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나게 멋진 팔순 어머니가 자서전을 쓰셨습니다

김광선 2023. 8. 2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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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엔 출판할 거야" 되뇌던 엄마, 3년 만에 두꺼운 공책 4권을 채우다

[김광선 기자]

우리 엄마는 예전부터 유별났다. '유별나다'는 건 대개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가끔은 욕심 많은 것을 긍정적으로 뜻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통상 자녀 학업에 애정과 관심이 많아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학교를 들랑날랑하는 학부모에게, 또는 지나치게 남편을 신경 쓰며 반찬을 잘해주고 아이들을 극진히 살피는 아내에게도 쓴다.

요리에 관심 없던 엄마
 
 젊은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오른쪽)
ⓒ 김광선
우리 엄마는 여느 평범한 엄마들과는 너무도 달라, 다른 의미로 '유별났다'고 말하고 싶다.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통상 자식들을 잘 먹이는 데 최선을 다하며 요리 실력이 나날이 늘어나고 자식들이 밥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휴, 난 음식 하는 게 제일 싫어. 살림하는 것도 적성에 안 맞아."
"다시 태어나면, 난 혼자 살 거야."

딸인 내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어땠나. 아침마다 엄마가 시간 맞춰서 도시락을 싸 주지 않을까 불안했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통을 꺼내 보면 친구들은 예쁘고 맛있는 반찬-소시지, 햄, 계란말이, 돈가스 등-을 싸 오는데 엄마는 전날 먹었던 반찬을 한번 더 대충 싸 주셨다. 고구마 줄거리, 빈대떡, 깍두기, 깻잎, 콩장... 난 반찬통을 비스듬히 해서 숨긴 채로 먹기에 바빴고, 친구들은 거기에 젓가락질을 한 번 안 했다.

"아니, 왜 이렇게 안 먹었어? 반찬 남기면 안 돼."

그 다음부터는 친구들과는 먹지 않고 난 내 반찬만 먹었다. 빨리 먹어버려서, 어떤 반찬이 있는지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젊은 시절 음식 솜씨 때문에 아빠에게 핀잔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결혼 전에는 한 번도 부엌 살림을 해본 적이 없고 배운 적도 없었다고. 결혼해서 처음 만들어 본 반찬은 남편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당시 아빠는 젓가락으로 밥상에 버티는 반찬 그릇을 쓱 밀어서 상대편으로 보냈다. 손도 대기 싫다는 아빠의 표현이었다. 엄마는 일도 많고 가난해서 쌀 살 돈도 없는 마당에, 반찬에 정성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자 점점 엄마의 자존심도 상하고 음식에 대한 자신감도 하락했다.
  
하지만 엄마는, 음식하는 것 빼고는 다 잘한다. '하버드대학교 포장학과 나왔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선물 포장을 사랑스럽고 정성스럽게 잘 하신다. 아름다운 꽃을 좋아해서 시장에 가면 반찬거리 대신 꽃을 한 다발 사 와서 꽃병에 화려하게 장식하시곤 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시사에도 밝으셔서 뭘 물어보면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척척 대답하신다.

보통 엄마들이 좋아할 법한 트로트나 가요 프로그램 대신, 설거지를 하면서도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듣는다. 드라마를 보는 대신 다큐멘터리나 EBS 교양 프로그램을 시청하신다. 

그뿐인가. 시간 날 때마다 동네 서점에서 책읽기를 즐겨하신다. 동네 독립서점인 '용서점'에서는 필사반에 함께 합류해 일주일마다 문학 작품도 필사하셨다. 감정을 실어 낭독하며 읽는 것도 좋아하신다. 엄마가 읽어주시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잠이 저절로 오곤 했다.

"참 재미있다. 난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너무 좋아."

낭독·필사 즐기더니 이젠 책 출판까지

올해 80세인 엄마는 자서전을 쓰겠다며 3년 전부터 글을 썼다. 자식들을 만나면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그럼에도 눈물 없이는 듣기 어려운 삶의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한 글자마다 정성이 가득한 어머니의 자서전, 약 3년 전인 2020년 12월 찍은 사진.
ⓒ 김광선
 
몇 년을 듣다가 거의 외워버릴 정도가 된 아들은 결국 반기를 들었다. "엄마, 그걸로 책을 써 보세요." 엄마는 처음엔 '뭔 소리를 하는 거냐' 하시더니만, 바로 다음날 문구점에 가서는 공책을 한 아름 사 오셨다.

그러기를 3년, 벌써 두꺼운 스프링 공책 4권을 다 채우셨다. 연필로 꾹꾹 눌러 빈 종이를 채우는 게 힐링이 된다고 하신다.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덕분에 요샌 밥맛도 좋아졌다며 밝게 웃으신다.

"팔순엔 꼭 출판할 거야."

난 그런 엄마의 책이 보고 싶어서 주말마다 열심히 타이핑을 쳤다. 틀린 맞춤법도 고치고 어순도 바꾸어 문장을 바로잡았다. 소제목도 달고 목차도 만들었다.

표지 작업은 아는 선배에게 맡겼다. 퇴고도 2차까지 마쳤고, 앞으로 한 달 내에 마지막 3번은 더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다(관련 기사: "아버지 왜 난 학교에 안 보냈어요?" 엄마 글을 노트북으로 옮기며 엉엉 울었습니다 https://omn.kr/1r66a ). 

이미 제목도 지었다. 엄마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화려했다던 '유한양행' 시절 5년을 힌트로 해서, 나올 책 제목은 <유한양행 미스 고>가 될 것. 출판사 계약은 아직이지만, 기획 출판을 시도해보고 혹 어려우면 자가출판 해보려 한다.

'유별'나게 멋진 이 여성의 삶, 혹시라도 나중에 책이 출간되면 꼭 사서 읽어 보시길 바란다. 이런 유별난 엄마는 흔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아주 드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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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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