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 반짝이는 홍경이라는 물결

정소진 2023. 9. 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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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아요. 내 고유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세상에 흔들리지 않을래요." 모두가 잠든 밤, 홀로 고요하게 반짝이는 홍경이라는 물결.
「 흔들림 없는 남자, 홍경 」
셔츠는 Amiri. 링과 브레이슬릿은 모두 Chrome Hearts. 부츠는 Christian Louboutin. 벨트는 Our Legacy. 슬리브리스와 팬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오늘은 밤의 홍경을 담고자 했습니다. 어젯밤에 든 생각은

A : 요즘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얼른 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별생각 없이 밤을 보냈어요.

Q : 배우를 꿈꾸던 홍경은 어떤 아이였나요

A : 영화만 좇았어요. 직관적으로 끌리는 영화를 찾아보고, 영화적 영감을 가리지 않고 흡수하던 시기였죠. 그때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요. 지금은 무언가를 의식하며 ‘이걸 봐야겠다, 저걸 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때가 있는데, 어릴 때는 안 그랬거든요. 그 시기가 그립고, 말랑했던 홍경을 지키며 살고 싶어요.

Q : 당시 어떤 영화들을 좇았나요

A :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들, 특히 〈펀치 드렁크 러브〉를 수없이 돌려봤어요. 베넷 밀러의 〈폭스캐처〉 〈카포티〉 〈머니볼〉도요. 이마무라 쇼헤이 이야기까지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요(웃음).

Q : 2017년 데뷔 이후 6년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나요

A : 누구나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이 있겠지만, 그걸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이 완벽하게 마련되는 경우는 잘 없죠. 아주 작은 단계부터 밟아야 되고, 그러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서서히 가까워지고 점차 맞닿는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시간을 지나왔어요. 2017년부터 그렇게 발버둥치다가 이제 수면 위로 조금 올라온 것 같아요. 얼마 남지 않은 20대에 그간 느낀 것과 앞으로 느낄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 중입니다.

재킷과 팬츠는 모두 Versace. 티셔츠는 Maison Margiela. 네크리스와 브레이슬릿, 링은 모두 Tiffany & Co.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자폐성 장애인(〈결백〉), 성소수자(〈정말 먼 곳〉)까지 다양하게 접근해 왔습니다

A : 꼭 특성이 두드러지는 역할만 찾은 게 아니라 마음이 끌려서 참여했던 것 같아요. 뚜렷한 의도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선택한 작품은 없어요. 인물이 내 호기심을 얼마나 자극하는지, 참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지가 중요했죠. 요즘은 우리 나이 때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랑이나 우정 같은 감정이 담긴 작품에도 호기심이 생겨요.

Q : 이달 종영한 〈악귀〉에서 악귀 얽힌 사건을 수사하는 이홍새 형사로 김태리, 오정세 배우와 함께 극을 이끌었습니다. 촬영을 앞두고 김은희 작가에게 자주 질문했다고

A : 〈악귀〉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서사 과정에서 설명을 다 못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 여백을 채울 수 있는 질문을 했어요. 사건 사이의 이음새를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특정 신에서 홍새라는 친구가 느끼는 감정, 주변 인물들이 홍새에게 어떤 존재인지 등등. 홍새도 어느 순간 악귀의 존재를 믿게 되는데, 그런 상황이 동전 뒤집듯 확 바뀐 것처럼 보이지 않길 바랐거든요. 그런 미묘한 것을 잡아나가려고 했어요.

Q : 홍경은 귀신의 존재를 믿나요

A : 믿지 않습니다.

Q : 사랑하는 사람이 악귀에 씌면 어떡할 건가요

A :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든, 당연히 몸을 불살라 그 악귀를 없앨 것 같아요.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행복하려면 나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이 중요하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니까요. 그 마음이 내게 소중한 존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대입되면 더욱 의미가 커지죠.

재킷과 벨트는 모두 Drake’s. 팬츠는 Our Legacy. 슈즈는 Maison Margiela. 로브와 티셔츠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촬영현장에서 홍경은 어떤 사람인가요

A : 모든 걸 잊고 그 순간 느끼는 것들, 상대와 주고받는 에너지에 집중해요. 촬영 전 프리프로덕션을 할 때 감독님, 작가님을 자주 찾아 뵙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려 하죠. 시나리오를 읽고 느낀 걸 토대로 현장에서 합을 맞추기에는 연기적·시간적 여유가 없더라고요. 특별하지 않더라도 촬영 전 대화를 자주 나누며 서로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뒤 촬영할 때는 직관적으로 움직이려 하죠.

