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어지로울 땐 이 곳, 길상사를 한번 걸어보세요
[전갑남 기자]
▲ 길상사 일주문. 길상사는 신도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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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올 일이 있을 때 몇 번 길상사를 찾은 적 있다. 얼굴을 달리하며 피어나는 꽃들과 소박하고 깨끗한 분위기는 잠시 쉬어가기에 참 좋은 곳이다. 도심 속 사찰 길상사는 파란 하늘 문이라도 열어놓은 듯 숲속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흐르는 개울물에 마음도 씻기는 듯 차분해진다. 지난 16일 이 곳을 찾았다.
▲ 길상사에서는 백중 49재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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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스님의 낭랑한 축원에 잠시 귀 기울여본다
"자비하신 부처님, 선망하신 부모님 형제자매 일체 인연 있는 영가들이 고통 없는 극락세계에서 왕생하도록 하옵소서."
법당 앞 커다란 화분에 홍련이 예쁘게 피었다. 흰 연등에 붉은 연꽃이 한폭의 그림이 되어 녹음 가득한 도량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소담한 연꽃을 보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 길상사 팔작지붕의 멋들어진 범종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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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주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 길상화는 김영한의 법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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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화 보살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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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화는 김영한의 법명으로 오늘의 길상사를 있게 인물이다. 김영한과 길상사와는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사실 길상사는 처음부터 절이 있던 터가 아니고, 과거 김영한이 운영하던 대원각이 있던 자리로 알려져있다.
김영한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보통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7000여 평에 40여 동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기부하였다.
처음 그녀가 대원각을 부처님께 바치겠다고 하자 법정은 "나는 주지(스님)를 해본 적도 없고, 큰일을 할 인물도 못 된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한 사람은 10년을 부탁하고, 한 사람은 10년을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진심이 통했을까? 법정 스님은 주지를 맡지 않고, 승보사찰 송광사의 말사(소속 절)가 되어 길상사는 1997년 시작됐다. 대원각은 당시 10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법정의 무소유 철학과 이를 실천한 김영한의 통 큰 기부는 세간의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김영한은 '시인의 시인'이라고 하는 백석과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이루지 못한 사랑은 백석이 남긴 사랑의 시로도 태어나 공덕비 옆에 쓰여있다.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김영한이 그 큰 돈을 기부했을 때 "아깝지 않느냐"고 여러 사람들이 물었으나, 그녀가 한 말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했다. 보살 김영한은 당시 "1000억 원이라고 하는 돈은,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답했다 한다.
길상사에 깃든 법정 스님의 숨결
▲ 길상사에 있는 진영각. 법정 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저서 및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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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의 체취가 남아있는 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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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 관음보살상. 종교간 화합의 염원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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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 석탑. 탑돌이를 하는 신도들이 눈에 띄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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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기는데, 여기저기 풀꽃들이 예쁘게 고개를 내밀었다. 큰 화분에 핀 부레옥잠, 수행 스님이 거처하는 집 담엔 능소화가 피었다. 점심 공양을 하기 위해 들린 선열당 작은 연못에 핀 수련도 참 이쁘다.
비빔밥과 시원한 미역 냉국으로 점심 공양을 마치고 일주문을 나선다. 매미들은 진한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서 합창하며 막바지 더위를 토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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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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