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초능력 아닌 문자의 힘으로 이뤄냈다, 시공간 제약 뛰어넘는 소통

2023. 9. 4.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는? 가장 최근 만들어진 문자는? 문자 궁금증 싹 풀어요

최근 단어와 문장 뜻을 이해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문자(文字)를 읽고 쓰고 활용하는 능력인 ‘문해력(文解力)’ 저하 논란이 일었어요.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인 문자를 잘 이해하고 사용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죠. 문자가 없던 시대의 인류는 말(소리)과 표정, 손짓으로 자기 생각과 감정을 다른 이에게 전달했어요. 하지만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시공간 제약이 있죠. 말을 기록할 수 있는 문자는 시공간 장벽을 뛰어넘고 의사소통의 범위를 확장했어요. 문자가 언제 발명됐으며, 인류 역사에 어떤 문자들이 있었는지 소중 학생기자단이 알아봤습니다.

이정한 학생기자·김태연 학생모델·조유나(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인간의 의사소통 범위를 확장한 문자의 발명과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일상생활·생각 등을 바위(암각화)나 동굴 벽(동굴벽화)에 그림을 그려 표현했어요. 이는 인류가 남긴 최초의 기록입니다. 1만4000년경 선사시대 예술 활동을 표현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기원전 4000~2000년경 세계 최초로 고래 사냥 장면을 바위에 그린 우리나라의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등이 대표적이죠. 인류의 사고력이 발달하면서 그림은 간략해져 추상적인 기호로 변해 문자의 탄생으로 이어졌죠.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인류의 역사는 ‘선사시대(구석기·신석기)’와 ‘역사시대(청동기)’로 나뉩니다.

문자는 언어(言語)의 음성을 시각적 기호로 옮긴 체계예요. 언어가 인간이 지닌 청각 능력을 활용한 소통 방식이라면 문자는 이러한 언어를 시각화한 소통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즉, 문자는 언어를 기록하는 수단입니다. 예를 들어 ‘한글’은 문자, ‘한국어’는 언어예요. ‘사랑해’라는 한국어를 음성 그대로 적는다면, 한글로는 ‘사랑해’, 라틴문자로는 ‘saranghae', 한자로는 ’四浪海’라고 적을 수 있죠.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양지원 학예사는 “암각화나 동굴벽화는 문자라고 보기 어려워요. 문자는 어떤 기호가 공동체 안에서 같은 의미로 이해돼야 하는데 그림은 그렇지 않죠. 암각화나 동굴벽화를 보면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추측할 수 있지만,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렵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어요”라고 말했죠.

고대 바빌로니아 홍수 신화 속 배의 기록을 쐐기문자로 적은 ‘원형 배 점토판'.
마야 문명의 천문학 지식을 마야문자로 기록한 『드레스덴 문서』.


역사적으로 인류가 사용한 문자는 400여 종이 넘어요. 하지만 현재 남은 문자 중 일반인이 쓰는 건 60여 종입니다. 나머지는 없어졌거나 종교적 의식 등 특수한 상황에서 사용되죠. 양 학예사는 “문자는 탄생과 전파, 소멸을 반복했다”고 설명했어요. "전쟁 등을 통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생기면서 피지배층의 문자가 사라지곤 했죠. 예를 들어 이집트문자는 그리스의 침략을 받은 이집트에 그리스문자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요. 공통된 종교·문화를 향유하는 아랍 국가들은 아랍문자를 같이 사용하죠. 몽골은 자신들의 몽골문자가 새로운 문화와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1946년부터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차용(몽골식 키릴문자)했어요.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표기할 문자가 없었던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중 하나인 찌아찌아족은 2009년 한글을 공식 표기 문자로 사용하기 시작했죠."

김태연 학생모델과 이정한·조유나 학생기자가 방문한 인천 연수구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고대 문자부터 미래의 문자까지 알아볼 수 있는 곳이에요. 프랑스 샹폴리옹 세계문자박물관, 중국 문자박물관에 이은 세계 3번째 문자 전문 박물관으로, 지난 6월 개관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양 학예사, 정세희 전시해설사와 함께 지하 1층 상설전시관에서 문자의 역사를 알아봤어요.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서문과 282개 법조문 등이 쐐기문자로 기록된 비석이다.


