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대통령에게 외쳐야 했던 이 남자

양형석 2023. 9. 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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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인도영화의 매력 보여준 <내 이름은 칸>

[양형석 기자]

<레인맨>의 레이몬드(더스틴 호프먼 분)와 <포레스트 검프>의 포레스트(톰 행크스 분), <아이 엠샘>의 샘(숀 펜 분), <말아톤>의 초원(조승우 분), <증인>의 지우(김향기 분)까지. 영화의 장르와 캐릭터의 성격은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영화 캐릭터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 속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들은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착하고 순수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작년에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가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다소 어색했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법정 안팎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많은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다(심지어 우영우는 머리 속에 고래가 나타나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필살기'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는 각자의 독창적인 특징이 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특히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장르에서 종종 등장하곤 한다. 지난 2010년에도 아내가 한 말을 듣고 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미 대륙을 여행하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한 남자의 감동스토리가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거창한 내용은 없지만 소시민의 잔잔한 이야기로 큰 울림을 줬던 인도영화 <내 이름은 칸>이다.
 
 <내 이름은 칸>은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미 대륙을 여행하는 인도 무슬림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 필라멘트픽쳐스
 
자국영화 점유율 8~90% 자랑하는 '발리우드' 영화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치기 전이었던 2019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영화의 중심'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영화시장을 가지고 있었다(미국영화협회 집계 기준). 인도는 미국시장을 제외하고 중국, 일본, 한국,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영화시장을 가지고 있다.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인도의 1인당 국민 소득에 비하면 영화산업은 비교적 크게 발전한 편이다.

실제로 인도 영화는 봄베이 지역과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통칭 '발리우드'로 불리고 있다. 매년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가 1000편 넘게 제작되고 스크린 쿼터제(자국영화를 일정편수 또는 일정비율로 의무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법)를 도입하지 않았음에도 무려 8~90%의 높은 자국영화 점유율을 자랑한다. 2000개가 넘는 언어를 가진 나라답게 매우 다양한 언어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도 인도영화의 특징이다.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워낙 높다 보니 세계를 주름잡는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들도 인도에서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개봉 당시 세계 시장을 지배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은 인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덕분에 간신히 3000만 달러의 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2009년에 개봉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타이타닉>의 기록을 갈아 치웠던 <아바타> 역시 인도에서는 <타이타닉>보다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다.

흔히 국내 또는 세계 관객들은 인도영화라고 하면 '마살라'로 불리는 인도 특유의 뮤지컬 영화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마살라'는 3시간이 넘는 긴 상영시간 동안 청춘남녀의 연애담이나 복잡한 가족사 등을 보여주다가 영화 중간중간 흥겨운 음악과 화려한 군무가 이어지는 뮤지컬 영화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인도의 마살라 영화를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다(Any Body Can Dance)"는 의미를 가진 'ABCD무비'로 부르기도 한다.

지난 1999년 BBC에서 선정한 '위대한 밀레니엄스타 5인'에서 알렉 기네스와 말론 브란도, 로렌스 올리비에,찰리 채플린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한 아미타브 밧찬은 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한 인도의 국민배우다. 인도영화의 '3대 칸'으로 불리는 아미르 칸과 샤룩 칸, 살만 칸 역시 인도영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스타들이다. 그 중 샤룩 칸의 대표작 <내 이름은 칸>은 국내 관객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인도영화 중 하나다.

국내에서도 9.2~3점의 관객 평점 받은 수작
 
 칸은 여행 도중 자신에게 도움을 준 마마제니의 마을이 홍수 피해를 입자 그녀를 돕기 위해 마을로 돌아간다.
ⓒ 필라멘트픽쳐스
 
인도는 힌두교가 80% 이상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슬람교 역시 13%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내 이름은 칸>은 이슬람교 집안에서 태어난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리즈반 칸(샤룩 칸 분)이라는 청년이 자신을 돌봐주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동생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와 적응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화장품 외판원이 된 칸은 그곳에서 싱글맘 만디라(까졸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그렇게 아무도 부러울 게 없었던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던 칸의 삶은 2001년 9월 11일 이후 완전히 뒤바뀌고 만다. 무슬림이라는 이유 만으로 이웃들에게 배척 당하고 급기야 사랑하는 아들 사미르가 '칸'이라는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집단구타를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크게 분노한 만디라는 아들의 죽음에 분노조차 내지 못하는 칸에게 "미국 대통령에게 가서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고 말한 후에 돌아오라"고 외친다.

아내의 말을 들은 칸은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칸은 조지아주의 작은 마을에서 마마제니(제니퍼 이콜스 분)를 만나 아들을 잃은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배우지만 LA의 한 행사장에서 테러리스트로 오해 받아 체포된다. 방송의 힘을 통해 무죄로 풀려난 칸은 홍수가 덮친 마마제니의 마을로 돌아가 마을의 복구를 도왔고 그 곳에서 버락 오바마 당선자를 만나 "내 이름은 칸이에요.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2001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 구성된 테러집단 알 카에다에 의해 9.11테러를 당했을 때 미국 내에서 무슬림들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 정부는 알 카에다와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9.11 테러 이후 대다수의 무고한 무슬림들은 단지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아야 했다.

<내 이름은 칸>은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을 찾아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리즈반 칸을 통해 "무고한 한 명의 죽음은 전 인류의 죽음과도 같다"는 영화의 주제를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내 이름은 칸>은 국내에서도 전국 38만 관객으로 큰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국내 N포털사이트 평점 9.29점, D 포털사이트 9.2점을 받았을 정도로 관객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40대 중반에 20대 연기가 가능한 배우
 
 샤룩 칸은 아미르 칸,살만 칸과 함께 인도영화의 '3대 칸'으로 불리는 유명배우다.
ⓒ 필라멘트픽쳐스
 
인도에서 배우와 가수, 성우, 영화감독, 작가, 프로듀서, 사업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샤룩 칸은 50대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1965년생)에도 여전히 30~40대의 젊은 캐릭터 연기가 가능한 동안 배우다. <내 이름은 칸>에 출연할 때도 샤룩 칸의 나이는 45세였는데 20대 젊은 청년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영화 속 리즈반 칸처럼 실제 이슬람교인 샤룩 칸은 지난 1991년 영화에서처럼 힌두교 여성과 결혼했다.

<내 이름은 칸>에서 칸과 재혼하는 힌두교 여성 만디라를 연기했던 까졸은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도에서는 인도 대표 영화제인 필름페어 어워즈에서 3번이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다. 만디라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칸에게 모진 소리를 하지만 남편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미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남편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내 이름은 칸>에서는 영화 막바지에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고 소개되는 대통령 당선인이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관객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의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크리스토퍼 B. 던컨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미국의 대통령 당선인은 칸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의 이름은 칸. 당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니죠"라고 먼저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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