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가 불러낸 뜨거운 이름, 아티스트 우한나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경진 2023. 9. 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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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 2023'의 '포커스 아시아' 선정 작가이자 제1회 '아티스트 어워즈'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다시 한 번 주목받은 우한나. 유년기를 가득 채운 봉제인형, 우연히 발견한 자신의 기형적 성장, 데이빗 보위와 루이스 콜의 에너지가 한 몸을 이뤄 탄생한 그의 기묘한 이야기.

Q : 서울 성북동의 한적한 골목에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당신과 잘 맞는 동네인가요

A : 모든 게 적절해요. 템포도 맞고, 너무 반듯반듯하지 않죠. 성북천도 좋고, 성곽이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요. 젊은 층, 노년층, 어린아이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이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생각하기 쉽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Q : 지난 3월 프리즈 런던의 상설 전시장 ‘넘버 9 코르크 스트리트(No.9 Cork Street)’에서 전시를 선보이며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한 최초의 젊은 여성 작가가 됐습니다. ‘프리즈 서울 2023’을 앞두고 ‘포커스 아시아’ 섹션 참여 작가와 ‘아티스트 어워즈’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어요

A : ‘포커스 아시아’만 돼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티스트 어워즈’ 1회 수상자로 당선되자마자 ‘광광’ 울었습니다. 될 것 같지 않았거든요. 경력상 가장 모자랄 테니 그냥 기획서 읽는 분들을 웃기고 싶었어요. 저에게 그런 객기가 있어요. 그런 면이 한몫한 것 같습니다. 기획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기 모인 예술을 사랑하는 너희들 모두 환영한다. 이곳은 위대한 무도회다. (중략) 나의 젊음은 너의 늙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너의 늙음은 나의 젊음을 경험했기에. 건배.” 기획서 주제가 ‘시간’이었어요. 저는 시간을 ‘에이징(Aging)’으로 해석했어요.

‘Standing’(2023)과 ‘Bleeding’(2023)’.

Q : ‘아티스트 어워즈’ 전시는 얼마 전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했던 마젠타 핑크의 ‘밀크 앤 허니(Milk and Honey)’(2023)를 확장해 진행할 예정인가요

A : 아홉 개의 조각으로 제작하고 있어요. 가장 큰 피스는 너비가 6.4m가량 됩니다. 작품의 총길이는 40m, 폭은 6m 정도예요. ‘밀크 앤 허니’ 군단, 즉 엄청나게 큰 박쥐 떼가 날아갑니다. ‘밀크 앤 허니’의 모티프는 여성의 유방이기도 하지만 박쥐이기도 해요. 어느 순간부터 박쥐라는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코로나19로 박쥐의 이미지가 악랄하게 다뤄진 측면이 있어요. 전 그때부터 박쥐가 좋더라고요. 그러니까 유방과 박쥐, 오명을 쓴 두 가지 신체를 붙여보고 싶었죠.

Q : 여성의 유방이 쓴 오명은

A : 지속적으로 대상화되다가, 대상화하던 이들이 보기에 그 모양이 좀 미워지면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 박쥐가 쓴 오명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박쥐와 유방은 아주 멀지만 실은 비슷하고 같다는 생각으로, 하나의 생명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모두 전시 〈오토힙노시스 Autohypnosis〉에서 선보였다.

Q : 대표작 ‘Bag with You’(2019)는 본인의 신장이 가진 기형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자전적 이야기가 기점이 된 작업입니다. 여러 상황에 놓인 복부를 표현한 ‘Abdomen’을 거쳐 근작인 ‘Bleeding’(2023), ‘Milk and Honey’(2023), ‘Mama’(2023)에 이르면서 중심점이 달라진 것 같아요. 여성의 신체기관을 소재로 여성적 화두를 던집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A : 제 기형적 신장에 관해 다룬 뒤, 점점 주변 내장에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여성의 생식기나 자궁, 난소, 나팔관 등의 생김새를 자세히 봤죠. 최근 개인적으로 나팔관 조형술을 받았는데, 나팔관이 외계 생명체 혹은 에이리언처럼 생긴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러면서 서서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확장되기 시작했어요. 여성성으로 치우친 것은 아니고, 확장이라고 봅니다. 제 신체적 나이가 이제 생물학적으로 생식활동을 하기에 적정한 나이를 넘어서고 있거든요. “내년부터 노산”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과 마주합니다. 당연히 여성의 생식능력에 관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죠.