문자와 함께 시작된 인류 역사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문자는 갈대로 그린 선이 쐐기 모양을 닮아 이름 붙여진 ‘쐐기문자(설형문자)’예요. 쐐기문자는 기원전 3500년 무렵, 지금의 이라크·터키·시리아 등의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인들이 발명했죠. 이들은 강가 진흙으로 만든 점토판에 갈대로 선을 그어 글을 적었어요. 정 해설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쐐기문자가 적힌 점토판 하나를 소개했어요. “기원전 2000~1600년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고대 왕국인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만들어진 ‘원형 배 점토판’이에요. 가로 6cm·세로 11.5cm 점토판 앞뒤로 쐐기문자가 총 60줄 기록됐죠.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는 홍수를 소재로 한 신화가 전해지는데요. 이 점토판에 홍수를 피하기 위해 사용된 배를 자세히 묘사한 기록이 담겨 있죠.”(정)

태연 학생모델이 원형 배 점토판 앞에 전시된 큰 비석의 이름을 보고 “이 비석 이야기를 들어 봤어요”라고 말했어요. 바로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고대 바빌로니아 6번째 왕인 함무라비가 기원전 1755~1750년경 반포한 법률 문서예요. 2m가 넘는 비석엔 함무라비왕의 업적을 찬양하는 서문, 282개 법조문 등이 쐐기문자로 기록됐죠. 이전까진 작은 국가였던 고대 바빌로니아는 함무라비왕 집권 후 영토를 넓혀가며 강성대국이 됐어요. 늘어난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무라비 법전을 펴낸 겁니다.” 설명을 마친 정 해설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함무라비 법전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유나 학생기자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말했죠. “함무라비 법전 제196조를 보면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면, 그의 눈도 멀게 될 것이다’, 제200조엔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를 상하게 하면, 그의 이도 상해져야 한다’고 돼 있어요. 이를 통해 당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형벌을 내리고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죠.”(정)

기원전 196년 만들어진 ‘로제타석’은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5번째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으로, 성각문자(상단)·디모틱(고대 이집트 민중문자·중단)·그리스문자(하단)로 기록됐다.


기원전 31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선 ‘이집트문자’가 탄생합니다. 이집트문자는 신성하게 새겨진 문자라는 의미로 ‘성각문자(聖刻文字)’라고도 해요. 페니키아문자(기원전 1100년경)와 그리스문자(기원전 9세기경)를 비롯해 유럽·인도·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등에서 현재 사용되는 대다수 문자에 영향을 줘 ‘문자의 어머니’라고도 불리죠. 이 문자는 주로 신전이나 왕묘 벽면, 파피루스 등에서 볼 수 있어요. 파피루스는 이집트 나일강 주변에 사는 식물이자 그 줄기로 만든 종이 같은 기록매체죠. 고대 이집트는 기후가 온난하고 외세 침입이 적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문화를 발전시켰어요. 특히 측량·계산·치료법 등 실용적인 지식이 발달했죠.

기원전 1550~1069년경 만들어진 『파피루스 에버스』는 치료법이 기록된 고대 이집트 실용서예요. “『파피루스 에버스』에는 이집트문자로 치료법이 800개 넘게 기록돼 있어요. 그중엔 탈모 치료법도 있죠. 당시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뱀·하마·악어·사자 등 야생동물의 지방을 한 덩어리로 뭉쳐서 머리에 바르면 탈모가 치료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독일에서 이 치료법을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알려졌죠.”(정) 태연 학생모델이 “『파피루스 에버스』에 검은색 글씨 이외에 빨간색 글씨도 있어요”라고 말했어요. “검은색 글씨는 본문 내용, 빨간색 글씨는 문단을 나누는 기준이나 제목, 주제를 구분하는 것으로 추측돼요.”(정)

정세희(맨 오른쪽) 전시해설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고대 이집트 후기의 ‘텐트-하피의 미라 형태의 석관’과 여기에 적힌 이집트 문자에 관해 설명했다.
기원전 750년경 근동의 대표적 풍우(風雨)신 ‘하다드’에 대해 페니키아문자로 새긴 삼알왕국의 ‘파나무와 1세의 하다드 상’.


