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삿바늘 목에 찌르는 사람들, 슬프다는 말 밖에는

장소영 2023. 8. 2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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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좀비거리'로 유명한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 '봉사 활동'을 가다

[장소영 기자]

미국 맨해튼의 냄새가 또 바뀌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으로 좋아진 점이 딱 하나 있었다면, 미국 지하철과 거리에서 나던 오물 섞인 퀴퀴한 냄새가 그나마 사라졌다는 거다. 희미한 락스 냄새와 손 세정제 향이 한동안 맨해튼의 냄새였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차라리 이전의 퀴퀴한 냄새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약류 일종인 대마초 향 때문이다. 2년 전, 기호용 마리화나 판매와 사용이 합법화되면서 요새는 어딜 가나 대마 향이 진동하고 있다. 타임스퀘어 지하철역에 내리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퀴퀴한 냄새와 묵직한 대마 향이 나서, 아이들을 동반했을 때는 일부러 한 정거장을 지나친 뒤 내리곤 한다. 엘리베이터, 식당 화장실, 지나치는 행인들 사이, 예쁘고 아담했던 도심의 작은 공원 곳곳에서도 대마 향이 흐른다. 

혹자는 나이 제한도 있고, 성인이 합법적으로 구매하여 가볍게 즐기는 기호용 대마가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것이다. 문제는, 결코 낮은 단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법을 피해 가며, 절대 가볍지 않은 다음 단계로 퍼져가는 걸 나는 보고 들었다. 

이제는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좀비 거리로 유명해진 곳,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를 지난 15일 자원봉사로 다녀왔다.  

'바늘 공원'이라 불리는 곳
 
▲ 버려진 주사기 뚜껑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거리 청소 봉사를 하던 중 처음엔 이것이 어떤 쓰레기인지 알지 못하고 손으로 집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자주 봉사를 나오시는 분이 알려주셔서 이게 주사기의 뚜껑들임을 알게 되었다. 함부로 손으로 집지 말 것, 일회용 비닐장갑을 뚫는 것도 있으니 반드시 청소용 집게를 사용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 장소영
 
'위험 지역이다, 거기선 경찰도 당신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죽은 자들의 땅이다, 개를 산책시키지 못할 만큼 쓰레기와 바늘이 나뒹군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과 멋진 놀이터가 있지만 아이들이 봐서는 안 될 장면들이 더 많아 데려가지 않는다, 좀비를 볼 수 있는 최상의 지역, 그 지역에 들어갈 거면 무기를 챙겨라'...

지도 앱에 걸린 지역 리뷰만 읽어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좀비처럼 변한 사람들을 봐왔던 터라 조금 긴장이 되었다. 가족들에게도 중독자들의 모습에 너무 놀라지 말라고 미리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리뷰 하나를 읽어 주었다. 

"인생이 절망으로 가득 찬 버려진 노숙자(중독자)에게 희망을 주는 언덕. 그나마 거기에서 그들은, 그들을 돕기 위한 사람들을 만난다." 

오늘은 우리 가족이 그들이 만날 사람 중 하나였다. 

켄싱턴은 A~C 세 개 구역으로 나뉜다.  우리가 방문할 곳은 비교적 안전하고 중독 수위가 낮은 이들이 모인 C구역이다. 제법 근사하게 지어진 맥퍼슨 스퀘어 도서관이 언덕 위에 자리 잡았고 지상 고가철도로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교통 좋은 동네였다.

도서관은 여전히 운영 중이었지만 폐쇄를 고려하고 있다 들었다. 시설도, 서적 보유도, 지역 주민의 접근성도 좋지만 위험 지역이 되고 보니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점심 나눔 봉사도 원래는 도서관 앞에서 했는데, 도서관 측 요청으로 한 블록 떨어진 거리로 물러났다 한다. 
 