Q : ‘프리즈 서울 2023’의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 출품 예정인 작품 역시 중요한 확장인 듯합니다. 패브릭으로 만든 조각에 뼈대를 세우기 시작했어요

A : 나뭇가지 혹은 인체의 다리뼈, 생선 뼈 같은 것이 하나로 섞여 혼재된 듯한 생김새의 뼈대를 세웁니다. 뼈대 사이사이에 패브릭으로 만든 살과 근육을 붙입니다. 죽은 것 같지만 살아 있고,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죽어 있는 양가적인 무언가를 작업하고 있어요.

부드러운 조각에서 바느질하는 노동은 표현과 덩어리를 찌르고 깁고 엮는 행위에서 드러나는 욕망과 해소의 내적 갈등을 오간다.

Q : 유사한 맥락으로 근래 전시한 ‘Mama’가 있죠. 작품 제목을 알고 보면 매우 처절하게 느껴집니다

A : 지난해 갤러리 실린더에서 정수정 작가와 2인전을 했는데, 당시 정수정이 던진 키워드가 단초였어요. 거인과 용이었죠. 그게 너무 좋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거인이 왠지 여자여야 해. 그리고 여자라면 왠지 용의 알을 지킬 것 같지 않아?” 무척 직관적인 대화였어요. “왕은 용의 알을 왜 지킬까? 엄마 용이 죽었나? 그 용도 아마 알을 지키다 죽었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엄마 용을 떠올렸어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멋지고 거대해서 늘 타깃이 되는 생명체를 생각했어요. 지키고 싶은 것을 늘 사수하려 들지만, 곧장 어려움에 처하고 갈기갈기 찢긴 채로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모르게 남아 있는. 근래에는 점차 아이디어가 신체에서 자연으로 연결됩니다.

Q : 여성의 신체에서 자연으로 탐구 영역을 넓히는 일에는 당신의 어떤 열망이 담겨 있을까요

A : 자연의 회복 가능성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있죠. 파괴된 뒤 스스로 재건하는 힘이 여성의 신체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같은 속성이라 믿고 싶었던 거죠. 예술가는 망한 과학자 같아요. 과학자는 아닌데 조금 바보 같고 영적인, 엉망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보거든요. 제가 그래요.

부드러운 조각에서 바느질하는 노동은 표현과 덩어리를 찌르고 깁고 엮는 행위에서 드러나는 욕망과 해소의 내적 갈등을 오간다.

Q :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했어요. 바늘 작업을 시작한 것이 패션에 대한 관심 때문으로 알고 있어요

A : 멋진 옷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어요. 애니메이션 굿즈와 봉제인형들. 그 모든 관심사가 섞여서 자연스럽게 바늘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해본 바느질이 되게 매력적이었고, 재료를 정해주지 않고 툭툭 과제를 던진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재료를 찾을 수 있었어요.

Q : 바느질은 어떤 면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나요

A : 다 보이거든요. 얼추 다 보여요. 아무리 바느질을 안쪽으로 해도 이렇게 텐션을 주면 어디를 통해 들어갔다 나왔는지 다 보여요. 들어가서 꿰고 다시 다른 쪽으로 들어가서 꿰면 이쪽과 저쪽 사이에 텐션이 생기고, 그렇게 꿴 실을 쭉 당기면 둘이 붙어요. 하지만 둘은 정말 붙는 게 아니에요. 맞닿아 있기만 한 건데 바느질이 접착 역할을 하는 거죠. 무엇보다 단단해지기도 해요. 무한정 연결할 수도 있고. 또 실을 당기는 정도에 따라 모양이 일그러지기도 하고요.