마야문자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현재 멕시코·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 등이 있는 메소아메리카지역에서 사용되다가 16세기경 유럽인들의 침략으로 인해 마야 문명과 함께 사라졌어요. 문자 모양은 대부분 사각형이며, 사각형 안에 여러 기호가 결합돼 만들어졌죠. “마야문자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게 특징이에요. 신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야인들의 마음이 담겼죠. 지금까지 발견된 마야문자 기록의 절반 이상이 달력(마야력) 내용이며, 제사장이 기록하는 달력에는 천문학 자료가 많아요. 대표적으로 독일의 도시 드레스덴이 소장한 ‘『드레스덴 문서』(900~1492년경)’를 보면 신들의 이야기, 금성·개기일식·개기월식 등 천문학 지식,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용구 등의 내용이 있죠. 숫자 ‘0’의 개념을 사용한 흔적이 있고, 보름달에서 다음 보름달까지 음력 한 달 주기를 29.53086일로 기록했어요. 이는 현대 과학의 계산치인 29.53059일과 매우 유사하죠.”

정 해설사가 “문자 형태가 다르다는 것 외에 마야문자와 이집트문자의 차이점이 보이나요?”라고 물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오래 고민하자 정 해설사는 “『파피루스 에버스』에서는 검은색·빨간색 글씨만 있었는데, 『드레스덴 문서』에서는 여러 색을 사용해 글의 중요도를 나타내고 천문학 등을 표현할 그림도 그렸어요. 또한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무화과나무 껍질을 이용해 기록매체로 썼죠”라고 말했어요.

페르시아문자로 쓰인 무굴 제국의 말 관리 지침서 『말의 책』
기원전 1352~1336년경 만들어진 ‘탈라타트 벽돌’은 이집트 신왕국 시대 대표 건축 자재다. 벽돌에는 투탕카멘 아버지인 파라오 아멘호텝 4세에 관한 내용이 이집트문자로 새겨졌다.


아람문자는 기원전 11~12세기경 근동(近東·현재 중동) 지역에서 공용문자로 사용됐어요. 아람인은 육상 무역에 종사하던 상업 민족으로, 아람문자는 아람인들의 교역을 통해 널리 퍼져 히브리문자(기원전 10세기경), 시리아문자(1세기경), 페르시아문자(7세기경) 등에 영향을 줬어요. “아람문자와 아랍문자를 헷갈릴 수 있는데요. 아랍문자는 아람문자의 영향을 받아 6세기경에 탄생해 지금까지 아랍문화권에서 사용합니다.”(정) 소중 학생기자단은 아람문자의 영향을 받은 페르시아문자로 쓰여진 『말의 책』(1825~1850년경)을 살펴봤어요. “인도 반도에 있던 이슬람왕조인 무굴 제국(1526~1857)은 많은 전쟁을 치렀는데요. 말은 전쟁의 핵심 수단이었죠. 책장을 넘겨보면 색깔이 다른 말 여러 마리가 등장해요. 말마다 먹이를 주는 방법, 씻기는 요령 등 관리 지침이 적혀 있죠.”(정)

인도·동남아시아 지역은 고대부터 다양한 문명의 교차로로서 여러 종족과 문화가 공존했어요. 이 지역의 최초 문자는 기원전 2400년경 등장한 인더스문자예요. 이에 영향을 받은 브라흐미문자(기원전 3세기경)는 오늘날 인도·동남아시아 문자 대부분의 기원이 됐습니다. 1292년 만들어진 ‘람캄행왕 비문’을 보던 태연 학생모델이 “문자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요”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죠. “람캄행왕 비문은 타이(태국)문자로 새겨진 최초의 비문이에요. 수코타이왕조(1238~1438) 3대 왕인 람캄행은 1283년 타이문자를 발명했다고 알려져 ‘태국의 세종대왕’이라고 불려요. 비문이 새겨진 돌기둥 4면에는 왕실 이력, 당시 정치·경제·사회·법제도·문화·풍습·종교·신앙, 람캄행왕의 위업 등과 함께 람캄행왕이 타이문자를 만들어냈다는 것도 기록됐죠. 다만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정)