▲ 언덕위의 맥퍼슨 스퀘어 도서관(Mcpherson Square Library) 주민들에게 유용한 도서관이지만 최근 주변에 마약 중독자가 늘면서 치안과 위생 문제 때문에 폐쇄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을 품을 주민과 봉사 단체, 자원 봉사자들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행사와 나눔, 돌봄, 거리청소를 이어가고 있다.
ⓒ 장소영
 
현장에 가보니 앱 리뷰에서 읽은 대로 몇몇 단체에서 온 푸드 트럭 두어 대가 음식 나눔을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합류한 봉사팀은 뉴비전 센터 채왕규 목사 팀이다. 한국에도 켄싱턴 거리 소식을 종종 전하는 재활 전문 특수 사역자로 잘 알려진 분이다. 매주 화요일, 소수가 모여 간단한 점심을 준비해 켄싱턴으로 나온다. 오늘은 자원봉사 인원의 절반이 우리 가족처럼 처음 봉사를 나온 터였다.

거리에 도착하자 따로 지시 받은 것도 아니고, 서로 잘 알지도 못했지만 마치 늘 해 온 것처럼 누군가는 거리 청소를, 누군가는 음식 나눔을, 누군가는 줄 서 있는 중독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무서워서 떨린다"던 우리 집 십 대 아이들도 어느새 핫도그를 건네며 몇 마디 짧은 대화라도 나누려 했다. 

그나마 C 구역 중독자들은 눈 맞춤도 되고, 몸이나 인지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는 아니었다. 언뜻 보면 노숙자(homeless) 봉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차차 여유가 생겨 찬찬히 둘러보니, 여느 노숙자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음식을 건네받는 손이었다. 손이 코끼리처럼 몇 배나 부어오르고 피부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노출된 다리도 보였다. 이미 구멍이 나 있는 부분부터 당장 치료가 필요할 만큼 곪아들어간 상처투성이의 바짝 마른 다리는 몸을 지탱하기 버거워 보였다.

이미 다리가 꺾여 제대로 서지 못하거나 걷지 못하는 사람도 제법 보였다. 하키 스틱, 억지로 이어 붙인 듯 위태로운 지팡이, 빗자루에서 떼 낸 막대기에 의지하여 긴 줄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이도 있다. 

'나를 위해 뭐든 해달라'던 어느 중독자   
      
점심 나눔 봉사가 마칠 무렵 한 사람이 휘청거리며 다가와서는 끝났냐고 물었다. 그는 '나는 언제나 이렇다. 정말 운이 없다. 매번 눈치채고 다가오면 이미 음식은 다 없어진 뒤다'라며 잠시 신세 한탄을 하다가 물이라도 한 병 더 얻을 수 있는지 묻는다.  

꺾어진 몸으로 남아 있는 포장 빵과 도넛을 한참 들여다보며 좋아하는 맛을 고르는 모습은 차라리 낫다. 유독 여성들이 눈동자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에 잔뜩 주름이 져 있고, 다들 어딘가 신체가 뒤틀려 있다. 왜들 '살아있는 좀비'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슬펐다, 슬프다는 말 밖에는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이동 중 켄싱턴 거리의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찍은 사진 한 장.
ⓒ 장소영
 
기도를 해줘도 괜찮을지 묻는 채 목사에게, 휠체어에 앉은 '빌'이라는 이는 '물론이다, 나를 위해 뭐든 해달라(Do anything for me)'고 응했다. 그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채 목사를 따라 맥퍼슨 파크를 잠시 돌아보았다. 냄새가 진동한다. 오물에 찌든 냄새에 삶의 밑바닥의 냄새, 비참함의 냄새가 깊이 뱄다. 딜러라도 왔는지 공원 한구석에 몇 사람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곧 무언가를 나누는 모습이더니, 순식간에 주삿바늘을 꺼내 들어 자신의 목에 댄다.

