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최대한 늦게 사주려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배지영 2023. 9. 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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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독서가' 어린이 주인공으로 동화 <범인은 바로 책이야> 를 쓰기까지

[배지영 기자]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그리고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에게 최대한 늦게 스마트폰을 주려 한 것. 우리 큰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가을에 스마트폰을 가질 수 있었다. 혼자만 스마트폰 없다고 자주 울먹이는 둘째아이에게 나는 마치 모래성 같았다. 너무 쉽게 허물어져 버렸다.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올라가기 전에 스마트폰 소유자가 됐다.

엄마 아빠한테 하루에 100번씩 카톡을 보내겠다며 재잘대던 아이는 스마트폰에 게임부터 내려받았다. 떠받들 듯 '모시는' 이 작은 도구 때문에 나는 아이를 회유하고 다그치다가 읍소하겠지. 우리는 사용 시간을 의논해서 같이 정했다. 심사숙고해서 만든 규칙은 코로나 앞에서 무력했다. 아이 일상의 무게추는 스마트폰 게임 쪽으로만 기울었다.

디지털 기기 사용 통제권을 잃은 나는 밤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스스로 책을 펴지 않는 아이도 듣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조금만 더 읽어주라고 조르는 날도 있었다. 어느 밤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읽어준 적도 있다. 우리는 불 끄고 누워서 책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날 본 동영상 채널이나 겪은 일까지 서로 공유했다.
 
 <범인은 바로 책이야>의 주인공 민재는 책을 읽지 않는 '무독서가' 어린이다. 이 책 저 책 다 읽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 주니어김영사
 
중학교 1학년 생활 석 달째, 둘째아이는 정중한 태도로 내 의견을 구했다. 학원 수업 끝나면 오후 7시 50분. 집에 와서 씻고 밥 먹고 나면 오후 9시. 키 크려면(성장기가 늦은 편) 적어도 오후 10시 30분에는 누워야 하는데, "엄마, 엄마가 봐도 나 정말 시간 없겠지?"라며 게임을 언제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리하여 책 읽어주던 시간은 시청률 낮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처럼 폐지됐다.

솔직하게 나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동영상 보면서 하루를 마치고 싶었다. 하지만 둘째아이보다 열 살 많은 큰아이를 키워봐서 안다. 아이는 순식간에 스무 살이 되어 집을 떠나 버리니까 함께 지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가꿔야 한다. 언젠가는 스마트폰에 완전히 패배하겠지만, 게임과 동영상 채널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지 않도록 책을 읽어준 거다.

평일 밤에도 '파워 당당하게' 게임 하는 둘째아이 곁에서 나는 노트북을 켰다. 아이가 준 영감을 기록한 폴더를 차례차례 클릭했다. 책을 펴면 자꾸 목이 마르고, 열 줄도 안 읽었는데 똥꼬에 팬티가 끼어서 간지럽고, 집중해서 두 페이지쯤 읽으면 하루 내내 땀 흘리고 논 것처럼 몸이 노곤해지는 '무독서가' 어린이가 보였다. 스마트폰과 독서를 소재 삼아서 동화 <범인은 바로 책이야> 작업을 시작했다.

'무독서가' 어린이의 변화
 
 <범인은 바로 책이야>
ⓒ 배지영
 
주인공 어린이의 이름은 강민재, 소원은 스마트폰을 갖는 것. 처음에는 민재를 초등학교 3학년으로 설정했다. 취재해 보니까 유치원 정규 수업 마치고 학원 가는 일곱 살 반 아이들 몇몇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었다. 방과 후 스케줄이 있는 초등학교 1학년들도 스마트폰을 학교에 들고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면, 스마트폰을 가진 어린이가 절반을 차지했다.

'스마트폰 없는 초등학교 1학년은 울 일이 많아.'

<범인은 바로 책이야>의 첫 문장에는 스마트폰 없는 강민재 어린이의 '철학'을 넣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방과 후 교실에 처음 간 날, 민재는 엄마한테 연락할 스마트폰이 없어서 새로 신은 실내화에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현장체험학습 다녀오는 버스 안, 친구들은 스마트폰으로 게임 하는데 민재는 창밖만 바라보며 콧물을 훌쩍였다.