‘태국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수코타이왕조 3대 왕 람캄행의 타이문자 창제·위업 등의 내용이 담긴 ‘람캄행왕 비문’.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고대 문자 관련 유물들을 보며 다양한 문자 형태에 신기해하는 소중 학생기자단.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 문자들

소중 학생기자단은 다음으로 라틴문자(로마문자)를 알아봤어요. 라틴문자는 기원전 6세기경 로마인들이 라틴어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었죠. “라틴문자는 그리스문자의 영향을 받아 한 개의 문자가 한 개의 음을 표시하는 ‘알파벳’ 체계예요. 라틴문자는 서유럽 전역에서 사용됐고, 교회 언어로도 활용됐어요. 유럽인들의 해외 진출과 식민지 건설로 인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가 라틴문자로 표기돼요.”(정)

라틴문자 관련 전시물 중 정 해설사가 1~2세기경 만들어진 로마제국의 ‘대리석 유골함 항아리’를 소개했어요. 항아리 중앙에 라틴문자로 ‘저승의 망혼들에게, 저 루크레티아 이아누아리아는 훌륭한 남편 그리이우스 루크레티우스 헤르마디론을 위해 이 항아리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적혔죠. “라틴문자 양옆에 무엇이 보이나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슬퍼하는 천사요”라고 말했어요. “사랑의 신으로 알려진 에로스(큐피드)예요. 화살통을 들고 있는 에로스가 눈을 감고 있는데요. 이는 에로스가 더 이상 사랑을 퍼트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슬픈 마음이 글과 큐피드의 모습에 담긴 것이죠.”

로마제국의 ‘대리석 유골함 항아리’엔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이 라틴문자로 기록됐다.
1134년 금(金)나라 황제 동생인 도통경략 낭군의 여행 기록을 거란문자와 한자로 새긴 ‘대금황제도통경략낭군행기’ 비석의 탁본.

현재 사용 중인 가장 오래된 문자는 한자입니다. 기원전 14세기경 중국에서 탄생한 한자는 오래전부터 한국·일본·베트남 등 주변 지역에 전파돼 거대한 한자 문화권을 형성했죠. 한자의 형태는 수천 년 동안 변화했어요. “변화 과정은 발생 시기, 기록매체, 구조적 특징 등에 따라 거북의 껍질과 짐승의 뼈에 새긴 문자인 ‘갑골문’, 서주(기원전 1046~771년) 시대 대표 문자인 ‘금문’, 선의 굵기가 일정하며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인 ‘소전’, 소전에 비해 직선적인 ‘예서’, 예서보다 반듯한 서체이며 위진남북조(220~589년) 시대에 형성된 ‘해서’ 등으로 구분되죠.”(정) 그중 해서가 현재 한자 표준 형태로 사용됩니다. 전시된 한자 유물 중 하나인 ‘사환부궤 탁본’은 서주 시대 후기, 청동으로 제작된 제기 궤(簋)의 바닥과 뚜껑 안쪽 면에 주조된 글의 탁본이에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금문으로 적힌 탁본을 보면서 “제가 알던 한자와 많이 달라요” “선의 흘림이 강해요”라고 말했어요.