Q :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이미 경험한 역할을 다시 하거나, 편히 연기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했죠

A : 사실 모든 배역이 다 다른데, 다시 복기하니 웃기네요(웃음). 매 순간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뛰어드는 것뿐인데 말이죠. 조금 다르고 낯선 경험을 얻고 싶어서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Q : 편히 할 수 있는 배역을 피하는 습관이 배우로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 같다고 생각했어요

A : 외부 자극과 내부 자극으로 동력을 얻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내부의 동력으로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는 편인 것 같아요. 내가 영화를 얼마큼 사랑하는지 알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력이 생기고 긴장감도 따라오죠. 그래서 평소 불안하고 걱정도 많아요.

Q : 잘 운다고 들었습니다

A : 맞아요. 잘 울죠. 누가 슬퍼하면 함께 슬퍼해주고, 누가 힘들어하면 함께 힘들어하는 타입인 것 같아요.

재킷은 Amiri. 팬츠와 링, 벨트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감정의 교류를 잘하는군요

A : 공감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더 절실히 느껴요. 그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Q : 다른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오늘도 ‘순간’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네요.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 순간은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진귀하고 고귀한 것이죠. 그런 순간에 집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순간마다 느껴지는 솔직한 감정을 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려 하죠.

Q : 1996년생이니 만으로 27세네요. 지금 삶의 윤곽이 얼마큼 뚜렷해졌나요

A : 아직. 저는 항상 불안하고 걱정이 많아요. 너무 솔직한가요? 20대가 지나 30대가 되면 ‘그때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싶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수렁에서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기 어려워요. 뭐든 모호한 시기예요. 얼마 전에 친구와 이런 말을 했어요. “지금 엄청 큰 파도가 밀려오는데, 나는 서핑을 할 줄 몰라서 파도에 얹힌 채 허우적대는 느낌”이라고. 파도를 제대로 타보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물에 떠 있으려고 발장구 치는 상황인 것 같다고요. 이런 시기를 겪어야 더욱 성숙해질 수 있겠죠. 〈악귀〉의 홍새에게서도 많은 걸 배웠어요.

Q : 무엇을 배웠나요

A : 사회 초년생에게도 저마다의 생각, 고집 그리고 꿈이 있는데, 정해진 매뉴얼과 규격에 부딪히면서 점차 작아지고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죠. 세상에 정답은 없는데도 불구하고요. 각자에게 맞는 방법과 길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방법이 창의적인 걸 도출해 낼 수도 있거든요. 틀에 부딪히는 순간에도 스스로 작아지지 말자는 걸 홍새에게서 배웠어요. 홍새는 고집이 있고, 행동하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공고히 하는 친구거든요.

Q : 사람들은 홍경의 어떤 면을 흥미로워할까요

A : 재미없게 들리겠지만 영화, 문학을 정말 좋아해요(웃음).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파고들어요. 시류에 흔들리거나 바뀌지 않고 고유의 성질을 유지하려고 해요.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잖아요. 내가 가진 특성, 내 안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죠.

코트와 셔츠, 팬츠, 슈즈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그런 홍경이 고유하게 좋아하는 이야기는

A : 한강 작가를 정말 좋아해요. 요즘 〈내 여자의 열매〉를 읽는 중이에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를 좋아한다고 꾸준히 말해 왔는데, 이 영화에서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상하고 기괴한 상황으로 인해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약점을 털어놓죠. 인간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못난 부분을 숨기고 잘난 면만 보여주고 싶어 하잖아요. 상대가 싫어할까 봐 숨기는 우리의 솔직한 면모가 현실적으로 잘 드러난 영화라고 생각해요.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고, 너도 완벽하지 않고 나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마침내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이 영화에 나와요. 그 부분이 제게 큰 울림을 줬는데, 〈내 여자의 열매〉도 그런 이야기죠. 결함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 결함을 채워주거든요.

Q : 홍경에 대해 또 알아야 하는 새로운 면이 있다면

A : 활동적인 걸 좋아해요. 테니스, 축구, 농구, 수영 등 제가 비쩍 말랐지만 운동이란 운동은 다 좋아하고, 나름 잘합니다. 요즘 피아노도 배우는 중입니다(웃음).

Q : 내가 생각하는 ‘멋’이란

A : 자기만의 고유성을 가진 사람. 상황과 시대를 따르지 않고, 자기 것을 유유히 끌고 나가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나이테가 겹겹이 쌓이듯 저만의 것을 유지하고, 잘 다듬어가고 싶어요.

Q : 도전하거나 성취해 내고 싶은 건

A :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몰두해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어요. 그런 순간이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고요.

Q : 홍경이 가장 뜨거워지는 순간은

A : 촬영현장에서 무언가에 깊이 몰두해서 분명하게 좇고 있을 때. 보이지 않지만 동료들과 열정을 주고받으며 불꽃을 튀길 때가 있죠. 그런 순간에 저는 뜨거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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