스마트폰이 없어서 겪는 서러움은 계속 적립됐다. 주말에는 윗집 사는 친구 도현이랑 딱지 치고 싶어도 민재는 엄마 아빠를 따라 지루한 콘서트에 갔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좋아하는 몬스터 게임도 엄마 스마트폰에만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즐겨 가는 도서관과 서점에 따라다녔다. 민재는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다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민재는 서점에서 엄마의 '범죄'를 목격하고 만다.
ⓒ 주니어김영사
 
그러던 어느 날, 민재는 '범죄' 현장을 목격했다. 하필이면 서점에서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엄마였다. 그때부터 민재는 신나기만 하던 몬스터 게임이 재미없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이 으하하하 웃어도 혼자만 심각했다. 민재는 스스로 인생의 목표를 바꾸었다. 스마트폰 사는 것에서 엄마를 구하는 것으로.

어른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울고 싶다. 나는 독서모임 하러 이웃 도시에 가다가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적 있다. 독서모임 동료들은 처음 간 음식점, 처음 걷는 거리, 처음 방문한 공간의 사진을 찍어서 실시간으로 단체방에 올렸다. 스마트폰이 없는 나는 동료들과 같이 맛있게 먹고 의미 있는 책 이야기를 나눠도 깜깜한 데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잃어버린 스마트폰은 몇 시간 만에 찾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아도, 스마트폰이 없어서 물건값을 결제할 수 없고, 연락 안 돼도 걱정하지 말라는 안부를 식구들에게 전할 수 없고, 일 때문에 걸려온 전화도 받지 못했다. 그때의 암담한 경험은 세게 넘어져서 꿰맨 무릎의 슬개골 같았다. 자꾸 만지작거렸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도 스마트폰 때문에 흉터가 생겼겠지. 단체방에 올라온 학급의 공지사항을 혼자만 모르고. 축구 골대 뒤 화단에서 발견한 콩 벌레 사진을 찍지 못하고, 이사 간 친구네 집에 갔다가 돌아올 때는 버스 노선을 검색할 수 없어서 1시간 넘게 걸어와야 했다. 사실 스마트폰은 언제나 어디서나 필요했다.

스마트폰 vs 책, 당신의 선택은?

부산에 사는 이동건 어린이와 이시영 어린이는 <범인은 바로 책이야>를 읽고 나한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물었다. "결국 민재는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을까요?" 연필로 힘주어 쓴 손편지는 카톡도 없고 인스타그램 DM도 없던 수십 년 전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때 나도 시영 어린이처럼 편지를 평범하게 접지 않았다. 손바닥 만한 크기로 아귀가 딱 맞게 접었다. 편지를 펼칠 때는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 같았다.
 
 탐정이 되지 못한 엄마는 민재와 탐정 만화 보는 걸 좋아한다. 범인을 잘 맞히지는 못하지만.
ⓒ 주니어김영사
 
<범인은 바로 책이야>의 민재 엄마는 장풍과 염력, 추리 능력을 독서로 알았다. 크리에이터가 주기적으로 동영상을 업데이트하는 것처럼, 민재 엄마는 책에 담긴 재미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알려주려고 아들과 서점에 다녔다. 엄마의 그런 마음이 재깍재깍 닿지 않아서 민재는 책을 읽지 않는 '무독서가'가 되었다.
스마트폰 VS 책. 밸런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고뇌하지 않을 거다. 읽고 쓰는 게 직업인 나도 고단한 날에는 소파에 누워서 스마트폰만 하고 있으니까. 하루도 빼먹지 않고 책을 읽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작가의 말'에 효도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1년에 한 번, 어버이날에는 민재처럼 꼭 책을 읽으라고.
 
▲ 독서골든벨 한길문고 생태독서단은 <범인은 바로 책이야>로 독서골든벨을 했다.
ⓒ 한길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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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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