양 학예사가 “한자는 글자 수가 수만 자 이상에 이르는 대표적인 표의문자(表意文字)”라고 하자 정한 학생기자가 “표의문자는 무엇인가요?” 물었어요. “문자는 크게 이집트문자·한자 등 표의문자와 한글·라틴문자 등 표음문자(表音文字)로 나뉘어요. 표의문자는 뜻이 담긴 문자, 표음문자는 소리가 담긴 문자예요. 예를 들어 한자 ‘八(여덟 팔)’은 숫자 8이라는 뜻을 가져요. 하지만 한글의 ‘팔’은 숫자 8이 될 수도 있고, 신체 부위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죠. ‘팔이 아프다’ ‘팔까지 셌다’ 등 문자끼리 어떻게 합쳐지느냐에 따라 의미를 알 수 있죠.”(양)

1797년 간행된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에 기록된 한글은 한자 해서처럼 가지런하고 똑바른 글자체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조유나 학생기자가 한글점자로 적힌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손가락을 이용해 읽고 있다.


한글은 문자를 만든 인물·시기·목적·원리를 알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문자입니다. 현존 문자 중 가장 최근의 것이기도 하죠. “1443년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에요. 한글이라는 명칭은 1910년 국어학자 주시경이 지었죠. 한글이 없던 때, 사람들은 한자를 쓰거나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 만든 이두(吏讀)·구결(口訣)·향찰(鄕札)로 우리말을 기록했어요. 세종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만들었죠.”(정) 한글은 백성들 사이에서 주로 쓰이고 과거시험 과목으로도 채택됐지만, 당시 국가 공식 문자로 인정받진 못했어요. 1894년 고종의 칙령으로 한글을 공식 문서에 쓰면서 국가 공식 문자가 됐죠. 현재 사용하는 한글 자모(字母)는 모두 24자예요. 한글 창제 당시 자음 17자, 모음 11자로 모두 28자였는데 ‘ㅿ(반치음)’, ‘ㆁ(옛이응)’, ‘ㆆ(여린 히읗)’, ‘·(아래아)’가 소실돼 자음 14자, 모음 10자만 남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도 있어요. 1894년 서양 선교사 로제타 홀에 의해 도입된 4점식 점자는 우리말과 글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죠.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 점자 역시 우리말과 달라 시각장애인들이 배우기 어려웠어요. 조선총독부 산하 제생원 맹아부 교사 박두성은 한글점자 필요성을 느껴 1926년 자음·모음·숫자 총 63자로 구성된 한글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만들었어요. 『훈맹정음』 원칙은 배우기 쉽고, 점 개수가 적고,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6점식 점자로 세로 3개·가로 2개 점을 조합해 초성·중성으로 구분된 자음·모음 문자를 표현했어요. 시각장애인은 중지·검지·약지 세 손가락을 이용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훑으며 글을 읽죠.”(양)

지하 1층 상설전시관 마지막 섹션에 전시된 각종 이모티콘·이모지를 둘러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문자의 미래는

상설전시관 마지막 섹션과 1층 기획전시관에서는 미래의 문자에 관해 전시 중입니다. “우리가 요즘 문자를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선사시대 사람들과 비슷해요. 선사시대 사람들은 바위나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려 자기 생각을 드러냈는데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그림을 문자처럼 쉽게 다루게 되면서 이모티콘과 이모지, 픽토그램 같은 그림이 문자처럼 사용되고 있죠.”(양)

픽토그램(Pictogram)은 그림을 뜻하는 ‘Picture'와 전보를 뜻하는 ’Telegram'의 합성어로, ‘그림문자’로도 불려요. 어떤 중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누구나 직관적으로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그림 언어체계죠. “픽토그램은 선사시대 암각화·벽화가 현대에 와서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교통표지판이 한 예죠. 교통표지판의 빨간색은 ‘금지’, 파란색은 ‘지시’, 노란색은 ‘경고’란 뜻으로 그림과 함께 한눈에 그 의미를 알 수 있어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 채택돼 사용되기 시작한 올림픽 종목 픽토그램은 스포츠 종목을 그림으로 표현해 전 세계 선수·관중·시청자들이 지역·문화와 관계없이 알아볼 수 있게 했죠.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올림픽 50개 종목의 픽토그램을 팬터마임으로 재현하는 공연을 해 이슈였어요.”(정)

얼굴 표정이나 사물을 나타내는 그림 ‘이모지’는 각종 SNS에서 상대와 간단하게 대화를 할 때 많이 사용되고 있다.

