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크게 키워 풍성한 그늘 만드는 프라이부르크
도시의 표정을 바꾸는 가로수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인근 광장. 사람들이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트램을 기다리는 노부부와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학생,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이 보였다. 이제 막 상가 문을 열려는 상인과, 이르게 관광에 나선 여행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오전이지만 햇볕은 뜨겁고, 기온은 점점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 여름이 주는 피로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광장은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번화한 카이저 요제프 거리로 가는 길목에 자리했다. 넓은 공간에 나무는 열 그루가 채 되지 않는데, 광장 전체에 시원한 그늘이 넓게 드리웠다. 나무 아래엔 커다란 평상형 벤치가 있어 사람들은 눕거나 기대어 자유롭게 쉴 수 있다.
인구 23만의 작은 도시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의 환경 수도다. 50년 전 시내에서 30㎞가량 떨어진 접경지역에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자, 반대하는 시민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지면서 이를 계기로 선도적인 환경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1995년 시의회는 2010년까지 1992년 대비 온실가스를 25%까지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는 시민과 시의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 아래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 제한, 도심 내 차량통행 금지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1970년대 극심한 차량 혼잡을 겪었던 프라이부르크 시는 현재 자전거 교통분담비율이 30%를 넘는다.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태양에너지전시회(Inter Solar)가 매년 이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의 유명한 태양건축가(롤프 디슈·Rolf Dish)가 설계한 회전형 태양건물(헬리오트롭·Heliotrop)과, 이 건물 맞은편에 있는 보봉 구역의 태양광 연립주택단지(슐리어베르크·Schlierberg)는 지난 반세기 프라이부르크가 추진하고 성공시킨 환경 실험의 상징이다. 세계 각지의 많은 이들이 프라이부르크의 선도적인 친환경 정책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시의 환경 철학은 가로수 식재와 관리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시는 도심에 풍성한 녹음을 갖추는 것을 녹지정책의 첫째 기준으로 삼고 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등 친환경 이동수단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거리에 강한 햇빛을 가려줄 나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어컨 보급률이 낮고, 에너지 요금이 비싼 독일에선 도심 열기를 낮추고 바람의 흐름을 유도하는 가로수의 도시 기후 개선 효과에도 주목한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도심에 녹지를 원한다. 시는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는 정책을 넘어, 이미 식재된 가로수 한 그루 한 그루를 잘 관리해 크게 키우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시공원에서 만난 시청 녹지부 마틴 베르하우젠(Martin Wehrhausen, 사진) 부서장은 “시민들이 큰 녹지를 선호하기 때문에 나무를 오래, 크게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르하우젠 부서장에 따르면 프라이부르크 시는 이상적인 가로수 수령을 수종에 따라 최소 50년에서 100년으로 본다. 식재 후 성장이 불량하면 20년 미만 수령에서 교체하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다. 주택가인 모차르트거리(Mozartstraße)의 경우 가로수 수령이 100년을 넘고, 150년에 달하는 것들도 있다.
전정은 최소화한다. 식재 초기 1~2년은 주변 나무와 어우러지도록 수형을 잡아주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한다. 식재 후 15년이 지나면 1년에 한 번 상태를 점검해 필요할 때만 자른다. 보통 3~4년을 주기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전정이 이뤄진다.
시내를 다니다 보면 몸통이 하얗게 칠해진 가로수를 볼 수 있다. 대개 어린 개체다. 프라이부르크의 2~3월은 기온은 낮지만, 햇빛이 강하다. 보호 약품을 발라 나무에 금이 가는 것을 막는다. “새로 식재되는 나무는 양묘장에서 다른 개체들과 빽빽이 자라다 나오기 때문에 외부 기온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고 베르하우젠 부서장은 설명했다.
나무를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한 그루 한 그루 꼼꼼한 관리가 생명이다. 시는 나무마다 개체식별 번호를 달고, 행정 인트라넷을 통해 데이터를 관리한다. 개체번호가 있기 때문에 매년 외주업체로부터 개별 나무의 현황을 전달받아 필요한 관리를 할 수 있다.
이렇게 관리된 가로수는 4~5층 건물 높이만큼 자란다. 거대한 나무는 도심의 녹피율을 효과적으로 높이고, 거리에 거대한 그늘을 만든다. 프라이부르크에는 모두 2만3000그루의 가로수가 있다.
나무 아래에는 구도심을 모세혈관처럼 연결하는 수로 베힐레(Bächle)가 쾌청한 기운을 더한다. 베힐레는 중세시대에 화재 진압 목적 등으로 만들어졌다. 드라이잠 강물이 수로를 타고 도심 내부를 순환하기 때문에 물이 맑고 시원하다.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는 사람을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무, 수로와 함께 인상적인 한 가지는 의자다. 프라이부르크 시내에는 어디에나 앉을 공간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 시는 정책적으로 도심 곳곳에 의자를 배치해 관리하고 있다. 정성껏 키운 가로수의 그늘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한 사람들은 도심 자체를 휴식처라고 느낀다. 푸른 녹음이 사람들이 걷는 곳마다 그늘을 형성하고, 도심을 관통하는 수로는 가로수와 함께 생기를 돋운다. 자동차와 자전거, 사람이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도시는 마치 통일된 리듬을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의 편안한 얼굴은 이 도시 프라이부르크만의 표정을 만들어 내는 또 하나의 오브제다.
프라이부르크=글·사진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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