지 ‘해당 취업 공고를 놓치지 않고 찾아가기’란 과제를 정해놓은 상태다.

맹씨는 “멘티의 포부가 크다. 언제가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표현해주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가면서 취업에 관한 것 외에도 인생살이나 결혼 생활에 대한 것도 얘기하고 싶다. 다만 멘티가 원하느냐가 제일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모든 멘토링이 순탄한 건 아니다. 지난 2일 오전 부산 연제구 시청 앞 한 카페에서 만난 이상민(46)씨는 1시간째 멘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멘티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멘티가 약속을 깬 게 벌써 세 번째였다. 이씨는 매번 1~2시간씩 기다리다가 홀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는 “멘토를 하면 상처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충분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해 이유는 따로 묻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손에 든 수첩을 만지작거리면서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멘티도 마음을 열고, 결국 서로에게 좋은 가족이 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씨의 수첩에는 메모가 빼곡했다. 이날 멘티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내용을 미리 적어둔 것이라고 했다. 절반가량은 수능 준비에 대한 얘기였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멘티가 첫 만남 당시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그는 “고교 3학년과 대학교 1학년 아들 둘에 이어 멘티까지 더하면 대학 입시만 3년을 치르게 된다”고 미소지었다.

부산 수영로교회 집사인 이씨는 멘토링 과정에서 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수영로교회는 디딤돌가족 멘토를 포함해 모두 60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기대, 나무팀’을 운영하고 있다. 멘토들을 위한 지원군인 셈이다. 옆에서 취업진학과 의료, 문화예술 등 관련 정보도 지원한다고 했다. 이씨는 “안타깝게 오늘은 이걸 써먹지 못했는데, 기회가 오겠죠”라고 말을 이었다.

이씨는 멘티가 자신의 자녀들과 겹쳐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을 해서 사회에 나가기 전까지 아이들은 어찌 보면 무방비 상태다. 멘티도 최소한 그때까지는 옆에서 지켜봐 주고 싶다”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멘티가 후배들에게 멘토의 역할을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곧 있을 추석 연휴에 멘티와 함께 명절 음식을 먹고 싶다는 기대를 표했다.

경산·부산=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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