픽토그램이 공적인 의사소통을 돕는다면, 이모티콘은 사적인 의사소통을 더 풍부하게 만들죠. 휴대전화 문자나 카카오톡 등 SNS에서 감정을 간단하게 표현할 때 쓰는 이모티콘(Emoticon)은 1982년 9월 19일 미국 카네기멜런대학교 컴퓨터사이언스학과 스콧 엘리엇 팔먼 교수에 의해 탄생했어요. “그는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웃는 표정을 표현한 ‘:-)’을 게시했고, 기네스북은 이를 ‘최초의 디지털 이모티콘’으로 공식 인증했죠.”(양)

1990년대 후반 일본 통신회사들은 얼굴 표정이나 사물을 나타내는 그림 아이콘인 ‘이모지(emoji)’를 만들어냈고, 이모지는 현대인의 대화 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어요. 특히 2015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 이모지는 영국 옥스퍼드 사전 ‘올해의 단어’에 선정된 사상 첫 이모지가 되기도 했죠. 우리나라에서는 이모지를 이모티콘과 혼용하고 있는데요. 기획전시관 이모지 제작 섹션에서 소중 학생기자단은 각자 자신만의 이모지를 만들었습니다. 유나 학생기자는 별 모양 눈과 벌린 입으로 기쁨과 동시에 한숨을 쉬는 이모지를, 정한 학생기자는 눈과 입이 초승달 모양으로 울상이 된 이모지를, 태연 학생모델은 동그랗게 뜬 눈과 삐뚤어진 입으로 삐친 표정의 이모지를 만들었어요.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외부에 전시된 문자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조유나 학생기자·김태연 학생모델·이정한 학생기자(왼쪽부터).


“문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양 학예사가 묻자 소중 학생기자단은 “평소 이모티콘·이모지를 많이 쓰지만 한글 등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기존 문자들의 중요성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어요.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이모티콘·이모지·픽토그램 등이 더 많이 쓰이거나 편리함을 극대화한 새로운 문자가 탄생할 수 있죠. 전 세계가 가까워진 만큼 하나의 공통 문자를 만들어 모두가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양)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지난 6월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가 보고 싶었는데, 취재하게 돼 기뻤어요. 이번 취재로 문자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됐고, 전시된 각종 유물을 보면서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문자를 사용했는지 이해하게 됐죠. 매일 일기를 쓰고 있는데, 제가 쓴 일기가 어쩌면 300년 뒤 과거 문자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소중 친구들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가서 다양한 문자 이야기를 접하길 바라요.

김태연(인천 진산초 4) 학생모델

이번 취재는 문자의 탄생, 여러 문자 종류, 사라진 문자들 등 문자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저는 특히 『훈맹정음』이 신기했답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만 알고 있었지만, 시각장애인분들을 위해 박두성 선생님이 만든 『훈맹정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요즘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모지, 픽토그램과 문자의 미래까지. 문자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된 취재여서 행복했답니다.

이정한(서울 양진초 6) 학생기자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여러 문자가 쓰인 유물들을 보면서 인류 역사에서 이렇게나 많은 문자가 있었는지 깨닫게 됐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모티콘과 이모지에 대한 전시였어요. 다양한 이모티콘·이모지 모양과 이모지로만 구성된 책, 이모지가 만들어지는 과정, 나만의 이모지 만들기, 그리고 이모티콘·이모지가 일상 속에서 활용되는 예들이 전시돼 있어 재미있고 흥미로웠죠. 친구들과 대화할 때 이모티콘·이모지와 세계 여러 문자를 찾아보면서 여러 방법으로 제 감정과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해 볼래요.

조유나(서울사대부초 5) 학생기자

글=박경희 기자 park.kyunghee@joongang.co.kr, 사진=이승연(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태연(인천 진산초 4) 학생모델·이정한(서울 양진초 6)·조유나(서울사대부초 5) 학생기자, 자료=국립세계문자박물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