동시대 조각과 차별화된 형태와 질감을 실험해 온 우한나.

Q : 학교에서 조형을 공부할 때 접하는 재료에서는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매력이네요

A : 맞아요. 저는 다른 친구들이 신기했어요. 왜 그렇게 화방에 있는 재료만 쓸까?

Q : 당신은 처음에 재활용 패브릭을 사용했죠

A : 학부 때 작업에 필요한 천을 구하기 위해 학교 게시판에 공지를 올린 것이 계기였어요. ‘안 입는 옷이 있으면 저에게 다 주세요. 작업실 몇 호.’ 이불부터 데님 팬츠까지 사람들이 온갖 천을 갖다 줬어요. 이상한 언니는 속옷까지 줬죠! 물론 도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재활용 천을 활용해 3학년 개인전을 준비했습니다. 제작비라는 걸 받으면서 조금씩 동대문 원단시장에서 천을 구매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구매한 천의 비율이 조금 더 많아진 상태예요.

‘Mama’(2023).

Q : 작업실에 조각 천을 모아둔 상자가 보이더군요. 아직 자리를 찾지 못한, 강낭콩처럼 작게 꿰맨 패브릭 볼도 여러 개 발견했습니다. 작업실을 둘러보는 내내 보물찾기하는 기분이에요

A : 사용하고 애매하게 남은 천이 있어요. 상자를 두 개 정도 놓고 계속 뭔가 남을 때마다 담아둡니다. 필요하면 다시 꺼내 사용해요. 쓰고 또 면적이 남으면 보관했다가 다시 씁니다. 말 그대로 손톱만 할 때까지 사용해요. 버리기 가까워요. 매번 다양한 천을 쓰는데, 어느 날 어떤 작업을 하다가 얼마 전 사용한 천들이 생각날 때가 있어요. 상자 안에 정말 제가 필요한 부분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천을 함부로 보낼 수 없죠.

Q : 좋아하는 색의 물감을 남김없이 쓰고 싶어 하는 화가의 마음과 같군요

A : 그런 거예요. 패브릭으로 아직까지 해보고 싶은 것이 무궁무진합니다.

작가는 바늘과 실, 패브릭으로 덩어리의 질감에 주목한다.

Q : 노동집약적 작업입니다.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한 땀 한 땀 진행되는 작품 과정과 엄청난 양의 시간을 스스로 어떻게 감각하면서 보내는지

A : 음악을 많이 들어요. 볼륨을 거의 최대치로 올립니다. 오늘은 루이스 콜 음악을 계속 듣고 있어요. 어제 루이스 콜의 내한 공연을 보고 왔거든요. 현장에서 느낀 기운을 계속 잡아두고 싶어서요.

Q : 당신에게 가장 강렬한 영감을 주는 존재는

A : 아무래도 음악가들과 가장 교감이 많습니다. 음악을 정말 다양하게 듣는 ‘헤비 리스너’예요. 성북천을 산책하는 이유도 음악을 100% 듣기 위해서고요. 같은 길, 같은 풍경을 보며 걸으니까 거의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근래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곡을 많이 들었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불새’도 들었어요. 가장 바빴던 지난 3개월간 많이 들은 건 90년대 초반의 미국 힙합이에요. 약간 재즈가 섞인 올드스쿨 힙합을 한창 들었어요. 당시 사람들의 음악은 참 용감하고 날것이에요. 래퍼의 캐릭터성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음악처럼 느껴져요. 지금과는 달리 제작된 느낌이 덜해요. 데이빗 보위를 좋아합니다. 루이스 콜도 그렇고요. 오합지졸이 모여 ‘우당탕탕’하는 걸 너무 좋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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