놀란 나머지 황급히 눈을 돌리고 빠르게 일행 곁으로 붙어 걸었지만,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방금까지도 우리에게 음식을 받고 웃으면서 '고맙다, 교회에서 나왔느냐, 다음 주에도 올 거냐' 묻던 이들이었다. 맥퍼슨 파크가 괜히 바늘 공원(Needle Park)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채 목사에 따르면, 원래 켄싱턴 거리의 중독자들은 헤로인이나 자일라진(동물마취제)에 물들어 있었으나, 요즘은 종류도 구별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바로 강한 마약을 시작한다고 한다.

알려진 대로 요즘 미국에서 가장 우려된다는 마약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역시 이 지역을 휩쓸고 있다. '일 년에 한 명이라도 제대로 구해내 재활할 수 있다면'. 그것이 30년 가까이 범죄나 마약에 연루된 이들을 대하는 채 목사의 소명이란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체면이 중요한 일부 한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마약을 터놓고 얘기하지 않은 채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 덕에 잘 모르는 채 사회에 나온 한인 2~3세들이 쉽게 마약에 노출된다고 한다. 유학생들도 쉬이 물든다고.
 
▲ 오리엔테이션 중인 채왕규 목사 30여년간 청소년 범죄, 마약 재활 등의 특수사역을 해온 채왕규 목사. 뉴비전 교회와 센터, 사역 재정자립을 위한 중고용품 가게(Thrift Store -굿윌의 일종) 전경이다.
ⓒ 장소영
 
채 목사는 마약류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한 거절, "싫다(No)"라고 할 수 있도록 그 한 마디를 자녀에게 가르쳐 대학에 보내라 권했다. 이날, A나 B구역으로 이동해 둘러볼까 하다가 함께 온 아이들이 충격을 더 받을까 싶어 차마 그러지 못하고 돌아섰다. 다른 봉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주는 음식을 먹고 힘을 내서 마약을 사러 다닐까 봐 마음이 착잡해요."
"이 분들도 물과 음식이 필요한 살아있는 사람이니까요. 일단 하루라도 더 살게 하고 봐야죠, 어떤 기회가 올지는 몰라도요."
"그래도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들 음식을 받으며 고맙다고 하고, 오히려 우리를 축복해 주네요. 좀비를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사람을 보고 가요."
"요즘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운이 없어서 걸려드는 사람도 많대요. 땅에 떨어진 1달러도 그냥 줍지 말라잖아요. (약이) 묻어 있다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해요. 나는 여기 계속 올 수 있으니까. 저 사람들은 못 그래요,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거든요." 

자원봉사를 하던 날이 마침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중독자들에게도 해방의 빛이 닿는 날이 오길 둘러서서 잠시 기도했다. 

대마 합법화 전에 현실부터 제대로 보라

의료용으로만 쓰이다 기호용 대마가 합법화된 이후 강 건너 뉴저지와 뉴욕, 메릴랜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의료용 제한이 있었을 때도 심각한 중독후유증 때문에 치료 뒤에도 약을 찾는 이들이 많아 이를 우려하는 기사가 자주 나왔던 터다. 한편 미국에서는 대마 관련 세금을 'Sin Tax'(죄에 징수한 세금)라고도 부른다. 마약엔 죄스러운 욕구, 머리론 멈추려고 하면서도 깊이 빠져드는 욕구가 섞여 있다는 얘기다.

마약은 뇌에 일종의 각인을 새기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걸 정부나 제도가 과연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어린아이들이 대마 향이 나는 아파트 복도와 엘리베이터, 공원을 지나 학교로 가고 놀이터에서 논다. 간접흡연을 해가면서 말이다. 다음 세대에 물려줘도 괜찮은 걸까. 

비통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 날 독일에서 오는 연말부터 대마 합법화를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합법화하는 것만 보지 말고 그 뒤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현 상황 또한 유심히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곳 켄싱턴 거리를. 아직 한국은 기회가 있다고 채 목사는 말한다. 한국에서만큼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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